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뉴스 모니터링을 하다가 한 기사의 어떤 부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원활한 소통의 대척점에 있는 꼰대들은 경청할 만한 콘텐츠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는 문장이었다. 여기서 콘텐츠란 유튜버나 블로그 같은 유형의 콘텐츠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일종의 '주관'이나 '정체성'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기획자로 일하던 나에게는 사무치게 공감가는 내용이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파악해서 잘 그려내봐'가 주특기인 관리자급을 너무나도 많이 목격했으므로. 안타깝게도 많은 기업 조직 내에 자기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관리자급은 매우 드물다. 업무를 지시하는 위치에 있지만 어떤 아웃풋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전달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전달 능력이라기보다는 애초에 자기 관점이 없기 때문에 전달할 내용물이 없는 쪽에 가깝다.
비단 관리자급만 자기 콘텐츠가 필요한 건 아니다. 결국 자기 콘텐츠를 가진 사람이 일뿐 아니라 총체적인 면에서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다. 다만 이건 한순간에 갖출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느 정도의 경험과 세월이 필요하다. 특히 일적인 측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주도적인 자신만의 관점을 사회초년생이 가지기는 쉽지 않다. 다만 어느 정도 사회인으로서 경험치가 쌓인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 자신만의 콘텐츠가 없이 관리자급이 되었을 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제 지시대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지시를 해야 하는 입장인데 본인이 가지고 있는 관점이나 주관이 없다면 당연히 진행이 잘 될리가 없다. 뿐만인가, 조직의 명민한 사람들은 자기 콘텐츠가 없는 상사를 금방 간파한다. 이런 들통이 두려운 상사들은 방어기제로 불통을 선택하기 쉽고,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는 '꼰대'는 이렇게 생겨난다. 앞서 언급한 기사에서 말하는 맥락이다.
물경력 자리에 있다고 커리어적 측면에서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가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회사 안에서는 도메인 지식을 쌓고 회사 바깥 세상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다 보면 일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생긴다. 마냥 관심을 가졌다고 저절로 생겨나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일단 관심을 갖는 데에서 시작한다. 커리어 주도자로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다 보면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렇게 하나하나 기회를 잡고 행동으로 옮겼을 때 어느새 자신만의 관점, 즉 자기만의 콘텐츠가 생긴다.
내 경우에는 데이터 분석 중에서도 NLP에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다. 문학을 공부한 사람이다보니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관심의 흐름이었다. 뉴스 데이터를 다루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NLP를 활용해서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내가 고객사라면, 내가 대중이라면 이런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을지를 고민했다. 직접 기획안을 만들어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했다. 딥러닝을 활용해서 기사 긍부정 분류를 연구하거나 언급 고빈도 단어 추출을 통한 트렌드 모니터링처럼 보편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위한 연구도 논문만 읽는 게 아니라 직접 시도해 보았다. 사실 어찌 보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는 주제지만 제대로 수행하려면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NLP의 기초적인 개념들과 딥러닝의 기초적인 개념을 이때의 시도를 통해 익혔다.
자연스럽게 회사 바깥에서도 NLP를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NLP도 은근 다양한 영역이 있어서 회사에서 주로 연구했던 분류 외에도 챗봇, STT, NLU, 번역 등 여러 분야를 경험했다. 이직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을 때, 외부 활동과 토이 프로젝트를 정리해 놓고 보니 누가 봐도 NLP가 주력이라는 것을 딱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의 전공, 책과 뉴스 쪽과 관련한 커리어와 함께 놓고 보니 흐름이 있는 '스토리'가 보였다. 이런 스토리가 바로 내 콘텐츠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경력의 종류나 상황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물경력으로 고민하던 시절 같은 회사를 다니던 동료조차도 업무가 달랐고 개인적인 상황도 달랐다. 나는 염두에 둔 진로가 있었고, 업무 강도도 높지 않은 편이라 방향을 잡고 여러 시도를 하기에 수월한 편이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물경력이면서 야근의 연속일 수도 있고, 원하는 진로가 없어서 뭘 해야 할지 아예 막막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나만의 스토리,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눈, 나만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진로에 대해 방황의 시기를 거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어 가려는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만의 콘텐츠가 있는 사람은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