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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Aug 20. 2020

입맛이 다르다는 것

오늘 저녁 메뉴는 김치볶음밥과 채소 스틱


 함께 사는 사람과 입맛이 다르다는 것은 식사 준비에 2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뜻한다. 육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가 만난다면 그 간극을 메우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탄수화물을 즐기지 않는 자와 구황작물 킬러가 만난다면 그것 또한 유쾌하지 않은 만남일 것이다.


 긴 장마 때문인 건지 코로나로 인해 둔해진 것인지 요 근래 몸이 너무 무거워져서 저녁은 가능하면 먹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가족의 식사를 전담하는 입장에서 내가 먹고 싶지 않다고 차려주지 않을 수도 없는 일.


 남편은 대체로 나보다 늦게 출근하고 비슷하게 퇴근하지만 주방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신혼 때는 주말부부로 살았고 살림을 합친 후에는 매일 야근과 주말출근으로 주방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 두 번의 이직 후에 야근이 적고 주말에는 쉬게 되었지만 이미 주방일과는 멀어져 버린 후여서 남편이  부엌에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 고로 남편의 식사는 내가 준비해야 하는 것.


 맞벌이를 하면서 퇴근 후에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점심도 굶고 일하는 남편을 저녁까지 굶으라고 할 수는 없어 기어이 저녁상을 차린다. 주 7일을 매일 식사 준비와 설거지까지 하다 보면 내가 무수린가 싶을 때도 있지만 내가 먹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얻는다는 생각으로 수행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괜히  심술이 났다.


 나는 먹고 싶지 않았어.


점심을 또 굶었다는 남편이 안쓰러우면서도 화가 났고 그를 위해서 식사 준비를 하는 내가 조금 한심스러워  속이 상했다. 남편의 저녁은 계란 프라이 올린 깍두기 볶음밥과 레토르트 닭곰탕.  나는 채소 스틱과 요거트. 공통의 메뉴는 포도 한 송이.


 우리는 식성을 아주 다르다.

육식을 좋아하는 남편. 채식을 지향하는 아내.

양식과 정크푸드를 즐기는 그. 한식과 분식을 좋아하는 나. 밑반찬 만으로도 식사가 가능한 나와 달리 그는 메인으로 고기나 생선이 있어야 한다.

된장국과 채소반찬만 있는 날에는 통조림 참치를 찾는 그. 이쯤 되면 네가 밥해먹어 할 만도 한데 싸우기 싫은 나는 그의 반찬을 따로 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두배. 오늘의 경우만 하더라도 나를 위한 저녁 준비라면 10분이면 끝났을 텐데. 그를 위한 밥상이 추가되니 30분이 훌쩍 넘고 설거지까지 끝낸 시간은  밤 열 시였다.

 식성만 같았어도 준비시간은 줄테고 그가 설거지만이라도 한다면 나의 피로도는 현저히 줄어들 텐데. 주방일이 모두 내 차지가 되다 보니 퇴근 후 정작 내가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은 항상 밤 열 시 그 언저리쯤이다.


 먹고사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존이니까.

건강한 음식을 먹어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고 일상생활을  꾸려가는 것. 이런 순간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한 끼 한 끼 가능하면 내 손으로 지어먹고자 한다. 소중한 사람이니 그에게도 집밥을 해주고 싶어 매일의 수고로움을 감수하지만 오늘같이 지친 날에는 제발 입맛이라도 비슷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쯤은 채소 스틱과 요거트로 끝내도  괜찮을 입맛이길.

그럼 10분 만에 준비하고 설거지거리도 조금은 적은 저녁이었을 테니.


 입맛이 다른 식구와 산다는 건.

 매일 2배만큼의 수고로움이 생긴다는 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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