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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온도 Oct 01. 2022

MBTI라는 세계




최근 나는 MBTI에 꽤나 오래 심취해 있다.



“당신은 T라서 그래, 그래서 날 이해 못 하는 거야.”



어릴 적 내가 혈액형으로 인간을 구분하려 했던 것.그 유형이 4개에서 16개로 늘어난 것만 달라졌다.


‘사교적인 외교관 ESFJ, 엄격한 관리자 ESTJ


나와 남편의 성향은 한 끗 차이로 참 많이 달랐고, 연애 초, 비슷한 듯 다르게 생각하는 서로의 모습에, 나의 하루 온도는 폭염과 한파를 오고 갔었다.


“왜 그렇게 MBTI에 집착하는 거야?”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잖아.”


남편은 사람을 그렇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나를 보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어릴 때부터 엄마 가게에서 일을 하며 서비스직의 참 경험을 지독히 했던 나는, 사람의 성향을 알면 그만큼 상대하기도 편하고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에, 친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자 혈액형을 물었었다. 이제는 그 갈래가, 좀 더 세분화된 MBTI로 바뀌었을 뿐.


하지만 사람을 16가지 유형으로만 구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쉽고도 슬픈 일인가. 참고하긴 하지만 역시나 그 안에서도 우린 제 각각인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크게 아픈 적이 있었는지, 어떤 사람을 멘토로 삼았는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사는지 등등. 열여섯 개로 나누어 설명하기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며, 그 변수는, 모두에게 각기 다른 매력을 선물해주었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여중, 여고를 거치며 활발한 아이가 되어갔고, 1형 당뇨라는 병을 얻으며 더 활동적으로, 도전하는 걸 즐기게 되었다.

병과 함께하기 전에 나는 사소한 작은 일도 선택할 때마다 고민하며 우물쭈물했지만, 당뇨와 함께한 스무 살 이후부터는 스스로를 믿고 무엇이든 두려움 없이 선택하며, 부딪혀 경험할 수 있는 내가 되어갔다.

이렇게 성장하며 겪은 많은 일들은 나를 좀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종종 ‘ 내가 내향형 인간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바로 글쓰기를 할 때였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하는 일도 즐겁지만, 내면에 있는 나와 이야기하는 시간인 글 쓰는 시간에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지고 에너지가 생기는 기분을 느낀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에게도 성향의 양면성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MBTI는 내가 남편을 가짜가 아닌 진심으로 이해하게 해 준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테스트는 믿지도 않고, 해보기 싫다는 남편에게 기어코 휴대폰을 내밀어 체크해본 결과. 남편은 나와 딱 한 가지만 달랐다.


“역시 T였어!”


예상은 했지만 역시, 남편은 감정형 F가 아닌 이성형인 T였다.

내가 아프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병원 가봐.’ 였기 때문에 테스트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더욱 확실해졌다.

물론 무조건 맹신하다 큰코다치는 일도 있겠지만, 남편의 예측 가능해진 모습은 나에게 심리적 안도감을 주었다.


‘아, 지금 이 사람은 최선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적인 해결보다 공감을 더 원하는 나지만, 남편의 머리는 어쩔 수 없는 공감을 이끌어 내기엔 역부족이다.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되었든 해결해주고 싶어 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보다 고민해결에 도움이 되는 직접적인 방법을 설명해 주려고 한다.


처음엔 남편의 이런 모습이 내게 무심한 것 같고,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무심한 말투지만, 되려 나보다도 나의 모든 걸 세심히 기억해주고 챙겨주는 모습에, 남편에게 있어 진심이란, 기억해주고 해결해주는 마음이란 걸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저 표현의 영역이 서로 다르게 깃들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서운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그저 이해의 영역에서의 이해랄까.


친구사이에서도 이 부분은 예외 없이 내게 도움을 준다.

오랜 친구인 S는 마음으로 늘 챙겨주고 싶은 친구다. 고등학교 시절, 우린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난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어느덧 서른 살 애어른이 되어 있었고, 그제야 진짜 그때 그녀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그 상처를 알았었더라면, 더 아껴줄 수 있었을 텐데.’


둥근 보름달이 떠 있던 5월.

S의 얼굴에도 환하게 웃음이 번지던 날. 나는 그녀의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바보 같은 친구가 되었었다.

티 내지 않았지만, 그저 들어줄 수밖에 없었지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길 바랐다.

이제는 이 친구가 왜 한동안 연락이 없는 건지, 기어코 손해가 되는 일을 하면서도 착할 수밖에 없는지, 마음이 힘든데도, 왜 계속해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때문일까, 섭섭한 감정도 더 이상 들지 않았다.


그냥 그녀가 무얼 하든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해 내길, 또 마음이 다치지 않길, 나의 온 마음을 다해 조용히 응원하고 있을 뿐이다.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


언제 돌아와도 그 자리에 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잘 들어주는, 그러다 가끔은 따끔한 충고 한마디를 해줄 수 있는 친구.


어쩌면 MBTI 덕분에, 30대의 나에게 진짜 친구란 이런 마음 편한 존재가 되어있다.





-이상, ESFJ-A의 MBTI 세계관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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