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앨리스, 리사 제노바, 민승남 옮김, 세계사
나는 외할머니와 20년을 살았다.
할머니는 우리 가족이었고 누군가 식구가 몇이냐고 물으면 할머니까지 여섯이오. 하고 대답하는 것이 당연했었다. 어릴 때는 우리와 함께 사는 할머니가 친할머니인지 외할머니인지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고. 친가와 외가의 차이를 알게 되었을 때쯤부터 할머니는 점점 쇠약해져 갔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쯤 되던 해. 할머니는 허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해지셨고. 그 몇 해 뒤에는 치매를 앓기 시작했다. 엄마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자식 셋과 허리를 못 쓰는 할머니까지 돌봐야했다. 아빠의 수입은 일정치 않았고 엄마의 엄마이기에, 또 자존심 강한 엄마였기에, 그 치료비와 돌봄을 아빠에게 요청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 학창시절과 엄마의 40대는 할머니 병시중과 돈벌이의 팍팍한 삶으로 채워졌다.
치매환자와 함께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알 수 없다.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긴장감. 집은 쉬는 곳이 아니라 악다구니가 오고 가는 전쟁터. 흐릿해지는 치매환자의 눈빛을 마주하기란.
차라리 집이 아닌 곳에서 시간은 보내는 게 나았던 순간들이었다.
엄마는 대단했다.
아침이면 세 아이들의 여섯 개나 되는 도시락을 싸고 할머니를 목욕까지 시키고 나서 출근. 점심에 잠깐 들러 할머니 점심. 회사. 야근. 엄마의 억척스러움에 우리 형제들은 빨리 철 들었고. 언니와 나는 어린 나이에 집안일을 꽤 잘하게 되었다. 그렇게 수년을 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앨리스는 알츠하이머를 받아들이기에는 젊었다.
지성을 갖춘 하버드대 교수였고, 단란한 가족이 있었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는 상태에서 조발성 치매가 찾아왔다. 서서히 알듯 말듯한 전조 증상을 보여주면서.
이 작품은 저명한 교수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병이 진행되는 과정을 환자의 입장에서 서술했다. 그래서 신선하고 뭉클했다. 왜 환자들이 알 수 없는 행동들을 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해준다.
병을 받아들이는 심리 단계는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수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젊은 치매환자들은 받아들임의 단계를 가기도 전에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 잊게 될 것이다.
앨리스가 병이 깊어졌을 경우를 대비해 스스로에게 지시를 내려놓은 부분에 이르러서는 병의 과정이 얼마나 두려운지도 보여준다. 나의 기억을 잊어가는 병이라니.
매일의 질문을 휴대폰에 저장해 둔 앨리스는 그 답을 못할경우를 대비한다. 최악으로 치닿기 전에 스스로를 관리하려던 것이지만, 치매환자에게는 이런 축복은 허락되지 않았다.
난 과거에 정신이 언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았고, 내가 아는 걸 전달 할 수도 있었어. 나는 많은걸 아는 사람이었어. 이제 아무도 내 의견을 묻지도 않고 내게 조언을 구하지도 않지. 과거가 그리워. 과거의 난 호기심 많고 독립적이고 확신에 차 있었어. 그 확신이 그리워. 늘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선 평화가 있을 수 없어. 모든 걸 쉽게 해내던 그 시절이 그리워. 세상일에 참여하고, 세상이 원하는 존재가 되고 싶어. 과거의 내 삶이, 내 가족이 그리워. 난 삶과 가족을 사랑했어 p 400~401
책을 모두 읽은 후에 영화를 봤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줄리안 무어이 연기는 훌룡했지만,
책의 감동만은 못하더라.
담담한 환자의 심정을 참 잘 써내려간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