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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Sep 05. 2020

내 기분이 낯설었다.

혼자 있는 주말

 2020년이 몽땅 없어져버렸다.

 어느샌가 9월이 되었고 바이러스로 인해 마스크와 한 몸처럼 지내며 갇혀 지낸 시간들이 벌써 1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재택근무 따위는 하지 않는 직장인이라서 매일 꼬박꼬박 출퇴근을 위해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으니 적당히 견딜만한 일상들이었다. 


새로운 감염처가 등극한 덕에 지난 주말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조치 되었는데 이런 와중에도 남편은 주말 내내 지원 근무를 나갔고 오롯이 혼자서 이틀을 집에 갇혀 보냈다. 


 사실 남편의 출근 소식을 듣고 내심 기쁜 마음도 있었다. 매일 아침과 저녁, 나의 도시락까지 삼시 세 끼를 내손으로 지어먹고 다니고 주말은 주말대로 평일에 못해먹은 집밥을 해 먹이겠다고 부지런을 떠는 내 성격상 남편이 없는 주말은 내 입맛대로 차려먹을 수도, 굶을 수도 있는 자유가 생기니 그가 없는 주말이 은근히 기대가 되는 것. 더구나 입맛이 다른 우리 커플은 식사 준비에도 꽤 시간이 소요되니  주말은 나의 자유 시간이라는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바야흐로 대망의 토요일,

평일과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그를 위해 그래도 간단히 아침을 챙겨주고 출근 준비를 도와준 다음. 

나를 위한 일상에 돌입했다. 

먼저 요가를 해야지. 

천천히 호흡하면서 아쉬탕가 요가를 아주 길게 하고 나를 위해 밥을 지었다. 

마늘 기름을 올려 매운 태국 고추를 넣고 공심채를 한가득 볶았다. 

남편이 있었다면 고기 요리나 하다못해 스팸이라도 구워야겠지만 나는 마른반찬에도 밥 잘 먹는 여자고. 내가 좋아하는 공심채 볶음이 한가득이니 아주 만족스러운 밥상이다. 

포만감 있게 늦은 아침을 먹고 좋아하는 TWG의 바닐라 루이보스티 와 진한 초코 파운드 케이크에 상투과자까지 곁들여 티타임을 갖었다.  TV를 독차지하고선...


영화 두 편을 몰아서 보고 나니 어느 덧 저녁시간이 되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떡볶이에 중국 당면을 잔뜩 불려 넣어 먹었다. 

남편은 11시가 다 되어 들어와서는 씻고 바로 취침. 

오늘은 오롯이  나를 위해서만 가사노동을 했다는 뿌듯하면서도 충만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역시 출근을 하는 남편을 보내고 내 시간.

이른 아침 느긋하게 요가 한 시간 즐기기. 

그리고 식사는 좋아하는 빵집에서 사 와 냉동실에 아껴두었던 깜빠뉴를 꺼내 해동했다. 이것도 오롯이 내 취향의 빵. 커피를 만들고 빵을 양껏 데우고 치즈를 잘라 땅콩잼과 살구 쨈을 발라 한입 크게 베어 물고 오물오물. 

조용한 집에서 내가 오물거리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 좋았는데 , 이 평화로움과 적막함. 

식사를 마치고 책을 좀 읽어볼까 싶어 책장을 넘기긴 했는데 아주 낯선 기분이 훅 들어왔다. 


심심함인가?

나른함인가?

외로움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토요일 오전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대화다운 대화를 한마디도 안 했다는 것이 생각난다. 

밤늦게 귀가한 남편과는 한두 마디뿐. 그리고 이른 새벽에 나선 그. 

겨우 하루 반나절 말을 안 했다고 이러나 싶기에는 너무나 낯선 기분이었다. 

급격하게 쓸쓸하고 외로운 기분이 덮쳐와서 상당히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는 눈물이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나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내가 낯설었다. 


 평소에도 나는 그다지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고 혼자 있는 시간을 꽤나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겨우 하루 반나절 혼자 있었다고 이렇게 외로워지나 싶은 생각도 들고. 사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인데 스스로를 내향인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을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왔다. 이 감정은 대체 뭐지? 나 왜 이러지 하는 감정의 변화는 이날 오후 내내 나를 몰아쳤고 한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것이 근본적 외로움이라는 것일까.

그동안은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어 내 감정을 들여다본 기회가 없어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오롯이 혼자 있었던 그 시간 훅 나를 덮쳐온 것 같다는 어렴풋한 추측도 해본다. 사실 옆에 누군가 있건 없건 사람에게 외로움은 항상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훅 다가올 줄이야. 내 몸이 약해질수록 이런 기분은 더욱더 자주  덮쳐올 텐데 그때는 어찌해야 하나. 이런 감정은 대체 왜 이렇게 생기는 건지. 

 

일요일 오후 내내 이 낯선 감정을 돌아보다가 이른 퇴근을 할 수 있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어쩐지 이 감정을 들키거나 공유하고 싶지 않아 몸을 움직였다. 고기 요리를 할 만한 게 없어 집 앞 족발집에서 작은 족발을 포장하고 집에 있던 시판 냉면으로 저녁을 차렸다. 차가운 맥주를 좋아하는 그를 위해 컵도 얼려놓고 퇴근시간에 맞춰 차려놓은 시판 음식과 반조리 식품의 저녁밥상. 

 

 


나를 위해서만 보낸 이틀은 아니었지만. 

오롯이 혼자 있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들어왔던 낯선 감정들, 쓸쓸함. 

혼자 있는 시간을 나름대로 잘 즐긴다고 생각한 나였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인지. 

아주 이상하고 낯선 기분에 생경했던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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