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의 온도 Nov 01. 2022

새로운 취미



최근 나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자전거 타기'


어릴 적 시골에서는 분신처럼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서울로 이사 간 이후부터는 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홀대했던 자전거를 다시 탔던 건 스무 살 이후였다. 그마저도 진짜 자전거가 아닌 실내 자전거.

당뇨 진단 이후에는 헬스장과 집안에서 줄곧 이용했었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운동에 소홀했던 내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었던 운동이었다.

풀내음을 맡으며 진정한(?) 바깥 자전거를 즐기는 건 20년 만의 일이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며 누리던 인프라도 사라졌던 6월.


"가까운 곳은 자전거로 다니는 게 낫겠어."


남편의 말에 전기자전거를 구매했다.

남편은 전동보드를, 나는 전기자전거를 타며 운동도 하고, 주변 시설들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자전거와 보드의 세계로 들어왔다.


결혼 후 3년 만에 찾은 부부의 취미생활.

분명한 건, 자전거는 유산소와 근력을 요하는 운동이니 혈당관리에도 도움을 줄 거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인 자전거와는 달리 전기의 힘을 빌려 탈 수 있는 전기자전거는 갑작스레 찾아올 수 있는 저혈당의 위험에도 조금은 안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심 마음이 놓였다.



7월, 그렇게 무더위와 시작했던 첫 라이딩의 시작으로 10월까지 현재 진행형인 부부의 취미생활에 대해 4개월간의 평가를 하자면, 꽤나. 아니 아주 만족스럽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운동이건 나가기 전까지의 준비과정이 힘든 법. 그 과정만 지난다면, 이후엔 그 힘든 마음을 싹 잊게 하는 행복한 순간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차로만 다니던 길을 자전거로 지다나 보면 어느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내천 변에 나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 사람들

짙은 풀내음을 내뿜는 초록이 무성한 풀잎들

'타닥타닥' 고글에 부딪히는 작은 벌레들의 움직임

귓가에 '펄럭펄럭' 스쳐가는 바람소리

어디서부터 날아오는지 모를 들녘의 내음

바퀴를 빨리 구를수록 더 멀리 도망치는 구름들

잊고 있었던 마음의 소리까지.



자전거에 올라, 자연 속에 드나들다 보니

'이 작은 취미생활이 이렇게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지켜줄 수 있구나.'

'내 마음에도 여유로움이 존재할 수 있구나.'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댁에 가거나, 집 근처 내천 변에서만 자전거를 타다, 최근엔 다른 지역의 자전거길을 다녀오기도 했다. 예컨대, 통영의 해변가에 있는 자전거길을 간다거나, 군산의 고군산 섬을 돈다거나, 옥천의 향수 100리 길을 가기도 한다.

차에 자전거를 싣고 여행지로 떠나 한바탕 자전거를 타고, 남편이 좋아하는 '허영만의 백반 기행'에 나온 현지 맛집을 찾아간다. 그렇게 걷고, 구르고, 타는 여행을 하며, 어느 순간 일상의 해방감을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자전거 타기'라는 취미가 더해졌을 뿐인데, 이전의 여행과는 확실히 다른 여행이 되어가고 있다.


몸으로 자연을 만끽하고, 1초면 지났을 순간을 몇 분 동안 눈으로 담아내서 그런 걸까.

창문이 없어 넓어진 시야만큼, 여행을 담아내는 마음도 넓어졌나 보다.




주말, 오전에 나의 체기 때문에 늦어지긴 했지만 우리 부부는 청주근교의 괴산으로 향했다.

한동안 맡지 못한 풀내음과 가을 냄새.

어느덧 논에는 수확의 끝을 알리는 마시멜로우 덩어리들이 남겨져 있었고, 채 베어지지 못한 벼들이 가냘프게 쓰러져 있기도 했다. 수확의 막바지에 서둘러 농기계를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하루남은 주말을 즐기는 캠핑족들도, 야유회를 나와 족구를 하는 아저씨들도, 그 옆에서 단풍과 함께 사진을 찍는 아주머니들도 모두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가을을 만나러 온 하루. 찬 바람에 추울까 걱정되어 끼고 나온 장갑과 껴입은 옷들에 다시 한번 시간이 지나감을 느꼈던 우리는, 그렇게 해가 고개를 거의 다 넘겼을 때쯤, 저물어가는 가을을 보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

.


취미 이야기로 시작해 모두가 행복하길 바란 가을이었는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싸늘한 가을이 되어버렸다.

매체마다 떠들썩한 변명과 수치로 마음이 더 먹먹하고 서늘해진다. 부디 칼날 서린 말들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후벼 파는 일이 없길 바라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준비(準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