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작곡을 할 줄 모른다.
악보에 있는 괴상한 기호도 모르고, 플랫이니 샵이니 구분도 못 한다. 내게 악보는 고등학교 수학책 같다고나 할까... 알아보기는커녕 볼 수록 마음이 멀어진다.
그런 내가 한 나라의 국가를 작곡했다.
그리고 지금, 내 집 밖에는 내 이름을 부르며 분노에 찬 군중들이 서 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모든 것은 한 끼 식사 때 시작되었다.
그날 나는 이제 막 독립한 로젤리아 공화국을 여행 중이었고, 현지 식당 ‘고르고 골라’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호박으로 만든 딱딱한 빵과 반쯤 식어버린 홍야자 수프가 놓여 있었다.
옆자리에는 통역사, 이름이 뭐더라... 여하튼 그 사람이 있었다. 그가 갑자기 내 팔을 툭 치며 말했다.
“미스터 구! 오늘 모습이 딱 예술가 같아요. 잠깐 연기 좀 해줘요.”
며칠 동안 면도를 못 해 듬성듬성 난 수염 탓이었을까. 그는 누군가를 데려왔다.
"장관님, 이분이 바로 음악가 구선생님입니다."
음악가라... 이 통역사, 뭔가 사기꾼 냄새가 나더라니.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시 문화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내 앞에 서류 한 장을 내려놓았다. 거기에는 '로젤리아 임시정부 국가 작곡 의뢰서’라고 쓰여 있었다.
“선생님, 우리에게 국가가 필요합니다. 부디 우리의 염원을 저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국가요? 애국가 같은 거요?”
나는 노래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명예 시민증도 주고, 집도 한 채 제공해 준다고 하고... 그동안 이곳저곳 정착하지 못해 떠돌아다니던 내게는 아주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그럼...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작곡가가 아니었지만, 수집에는 재주가 있었다. 세계 곳곳의 민속 음악과 희귀 음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히말라야 산간 마을, 극지방의 유목민, 중남미의 작은 부족들...
그러다 폴리네시아의 쿠니푸니 왕국이라는 외딴 섬나라의 음악 하나를 발견했다.
슬프고도 따뜻하고, 동시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선율. 무엇보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곡이었다. 거기에다 약간의 편곡, 악기 배치, 리듬 조절, 로젤리아어 가사를 삽입했다.
그리고 내 작품으로 발표했다.
물론 안다. 이건 도둑질이다. 하지만 그때는 생각했다.
“이 나라도 지금 음악이 필요하고, 어딘지도 모를 저 섬나라의 노래는 언젠가 사라질 운명인데... 누가 알겠어?”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국가가 처음 연주된 날, 국민들은 울고 웃었고, 대통령은 손수건을 적시며 말했다.
“이건 로젤리아의 두 번째 독립입니다!”
신문은 나를 ‘로젤리아의 베토벤’이라 칭송했고, 내 숙소 앞에는 매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각종 행사의 귀빈석에 앉았고, 이건 좀 너무 나간 거 같긴 한데... 새 지폐에 얼굴까지 실리게 되었다. 그 지폐는 차마 쓰지 못하고 지금도 내 지갑 속에 간직하고 있다.
점점 나 스스로도 내가 꽤 멋진 작곡가처럼 느껴졌다. 기존의 곡을 활용하는 것도 어쨌든 능력 아닌가?
“들을수록 감동적이잖아, 이 곡... 어디 변두리에서 없어져 버릴 노래가 나를 통해 훌륭한 국가가 되었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정확히 1년 뒤였다.
쿠니푸니 왕국의 한 학자가 '해수면 상승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로젤리아에 방문했다.
세미나가 시작되고 행사를 위해 로젤리아 국가가 울려 퍼지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곧 의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노래… 우리나라에서 쓰는 장례곡이랑 아주 비슷한데요?”
“그럴 리가요. 이건 우리 국가입니다.”
"그럴 리가가 아니라 정말 그런데요? 우리나라 공식 장례곡이에요. 주로 왕실의 장례 행사 때 사용하죠."
진상은 곧 밝혀졌다.
그 곡은 쿠니푸니 왕국의 국가 기록물에 떡하니 올라가 있었다. 나는 국제 저작권 협약에 따라, 순식간에 국가 표절 범죄자가 되었다. 정부는 지체 없이 성명을 냈다.
“정부는 표절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으므로, 모든 법적 책임은 작곡가 개인에게 있습니다.”
나는 로젤리아의 베토벤에서 사기꾼으로 추락했다.
지금, 내 집 밖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사기꾼!”
“도둑질한 곡으로 우릴 울렸어!”
“어떻게 장례곡을 국가로 쓸 수 있어?”
누군가는 내 얼굴이 찍힌 지폐를 밟고 있고, 누군가는 내 집 창문으로 던질 무언가를 찾고 있다.
나는 창문 뒤로 숨었다.
'그래... 내가 만든 음악은 아니었어. 하지만 그 감동은 진짜였잖아? 그럼 그 순간의 울음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나는 창을 열고 말했다.
“여러분... 그 음악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 감동은, 진심이었잖아요?”
그때 군중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그 감동은 네가 준 게 아니었어!”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그래. 그건 내가 준 감동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내려온 문화의 조각, 누군가 삶을 다해 만들어낸 선율, 그리고 그것에 대한 권리였다.
나는 훔쳤고, 나의 이름을 달았으며, 그 영광을 가로챘다.
그제야 알았다. 작품은 훔칠 수 있어도, 그 권리까지는 훔칠 수 없다. 그리고 그 권리를 무시한 감동은 언젠가 반드시 부서진다.
내가 만든 건 음악이 아니라, 거짓 기억이었다.
그 후, 국민들은 노래를 멈췄다. 그 누구도 더 이상 그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그 음악은 영원하지 않았다. 저작권이 지켜지지 않은 음악은 살아남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확실히 안다.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건, 그 노래의 선율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기 위해 쏟은 창작자의 고통 때문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