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안의 낯선 사람들

by 오슬

“벌써 떠나?”

로비 소파에 앉아 있던 미국인 친구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기차 타는 거, 여기선 별로 좋지 않다던데... 밤엔 특히. 게다가 장거리잖아.

하루 이틀 더 있다가 나랑 같이 가는 건 어때?”

그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역으로 향했다.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무서울 게 없었다. 게다가 혼자가 더 편했다.


델리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밤 10시 정각에 플랫폼을 빠져나갔다. 종착지인 바라나시까지 12시간, 기차가 천천히 속도를 올릴 때, 나는 침대칸 문을 밀고 들어갔다. 마주 보는 네 개의 침대 중 아래칸 하나가 내 자리였다. 시트는 누렇게 바랬고, 덥고 눅눅한 공기가 천장 팬을 따라 느리게 돌았다.

이미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맞은편 위아래 칸, 인도 남자들. 말도 없었고, 시선도 피했다.

내가 앉자 또 한 명이 들어왔다. 두 남자들과 대화도 없고 인사도 없었지만 전혀 모르는 사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들의 짧은 눈빛 사이에 서로 알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그것도 오래전부터.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위칸으로 올라갔다. 나는 어떤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그의 모든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짐을 침대 아래에 밀어 넣고 몸을 눕혔다. 간헐적인 철컥거림이 객실 안의 침묵을 갈랐다. 셋 중 누구도 나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세 개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다는 걸 알았다. 아무 대화도, 작은 움직임도 없다는 것이 그 사실을 오히려 더 확실하게 했다.

30분쯤 지났을까. 위칸의 남자가 한 손으로 침대를 두드렸다. 아무 말도 없이. 맞은편 아래칸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짧고 조용한 교환, 나는 놓치지 않았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승무원이었다. 그의 손전등 불빛이 객실을 훑었다. 그는 나의 티켓을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편 둘에게도 같은 절차. 단, 위칸 남자와 눈을 맞춘 후엔 아주 짧은 대화가 오고 갔다. 그 후, 그의 시선이 내 얼굴 위에 잠시 머물렀다. 말은 없었지만,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승무원은 문을 닫고 나갔다.

일정한 진동으로 흔들리는 창문은 흐릿한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다리를 뻗으며 등을 기댔다. 내 가방은 침대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여권과 현금은 이미 바지 주머니로 옮긴 뒤였다.


열차 안의 낯선 사람들.

종착지까지 12시간의 긴 여정,

그리고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밤은 이제 막 시작 되었다.


열차 바퀴와 철도의 마찰음만 들리는 시간, 모두가 잠에 빠져들 만한 그때, 위칸 남자가 소리 없이 내려왔다. 내 자리를 스치듯 지나 맞은편 남자 앞에 섰다. 둘은 눈을 마주쳤고, 맞은편 남자가 내 위칸으로 올라갔다. 자리가 서로 바뀌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나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눈꺼풀 너머로 그들의 움직임은 선명하게 전해졌다.

내 침대 아래에서 가방이 ‘툭’ 하고 아주 작게 움직였다. 흔들림 때문인지, 누군가 건드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몸을 뒤척이는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 가방은 그대로였지만, 끈 한쪽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나는 다시 바지 주머니 속 여권과 현금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셋은 말없이 움직였다. 일정한 손짓, 작은 물건의 교환. 생수병이 두 번 오갔다. 그건 말보다 정확한 신호 같았다.

나는 그들의 시선이 한 번도 내게 닿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불편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어색할 만큼 자연스럽게.

밤이 깊어갈수록 나는 잠에서 더 멀어져 가며 더 또렷해져 갔다. 내 국적, 외모, 침대칸 밑의 짐. 무언가가 그들의 계획 안에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계속 눈을 떴다. 밤은 길었고 이 침대칸에 밝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열차의 속도가 느려지며 새벽 기운이 객실 바닥을 타고 들어올 무렵, 위칸의 남자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맞은편의 두 그림자도 조용히 일어났다. 어떤 소리도 내려하지 않는 몸짓이, 오히려 그들의 숨소리를 키웠다.

그때, 금속성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객실을 긁었다.

동전이었다. 누군가 떨어뜨렸는지, 열차가 흔들렸는지 알 수 없었다. 동전이 문쪽으로 굴러갔다. 객실 안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동전이 문에 부딪혀 쓰러질 때까지.

잠시 후 조용한 어둠이 다시 돌아왔고 셋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흔들리던 세 개의 그림자가 내 침대 앞에서 멈췄다. 나는 벽을 등지고 주먹을 쥐었다. 그림자의 작은 움직임에 따라 내 입과 다리가 어느 순간 반응을 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

갑자기 객실의 문이 열리더니 한 명이 나가고, 또 한 명이 뒤따랐다. 마지막 남자가 고개를 숙이더니 내게 말했다.

“당신 자리, 방금 나간 저 친구 자리였어요. 자리를 혼동하신 것 같아요. 저 친구가 어릴 때 사고를 당해서 높은 데를 무서워하거든요. 이상하게 굴었다면 미안합니다.”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과도, 변명할 기회도 놓친 채 그들을 객차 밖으로 보내고 말았다.

급히 티켓을 꺼내 확인했다. 내가 있던 곳은 45번, 내 티켓의 번호는 47번, 위칸이었다.


열차는 이름 모를 정착지에서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원래 자리였던 위칸으로 올라갔다.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며 열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또다시 객차 안은 철로의 둔탁한 소리만 남았다.

흔들리는 창으로 언뜻 내 얼굴이 비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열차 안의 낯선 사람들.

그건 그들이 아니라

의심으로 모든 시선을 왜곡해 온,

익숙한 공포로 낯설어진 내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