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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양파씨 Nov 07. 2018

낯선 아프리카에서의 첫 주말

사실은 이 낯섦을 찾아온 거다



오랜만에 찾아온 낯섦




인도나 신호등이 없는 아비장의 길거리





숙소에 체크인하자마자 짐을 놓고 슈퍼로 향했다. 인도가 없어서 차도를 걸어 슈퍼까지 가는데, 잠깐만 걸어도 매연에 머리가 떡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 떠나기 전에 열심히 챙긴다고 올리브영을 그렇게 들락거렸는데 실수로 컨디셔너만 잔뜩 사서 머리가 비단결이 되게 생겼다. 집 앞에 있는 작은 슈퍼에는 먹을 거며 공산품이며 선반에 온통 프랑스 상품이었다. Garnier 샤워젤이 8천 원, Dove 샴푸가 8천 원, 코트디부아르에서 난 카카오로 프랑스가 만든 초콜릿이 만 원, 디저트용 요구르트 4개에 8천 원... 왘....  이런 미친 물가!!! 비명소리가 나왔다. 도대체 현지 사람들은 어떻게 이 물가를 감당하며 사는 걸까!!! 꼭 필요한 것만 골랐는데, 금세 3만 원을 훌쩍 썼다. 





길가에서 과일 파는 가판을 흔히 찾을 수 있다




도로변에 과일을 파는 아낙들이 있어 얼마인지 물어보니 조그만 바나나 네 개에 2백 세파, 약 4백 원 정도란다. 아직 환차에 적응을 못한 나는 2백 세파가 4천 원 정도라고 생각하고 흠칫 놀랐다. 이게 뭐 시기 사천 원이나 혀!! 내가 신참 떼기로 보인다고 사기 치는 거 아니겠지??  어쨌든 배고픈 나는 "바나나 하나 주세요!"  했고, 아낙들은 "뭐 하나?? 바나나 하나, 하나 달라고요???" 하며 어이없게 쳐다봤다. "아니, 저거 네 개 달려있는 거 하나 달라고...". 아낙들은 내가 바나나를 사서 지나간 후에도 한참 동안 낄낄거리면서 "어떻게 바나나 하나를 달랰ㅋㅋㅋㅋㅋㅋ 어떻게 바나나를 하나만 죠 ㅋㅋㅋㅋㅋ"며 웃었다. 네 그래도 저의 짧은 불어가 작은 기쁨을 드렸다니 다행이네요ㅠㅠㅠ 


비행기에서부터 속이 안 좋아서 구토를 계속했는데, 달짝한 스프라이트를 마시니 기운이 좀 났다. 슈퍼 쇼핑을 두둑이 마친 봉다리를 들고 숙소로 들어서는데, 초등학생 저학년쯤 만한 남자아이 무리가 지나가다 나를 보며 "웟츠 유어 네임!!" 소리를 지른다. 꼬맹이들이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는 하는 모양이다.  "내 이름은 리(Lee)야!!" 내가 불어로 답하자 자기들끼리 뭐라고 뭐라고 쏙닥쏙딱 까륵까륵 거린다. 한 아이가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스프라이트를 보며 "그거 줄 수 있어??" 물어본다. "이거 내가 먹던 건데 괜찮아??" 마시던 스프라이트를 건네주자 한 꼬맹이가 신이 나서는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와 재빠르게 채갔다.


신이 난 애들을 보며  썩 기분 좋게 스프라이트를 뺏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원 룸에 작은 화장실과 주방이 있는 숙소는 썩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방바닥이 화장실 같은 타일 소재에, 벽은 하얀 시멘트로 울퉁불퉁하게 칠해져 차가운 느낌이 났다. 텔레비전은 어떻게 트는지 몰라 잠시 쭈물떡 거리다 포기했고(물론 볼 것 같지도 않았지만), 벽장 안에는 먼지가 소복했다. 따뜻하고 긴 샤워를 마치고 나와 잠을 청했다. 침대 매트리스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몸을 뉘이니 속에 용수철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아ㅏ.... 여기다 135만 원을 썼네-_- 생각하며 스무 시간을 내리 잤다. 돌아 누울 때마다 용수철이 삐그덕 삐그덕 대는 바람에 잠이 자꾸 깼다.




배가 고프다. 정말로




다음날 오전에 일어나니 속이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안 좋았다. 이틀간 아무것도 못 먹은 꼴이었다. 뭐라도 먹을 게 없나 찾아보니 또 다른 나의 영혼의 음식 비빔면이 있어 첫 요리에 도전했다. 문제는 가스레인지를 도통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가스통이 집 안에 있다!! 심지어 가스통이 가스레인지에 연결되어 있는데 그 위에 성냥갑이 놓여있었다. 왜 성냥갑이 여기 있는거짘!!! 설마 가스를 열어서 성냥에 불 붙이는 그런 시스템은 아니겠지???!!!! (나중에 보니 설마가 사실이었다). 

가스통이 집안에 있다 ㅠㅠ


건물을 24시간 지키는 경비 겸 관리인 남자애가 항상 마당에 있다. 그에게 가스를 어떻게 쓰는지 물어봤지만 자기는 한사코 모른다고 한다. 코트디부아르에서는 남자가 절대 요리를 하지 않는다며, 여자가 요리를 하도록 놔두는 것이 로맨틱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집 청소하고 요리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은 무조건 여자다!! 했다. 흠 글쎄 아프리카 여자들 이야기도 들어봐야 그게 통용되는 생각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나는 한국에서는 남자가 요리하는 게 로맨틱한 거란은 코멘트를 빼놓지 않았다. 그래 어쨌든 요리를 안 하니 가스도 쓸 줄 모른다고 했다. 옆 방에 사는 여자들한테 가스 사용법을 물어보고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다들 친절하긴 친절하다!


전기 주전기로 뽀글이라도 하려 했더니, 하얀 물 때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거기서 나온 물을 먹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수단으로 전자레인지에 물과 면을 넣어 돌려 봤지만, 비빔이 돼야 할 면은 떡이 돼서 나왔다. 한 숟갈만 먹어볼까 하고 청했는데, 그 정도로 배가 고프지는 않았는지 도저히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결국 아까 사 온 바나나와 요구르트로 끼니를 때웠는데,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플레인 요구르트와 단 바나나가 좋은 궁합이었다. 먹고 난 바나나 껍질을 잠시 테이블 위에 올려놨더니 검은 개미 떼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개미떼는 바나나 껍질이 사라진 후 거의 일주일 동안에도 그 주변을 서성였다. 개미는 엄청나게 기억력이 좋은 동물... 아니 곤충이었다. 


저녁 즈음인가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현지 심카드를 꼈으니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는데... 바로 그 공항 세관에서 만난 외국인 등쳐먹는 악덕 세관원일 것이다. 물론 운이 좋게도 "난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은 친구다" 란 논리를 펴서 풀려나기는 했지만. 잠시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나 소로야 소로! 기억하지? 나한테 전화한다구 해놓고 왜 전화 안 했어?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내가 전화를 한다고 한 게 아니라 네가 전화를 하라고 하고 나는 어물쩡 넘어간 거지!! "응응?? 뭐라구?? 여기서 전화가 잘 안 들리네??? 여보세요??? 여보세요??!!!" 냉큼 정화를 끊어버렸다.


갑자기 마음이 너무 슬프고 울적해졌다. 이틀 동안 못 먹었으니 배가 고팠고, 이 곳은 너무 낯설었다. 악덕 세관원이 전화나 하고 있고... 창 밖에는 야자수 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고, 건물을 지키는 관리원들이 해먹에 누워서 평화롭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래, 스무 살 무렵 처음 스위스에 갔을 때도 한 이틀인가를 바나나로 때웠던 기억이 났다. 하필 처음 살아보는 나라가 스위스라 영어도 불어도 제대로 못해 그 물가가 비싼 곳에서 익숙하고 싼 과일을 샀더니 그게 바나나였다. 몰도바인 룸메이트가 차려준 으깬 감자와 소시지를 먹을 때까지 나를 연명시켜준 바나나가 아프리카에서도 역할을 제대로 한다.


스위스, 독일, 미국을 거쳐 나름 여러 나라에서 빨리 적응하고 살았던 나였는데. 그렇게 아프리카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었지만, 아직 아프리카는 너무 낯설고 무서웠다. 코트디부아르에서의 1년, 잘 해낼 수 있을까? 왠지 스스로가 작아졌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낯섦이 조금 두렵고 배고프긴 했지만, 그래서 앞으로가 점점 더 기대되는 거겠지? 여기선 모든 게 처음이니까 서투른 거다. 바나나를 사는 것도,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것도 처음이니까 쉬운 일이 아닐 거다.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고 조금씩 적응해보자. 


사실은 이 낯섦을 경험하려고, 그 익숙함을 모두 뒤로 하고 씩씩하게 떠나온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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