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의 온도 Nov 30. 2022

좋아하는 것




“발표할 사람 손들어 보세요.”



매일마다 학교에서 들었던 선생님의 물음이다.

수줍음 많던 초등학교 때까지 나는 이 질문에 손을 들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그냥 ‘수업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필기를 하고 조용히 학교를 마쳤다.

나는 스스로 ‘조용히 공부 못하는 애’라고 생각하고 지냈다. 공부를 잘했던 언니와 비교 때문이었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저 기질에서 비롯된 소심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내성적이고 조용했던 것과 반대로 한 학년 위였던 언니는 동네 골목대장 스타일이었다.

시골학교라서 학교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데,기사 아저씨가 언니와 내가 자매인 걸 이사 갈 때 알 정도였다면 내가 얼마나 조용했고, 또 언니는 얼마나 활발했는지, 이 둘이 얼마나 달랐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나의 유전자는 유난히 말이 느려 벙어리 아니냐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게 있어 다행이었는데, 바로 노래와 책 읽기였다.

세상 얌전한 아이였던 나는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노랫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덩실덩실거리며 걸어 다녔다고 한다. 얌전한 척하고 있었던 걸까? 엄마 말로는 태교로 미싱 일을 하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하루 종일 들어서 그런거라는대, 진실을 알 수 없지만, 음치였던 아빠를 생각하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노래 부르기만큼은 빼지 않았던 건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초등학교 5학년, 교생 선생님이 가시는 날.

교생 선생님과 헤어지는 이별파티 전 날, 선물을 준비하자로 시작되어 각자 과자를 준비하고 노래도 불러드리자 고하는데, 동요 부르 기반에 속해 있던 내가 지목당했다. 그렇다고 빼지는 않았던걸 보면 은근히 하고 싶었나 보다. 파티 전 날 밤새도록 떨려했고, 노래를 부르던 날 교실의 그 고요한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보보- 늦은 후회’


초등학생이 부르는 절절한 이별 노래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노래를 왜 불렀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엔 매우 핫한 노래였던 건 분명하다.


다른 하나의 취미인 책 읽기의 시작은 학교를 다니며 한글을 떼었을 무렵이다. 우리 집엔 그 쯤 고모의 권유로 위인전 등 초등 전집이 들어와 있었다. 당시 전집 중 아직도 기억나는 건 ‘헬렌 켈러’다.

셀 수 없을 정도로 그 책을 읽었었는데, 은행잎을 끼워두기도 하고 애지중지하며 읽었던 기억이 좋아서였을까? 아직도 좋아하는 위인을 떠올리면 헬렌 켈러를 먼저 꼽는다.

 

초등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 조용한 나에게 시선이 집중된 날이 있었다.


“편지를 써줬는데 읽다가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나지 뭐예요.”


그 시절엔 시골학교라 그런지 학기가 끝나고 선생님과 학부모가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의 공개적인 칭찬으로 우리 엄마의 입꼬리가 하늘로 승천했던 날이었다. 엄마는 어떤 편지를 썼길래 그러시냐고 계속 물어봤지만 난 그저 쑥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아마 다른 엄마들과 아이들 사이에서 엄마와 내가 가장 으쓱했던 날이 아닌가 싶다.



타고난 기질과 유아기에 경험했던 일들이 성인이 되어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나는 행동이 느리며 말 수가 적었고 뛰어다니며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글을 읽거나 TV 보는 걸 좋아했고, 노래 부르기와 춤추는 걸 좋아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타고난 기질은 변하지 않나 보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받았던 칭찬은 좋지 않은 기억력임에도 생각나는 걸 보면 분명 잠재적인 영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후 중학교에 가서 비로소 알게 된 놀라운 점은 내가 글을 쓰고 시를 쓰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트레스를 표출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밖으로 표출하는 방법이 제각기 다를 뿐.

어떤 이는 러닝머신에서 신나게 한바탕 뛰면서, 혼코노(혼자서 코인 노래방)를 즐기면서 푸는가 하면, 어떤 이는 청소나 빨래를 하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풀기 때문이다.

어떠한 방향이든지 스트레스라는 만병의 근원 덩어리를 물리칠 수 있다면 야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아, 물론 나와 남을 해치지 않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취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