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금속으로 만드는 연금술은 없다
몇 십년 전만 해도 종신고용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가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은퇴할 때까지 이직하지 않고 한 곳을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IMF 이후 종신고용이라는 환상이 깨지면서, 지금은 같은 회사에 5년 이상 있었다고 하면 장기 근속자로 분류되는 추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직'을 염두에 둔 경력 관리에 관심이 더 높아졌다. 물경력을 걱정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흐름에서 비롯했다.
물경력이란 뭘까. 주로 업무 난도가 낮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경력을 일컫는다. '대학교를 막 졸업한 사람이 와도 바로 할 수 있는 일'이나 '다른 회사에서는 하등 쓸모가 없는 경력'을 가리키기도 한다. 전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물경력의 정의와 비슷하지만 후자는 약간 다르다. 전문성이나 난도와는 관련 없이 특수한 업무여서 다른 회사에서 경력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해당 회사에만 있는 특수한 업무만을 한다면 다른 회사에서는 관련 경력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 이 경우를 물경력이라고 해야 할지 여부는 애매하지만, '이직'을 고려한 관점에서 본다면 물경력이라고 분류할 수 있다.
이전 회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물경력을 걱정했다. 경쟁사가 거의 없다시피 한 특수 업종이었기 때문에 이직 시에 경력을 살리기 어려울 것 같은 포지션이 꽤 있었다. 나 또한 그중 하나였다. 전문성이 크지 않은 경력이자 다른 회사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경력, 전자와 후자 모두에 해당했다. 신입도 아닌 경력직인 나에게 이렇게 전문성이 낮은 업무가 주어지는 것이 회사 차원에서도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낭비라고 생각했다. 커리어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일에서 얻는 성취감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었기에 그 상황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게다가 커리어 전환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련 경력을 제대로 쌓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내 포지션에 요구하는 업무와는 거리가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막막했다.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 시점에서 말하자면, 나는 결국 커리어 전환에 성공했다. 진입이 어려운 분야였기 때문에 거의 연금술에 가까워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신비한 연금술이 아니라 치열한 발버둥의 결과였다. 이전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내 커리어를 물경력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다. 그동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하는 현타도 여러 번 찾아왔다. 하지만 내 커리어를 이런 물경력으로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힘들고 외로운 여정이었지만 그 길에서 만나 함께한 동료들 덕택에 노력을 이어갈 수 있었기에, 그 발버둥의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물론 이 기록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경험일 뿐이며 누구에게나 통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물경력으로 고민하는 어떤 분들에게 '랜선 동료'가 되었으면 하는 응원의 마음과 나 자신을 격려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