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비드 선생님.

삶의끝에서,다비드메나셰,허형은옮김. 문학동네.20160310

by 이일영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내 인생의 우선순위는?

언젠가는 끝이 없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오픈티켓을 들고 가고 싶은 나라들로 훌쩍 떠나는 삶. 당장은 실현될 수 없기에 가끔 상상해본다. 언제쯤이면 떠날 수 있을까. 어떤 상황에서 나는 갈 수 있는 일까?

수억 원의 로또가 되었을 때? 불치병으로 살아있을 날이 얼마 없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려울 게 없을 테니까.

이런 상상을 이룬 사람이 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미국 전역을 일주한 선생님.

좋은 선생님이었다. 강의에 열정적이었고, 아이들을 사랑했고, 매일 출근하는 교실로 가는 길은 항상 즐거웠다던 선생님은 뇌종양 판정을 받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강의를 더 했다. 병으로 인해 한쪽 팔과 다리와 시력에 문제가 생기자 그때서야 강의를 그만두게 된다.

교직에서 퇴직한 후 그는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가르쳤던 아이들을 만나러 여행을 떠난다. 페이스북으로 공지를 하고 자신을 재워 줄 소파를 구하고 미국 전역을 돌고 돌아 여행을 시작한다. 성치 않은 몸으로 치료도 거부하고 길거리에서 객사할 위험도 감수하고...

그 여행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은 모두 그의 성정을 칭찬하고 자신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선생님을 기꺼이 환영한다. 한 꼭지 한 꼭지 그들의 에피소드와 실 학생들의 코멘트로 이루어진 페이지를 읽어내리면서 이렇게 열정적인 선생님을 만난 아이들이 부러웠다. 만약 내 청소년 시절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선생님이 계셨다면 나의 인생도 달라졌을까?

적어도 생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의 시행착오와 고민과 생각 없이 지나온 날들에 더욱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죽음의 문턱에 있는 다비드 선생님과 나의 나이가 크게 다르지 않데, 그는 어쩜 저렇게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었을까. 그의 커리큘럼 중 내 심장을, 머리를 강타했던 물음이었다.

너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네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과연 내가 한 번이라고 위와 같은 물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하루하루 살아내기 급급해서 취업에 급급해서 목적 따위, 우선순위 따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취직해서 돈을 벌고 생활하면 되겠지 싶은 게 나의 젊음이었던 것 같다. 왜 일을 하는지, 내가 즐거운 일은 무엇인지, 내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다비드 선생님의 말씀처럼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삶에 대해서, 무력하게 떠나지 못함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목적과 삶의 대한 자세 같은 것들.

모든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했다지만, 걔 중에는 분명 선생님에 대한 서운함이 있던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아이들에게 던진 질문만으로도 그는 스승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는 학창 시절의 모든 선생님을 통틀어서 나에게 인생의 목표에 대해 말해주던 선생님은 없었다. 또한 내 인생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도, 그들도 나름의 직업의식이 있었겠지만, 어느 한 분, 어린 나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신 분은 아무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 다비드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셨더라면 아이들의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질 것 같다. 나 역시, 이런 선생님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진도를 나가고 시험을 잘 봐서 대학을 꼭 가야만 한다고 강요하던 선생님보다도, 내 인생의 목표에 대해, 내가 가진 우선순위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줄 수 있는 선생님.




“모두가 자네를 항상 좋아하도록 만들 수 있을 거라 자신 하나?

한껏 비꼬며 던진 이 물음에 마키아벨리의 논쟁이 숨어 있음을 나는 즉시 눈치챘다. 마키아벨리는 제자인 젊은 공자에게, 타인의 사랑은 결코 억지로 얻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는 절대적으로 백성에게 달렸으며, 다만 군주는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들 수는 있다고 했다. 나는 학생들이 두려워하는 선생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 아뇨, 하지만 학생들이 저를 존경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요, 제가 수업 준비를 잘해가고 가르치는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학생들은 저를 존경할 테고, 아이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 존경할 테고, 또 그런 존경심이 들면 자연희 저를 좋아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p49


“평범한 스승은 말을 하지만, 괜찮은 스승은 설명을 하며, 훌륭한 스승은 몸소 보여주고, 위대한 스승은 영감을 준다”. 작가이자 학자인 윌리엄 아서 워드가 한 말이다 p58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과장을 하고, 축소해서 말하고, 충돌을 피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돌려 말하고, 편리하게도 잊어버렸다고 얼버무리고, 진실을 숨기고, ‘강자’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아무렇지 않게 사소한 거짓말을 내뱉고, 그러면서 사진이 정직한 사람이라 믿는다. 그래, 나도 거짓말해, 그럼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잖아? 이렇게 스스로를 속이면서. 그러나 과연 정말 다치지 않을까? p84


그러나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정말로 알았을 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사는 법을 배운다. 삼키기 힘든 교훈이다. 이제야 겨우 사는 법을 배웠는데 곧 죽는다니.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p148


마크 트웨인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태어나지 전 영겁의 시간을 죽어 있었지만, 그로 인해 괴로웠던 건 눈곱만치도 없었으니까.”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p175


혼자서 뭐든 잘하는 게 남의 사랑이 필요 없다는 듯이 아니라는 걸 비로소 깨달으면서, 한없이 겸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사랑이 필요했고, 내 인생에도 저런 사랑이 존재했으면 싶었다. p183


[병신으로 사는 것에 관하여] 낸시 메어스

먼저, 의미론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병신이다. 이는 나 스스로 내게 붙인 수식어다. 몇 가지 선택지 중에 고른 것인데, 그중 가장 흔희 사용되는 것이 ‘장애인’과 ‘불구자’다. 병신이라는 수식어를 쓰기로 한 결정은 수년전에, 아무 생각 없이, 그 단어를 고른 동기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내린 것이다. 지금도 어떤 동기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동기가 복합적인 것이고 누국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병신이건 아니건-‘장애인’이나 ‘불구자’라는 말은 아무렇지 않게 흘려들으면서 ‘병신’이라는 말에는 움찔 한다. 어쩌면 나는 그들이 움찔하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만만히 찮은 상대로로 보기를, 비록 운명/신/바이러스가 곱게 봐주지 않아서 이렇게 됐지만 자기 존재의 잔혹한 진실을 똑바로 마주 볼 줄 아는 사람으로 보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병신의 몸으로, 으스대며 활보한다. p196

학생들이 앞으로 뭘 할지 결정하지 못해 힘들어할 때면, 가상의 상황을 제시해 그 원칙을 깨닫게 해주었다. 우선 수백억 원짜리 로또에 당첨됐다고 가정해보라고 했다. ‘아마 다들 제일 먼저 쇼핑을 실컷 하고 싶을 거야.’ 처음엔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나면 외국 여행을 하고 싶겠지.’이런 식으로, 자신과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다 사고 세계 곳곳을 안 가본 곳 없이 다 돌아다녀본 시점까지 시나리오를 전개한다. 그렇게 하고도 돈이 넘쳐난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뭘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은지 학생들에게 물었다.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어떤 학생들은 좀처러 대답을 못해서 내가 ‘너, 사진 찍는 것 좋아하지? 그건 djEO?’라든다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거라든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싶은 타이들이 혹시 있니?’ 같은 유도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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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학생들이 비록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돈을 위해 꿈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그래서 금정적 보상도 받으면서 영혼 또한 살찌워줄 직업을 찾으라고 늘 격려했다. p199


물질적 부와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윌든”의 한 구절을 읊어주었다. ‘나는 다른 누군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나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취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그 방식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내가 나에게 맞는 또 다른 방식을 발견할 가능성은 둘째 치고, 이 세상에 최대한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신중하게 자기 자신만의 길을 찾아내 그것을 추구했으면 하며, 자기 아버지 혹은 어머니 혹은 이웃의 방식을 무작정 따라가지 않았으면 한다. 젊은이가 목수가 될 수도 있고 농부가 될 수도 있고 혹은 뱃사람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니, 하고 싶다는 일을 못하게 막지만 않으면 된다. 뱃사람이나 도망 노예가 북극성을 눈으로 좇듯, 우리는 오직 어떤 수학적인 점으로써만 방향을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면 평생 살아가는 데 안내자로서 부족함이 없다. 비록 정해진 시간 안에 목적한 항구에 다다르지 못할지언정, 올바른 항로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p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