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처럼 나는 혼자였다. 이경미. 샘터. 2012
2012년 초판 도서이니 4년이나 내 책장에 묵혀있었다.
작은 성 앞에 고고한 고양이가 있는 따뜻하지는 않지만 차갑지도 않은 그런 그림이 실린 표지가 정면 보이게. 서재방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곳에 있었다. 읽어 낼 준비가 되기까지 4년이나 걸렸다.
제목에서 풍기는 쓸쓸함에 나 역시 쓸쓸해지기를 기다렸고 그런 날 읽고 싶었다. 하지만 그저 쓸쓸하기만 한 날은 안되었다. 쓸쓸하고 외로워서 철저히 혼자인 날이어야 했다.
말일에 가까운 3월이었고 망원동의 창비 카페였다. 거기서 이경미 작가를 만났다.
말랑해 보이는 그림과 다르게 에세이는 내밀한 자기 고백이었고 그녀가 지나 온 일들에 대한 추억이었다. 나 역시 내 문제가 버거운 날들이었기에 담담하게 풀어내는 어조에도 불구하고 한두 챕터에서는 숨이 턱 막힐 만큼 답답했다. 그래서 천천히 오래오래 곱씹으며 읽고 싶었으나 앉은 그 자리에서 단숨에 끝이 보일 정도로 속도감이 붙었다. 한참 달리다 보니 끝이었다.
넓지 않은 10평 남짓한 공간에 둘이 같이 있으면 내가 기분이 안 좋은 것, 불편한 것, 잠이 깬 것, 나의 하루가 어이없이 지나간 것, 세월이 무상한 것 모두 그 사람 때문인 것 같다. 주변의 모든 '두 사람'은 사소한 문제부터 시작해 심각한 불만까지 서로의 문제를 상대의 탓으로 돌리며 '제3자'에게서 자신의 상대에 대한 견해를 평가받으려 한다. 언제나 주제는 '이렇게 된 원인이 너 때문인 거잖아!'이다. 사실 정말 심각한 문제일 경우도 있고 타협할 수 없는 큰 문제들로 부딪힌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이유들도 존재하지만, 대개는 '둘'이거나 '둘'뿐이기에 생기는 문제인 것이다. 혼자라면 달라서 다툴 일도 화낸 일도 서운할 일도 없지만, 대신 둘이라서 행복한 일도 좋은 영화를 보며 공감할 일도 너무나 다른 그의 눈을 통해 내가 성장할 일도 없는 것이다. p49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성장한 어른이 지닌 모든 정보가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게도 모두 유전이 된다면 이렇게 길고 긴 시간을 실수하며 상처받고 후회하며 살지 않아도 좀 더 현명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인류는 놀랍도록 지적인 완벽에 가까운 문명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잔인한 신은 인간의 부족함을 통해 신의 존재를 깨닫게 할 요량인지, 우리들의 아이는 언제나 너무나 무기력하고 꼬물거리는 작은 동물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p62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잊히지 않기를 오늘 하루도 기도한다. 한 포기의 풀도 저 자신을 위한다는 경전의 말처럼 한 포기의 풀도 저 자신만을 위한 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p116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배운 것이 있다면 이제는 죽음도 생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다. 사랑하고 아끼면 죽을 때까지 그리고 그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 죽음까지 아름다운 작은 생의 일부로 받아들여주면 된다. 죽을 거라 여겨져 그 꼴이 보기 힘들다고 상자에 넣어버릴 게 아니라 안타깝고 고통스럽지만 그 죽음마저 지켜봐주자. 그려면 우리도 성숙할 것이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생을 생각하고, 생의 소중함과 절실함도 기억하게 될 것이다 p179
'높은 산 위에 부는 바람은 들판의 바람과 다르다'라는 구절을 《법구경》에서 읽은 적이 있다. 높은 산 위에는 오르는 사람이 많지 않아 가치가 있는 일이겠지만, 부드러운 미풍이 부는 평원에 비해서 그 바람의 차가움과 세기가 비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p233
문을 열고 나가면 문 밖에 거대한 진실이 있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거대한 자연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 문이 닫혀 있을 때는 문 밖의 진실, 그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야 만다. 그것이 인간이다. p250
지나온 시간은 즐겁든 고통스럽든 소중하기 마련이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버지의 인생과 끝없이 인내하던 어머니의 모질고도 혹독한 인생이 대비되어 더욱 마음이 시려왔다. p259
스무 살 때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지겨운 표정을 짓던 30대들의 표정을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만큼 흔하고 진부한 단어가 또 있을까. '사랑'은 그저 흩어지는 연기처럼 희미해져 갔다. 서른이 코앞인 나에게 사랑이란 순진함과 촌스러움의 다른 이름이었다. p269
피상적으로만 생각해 왔던 내 모습이 날카롭고 이기적인 무기 같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담담해졌다. p271
곳곳에 삽입된 그녀의 그림을 보는 것도 꽤 치유의 효과가 있었다. 창피 카페를 찾았던 그 날, 나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에 상처받았고 풀리지 않는 인생에 좌절했었다. 속절없이 세월이 흘러 나이만 들어간 어른 아이 같은 내가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 견디기 힘들던 날이었다. 그녀의 그림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을 보면서 그 감정의 선이 옅어지기도 했고 어린 시절 사고로 고개가 20도쯤 기울어져 있는 고양이의 그림은 아이러니하게도 긍정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의 그림은 치유의 효과가 있었다.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의 그림을 좋아하는 내 취향과 맞아 떨어져서 일 수도 있겠으나 쓸쓸한 그녀의 그림이 보는 나로 하여금 긍정의 마음을 갖게 했으니 나에게는 치료제의 효과가 탁월했다.
p92 탁상 위의 북촌 2012, 90*90
개인적인 수집물들 2008 116*91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의 그림을 갖고 싶었고
4년이나 책장에 묵혀놓은 바람에 놓쳐버린 그녀의 전시들이 아까웠다.
다시 한번 그녀의 전시가 돌아오기를.
그 때는 놓치지 않고 꼭 그녀의 고양이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