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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Sep 03. 2020

도시락이 어깨를 짓누른다.

밥벌이의 무거움


도시락. 지갑. 읽을 책 한 권 혹은 두권. 우산.파우치


이 모든 게 들어가려면 커다란 에코백 이어야 한다.

멋내기용의 핸드백으로는 어림없지.

매일 들고 다녀서 손때가 가득한 나의 흰색 에코백.

집을 나서면서부터 이 가방의 무게가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이런 컨디션의 가방을 들고 다닌지도 10년이 넘었는데 더 젊었을 적에는 저 모든 것이 든 통가죽 가방을 짊어지고 다닌 적도 많았는데 말이다.

서른 후반쯤부터는 가죽 가방은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되었다. 그때부터 줄곧 에코백만 사용하고 있는데 유독 요즘 들어 이 가방이조차도  버겁다.


 출근시간이 되면 점심 도시락을 챙겨 넣고. 지하철에서 읽을 책을 챙기고. 자잘한 소지품과 사원증까지 확인하고 집을 나선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까지 곁들여야 하니 그 무게가 천근만근. 책이 무거워서 전자책으로 독서방식을 바꾸려고 하지만 매일 전자책을 보기에는 눈이 너무 피로하다. 그러다 보니 다시 종이책으로 손이 가는 것.


 언제쯤이면 이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문득문득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저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다. 당장 내일의 삶도 계획하지 못하는 회사에 묶인 일개미라서.

매 순간. 내 시간의 주인이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직은 주체적이 되기는 힘들다는 결론에  다다르지. 그렇게 내일이 되면 다시 도시락이 든 가방을 짊어지고 어깨에는 붉은 자국이 선명해지도록 그 무게를 견뎌가면서 만원 지하철에서 숨을 몰아쉴 것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이야 진작에 시인의 말로 들어 느끼고 있었지만. 밥벌이의 무거움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다시 또 덮쳐온다.


이제 정말 이 무거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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