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임경선

자유로울 것, 임경선, 예담. 20170130

by 이일영

질투가 났다.

잘난 임경선의 책을 읽다 보면.


외교관이었던 아버지 덕에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고 잘 나가는 대기업 출신에 등단작 가도 아닌데 책만 내면 베스트셀러다.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글로만 먹고사는 그녀의 삶이 질투가 났고 글까지 잘 쓰는 게 화가 났다. 마치 내가 쓰려는 글감을 그녀가 빼앗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와 연애할 때]라는 에세이는 내가 먼저 쓰고 싶었는데. [월요일의 그녀들]이라는 책은 기획을 잡고 글감을 수집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임경선의 신작으로 홍보가 되더라.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되다 보니 그녀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자꾸만 읽게 된다. 읽으면서 지는 기분이 드는데도 계속 읽게 된다. 이런 내가 화가 나지만 그녀의 글에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데서 생존은 시작된다.

어린 나이에 불가항력의 고난을 혼자 겪으며 이미 불가피하게 철학자가 되어 버린 소년 파이의 말에 따르면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우리의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인 것이다. 그러니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고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찾아내 최선을 다해 하리고 한다. 어차피 긴 시간에 걸친 승부다. p48


타인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일은 쉽다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고 비판할 바에는

뭔가를 만들어내고 비판받는 편이 차라리 낫다 p60


저자는 겉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잘난 것처럼 굴지 모르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인정 욕구에 목말라 있고, 외로움을 타고, 자기 재능에 대해 불안해하법이다. 그럴 때 편집자의 진심 어린 호감과 확신에 찬 응원은 저자를 저절로 분발하게 만든다. 나와 내 글을 좋아하고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 지는 것이다. 알고 보면 저자들처럼 단순한 인종이 없다. p99


사실 진심으로 반가운 것 첫 재회의 순간뿐이다.

막상 우연이 아닌 인위적인 방법으로 다시 만나야 한다면 부담스럽고 재미없을 것 같다. 현재보다 과거를 공유해야 하는데 거기엔 대화의 한계가 있다. 과거 시절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하나둘 끄집어내고, 그 시절에 알고 지낸 공통지인들에 대한 근황을 공유한다. 대화 소재는 머지않아 바닥나기 쉽다. 그렇다고 현재의 생활을 공유하기엔 그만큼 서로에게 이젠 관심이 없거나 공통분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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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아무리 오랜 기간 우정과 추억을 나눴던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내게 현재의 기쁨을 주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관계는 현재 진행형이다. p119~121


줌파 라히리의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쓰기'는 등장인물들에게도 정직하게 적용된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우수한 대학을 나온 고학력자에 사회경제적 지위가 중산층 이상인 전문직 이민자들. 대개가 교육을 잘 받았고 인격적으로도 성숙하고 가급적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지적이고 선량한 사람들이다. P135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노력으로 차근차근 인생을 쌓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굴절 없는, 정직한 인정과 존중이 느껴진다, 그 와중에 줌파 라히리는 말한다.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여도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결핍과 고통을 가지고 있고, 최선의 노력으로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슬픔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고 p 137


희한하다. 고통에 관한 글은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써야만 설득력과 공감을 준다. 아무리 정황 묘사가실적이고 그럴싸해도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마치 아이가 없는 여성이 육아의 힘겨움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 기분이다. p157


책 추천 요청만큼은 웬만하면 하지 말아주기를 독자분들께 부디, 간곡하게 부탁드리는 바이다. 다른 건 몰라도 책만큼은 직접 내 눈과 손과 직관으로 골라야 하니까. p208


집단은 언제나 그토록 잔인했다. 물론 나는 거기게 가담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저 그간의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인내하며 사표를 던지지 않은 나 자신과, 꾸준히 이 메일로 말리고 위로해준 친구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겨우 한숨을 돌리니 계절은 어느덧 겨울이 되어 있었다. p233


나이 들어 좋은 점?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체력은 약해지고

감각은 무뎌지고

머리는 둔해지고

미관상 추해지고

선입견으로 고집스러워지고

나이를 핑계로 무례해지기도 한다. p238


편하고 익숙한 것들을 넘어 조금씩이라도 새로 도전하거나 무리하지 않는다면 현상 유지는 될지 몰라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이치와 같다.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라고 단정 짓던 그 수준을 스스로의 힘으로 뛰어넘어야 한다. p259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이 쓴 한겨레 칼럼의 한 구절이 위로가 되어준다

삶은 할 일로 채워지는 것이지 안정과 성취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다. p281


이렇게 구구절절 잘 풀어놓는데 어떻게 읽지 않을 수가 있느냐 말이다. 화가 나고 질투가 나면서도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임경선이다. 본인은 인정 욕구에 목말랐다고 하나 그녀의 글들은 오랜 사회생활을 한 시크한 언니가 해주는 조언 같다. [엄마와 연애할 때]라는 작품에서 반하고 [기억해줘]에서 뺨 맞고 [월요일의 그녀들]에서 질투심은 정점을 찍었으나. 이번 자유로울 것 에서 다시 그녀에게 돌아왔다.

감히 여성으로서의 삶이 흔들릴 때 임경선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직도 여성에게 불합리한 사회를 살아가는데 일말의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우씨. 진짜 부럽다.

임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