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의 에너지는 전염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수업 전에 늘 내 기분을 ‘좋음’ 쪽으로 맞췄다.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오는 날이면,
속으로 조용히 외쳤다.
“훠이훠이, 가라. 지금은 네가 머물 곳이 아니란다.”
나는 수업을 공연처럼 생각했다.
아이들은 관객이었고, 나는 매순간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터뜨리는 배우였다.
내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움직이는가에 따라,
아이들의 집중력과 눈빛이 달라졌다.
조금이라도 내가 흐트러지면 그걸 감지하고,
수업의 분위기는 금세 느슨해졌다.
그래서 나는 늘 적당한 긴장감과
최대한 끌어올린 에너지로 아이들을 맞았다.
그렇게 수업의 리듬을 만들고,
아이들이 수학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렇게 수업하느냐고?
아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에너지를 끌어모아 태우는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몸이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움직일 수 없는 날들이 찾아왔고,
허리는 어느 순간 신호를 보냈다.
“이 방식은 오래 못 간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정신과 상담을 받던 날, 나는 그 믿음을 털어놨다.
그러자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예영씨의 착각일 수 있어요.
제가 오늘 컨디션이 조금 안 좋다고 해서,
환자 상태가 곧바로 나빠지진 않잖아요?
학생들도 각자의 세계가 있어요.
생각보다 선생님보다 자기 상태에 더 집중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예영씨는 프로잖아요.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아도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인걸요.”
그 말이 이상하게 뇌리에 딱, 박혔다.
너무나 명확하고, 당연하고,
그런데도 나는 이제껏 몰랐던 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힘을 빼기 시작했다.
‘잘 하려면 더 에너지를 써야 해’라는 신념은
조금씩 풀려나갔다.
‘덜 소모되면서도 잘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믿는다.
‘선생님의 분위기는 아이들에게 전해진다’는 걸.
특히 어린 학생들은 선생님의 눈빛, 말투, 손동작까지 감지한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조금 더 따뜻한 말투,
조금 더 명료한 리듬으로 수업을 만든다.
반면, 중고등학생들은 다르다.
그들은 오히려 덜 간섭받을 때 자기답게 집중한다.
그들에게는 감시보다 신뢰를,
긴장감보다 여유를 건네주려 한다.
이제는 안다.
모든 아이들이 다르고,
모든 수업이 같을 수 없다는 걸.
나는 여전히 선생님이고,
아이들의 리듬을 듣고,
내 감각으로 수업의 공기를 조율하는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나를 다치지 않게 가르치는 법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