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해 보고, 아니면 말고

물경력이 걱정된다면 진로를 탐색할 때라는 신호

by 연두초록

물경력의 정의는 각양각색이지만 주로 업무 난도가 낮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단순 업무여서 무경력의 사람이 와도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말한다.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숙련자의 업무 과정의 원활함과 결과의 퀄리티다. 설령 단순 업무라 하더라도 일에는 맥락이 있고 숙련자의 노하우가 있다. 수치화나 문서화하기 어려운 정성적인 가치들은 아주 쉽게 평가절하되곤 한다. 예전에 특정 분야의 뉴스를 모니터링해 요약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난도가 낮은 일이라고 평가되는 일이지만 정말 그런가? 내 생각은 다르다.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 중요도가 높은 기사를 더 잘 선별할 수 있는 게 당연하다. 요약 또한 누구나 비슷한 퀄리티를 낼 수 있다고 하기에는 어렵다. 이런 퀄리티의 차이를 모르는 조직 안에서, 물경력이 되기 십상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하는 업무가 물경력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내가 만들어 가고 싶은 커리어 방향성과 맞는지다. 물경력이라는 불안이 어디서 비롯한 것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면 좋겠다. 내 경우에는 뉴스 모니터링 업무를 하는 것이 내 적성에 안 맞거나 하기 싫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그리는 커리어와는 거리가 있었다. 데이터 관련 서비스 기술 구현 가능성 검증을 위한 선행 연구에 중점을 두면서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다. 나름의 연구 성과도 거두었지만 실제 상용화가 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헌감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내 불안은 여기서 비롯했다. 결국 조직, 고객, 사회를 위한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공헌감을 느끼기 어려웠다는 점, 커리어 방향성의 애매함 이 두 가지가 '탈출'을 결심하게 했다.


지금 하는 일이 물경력인 것 같아 불안하다면, 일단 내가 원하는 커리어부터 생각해 보자. 단순하게, 계속 그 일을 하고 싶은가? 업무 자체는 괜찮고 계속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커리어패스 측면에서 불안함이 있는 거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어떻게 하면 그 일을 보다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현재 하는 일을 '나다운 방식으로' '더 프로페셔널하게' '더 고퀄리티의 결과를' 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만약 지금의 일을 계속하고 싶지 않다면 우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 번에 찾아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 너무 조급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능동적으로 찾았을 때 더 잘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믿기 때문에 뭐든 행동해 보기를 추천한다.


직업을 몇 번 바꿔본 프로전직러로서 어떤 직업이 맞을지는 직접 해보기 전에는 자신조차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관심이 생기면 일단 배워보자. '해 보고 아니면 말고'라는 마인드가 중요하다. 수리적인 사고를 하는 걸 좋아해서 회계를 배운 적이 있다. 배워보니 생각보다 맞지 않아서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일본어를 활용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서 무역 회사에 들어간 적도 있다. 무역 문서는 영어 투성이였고, 운송 쪽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돌발성이 너무나도 많아 계획적인 내 성격과는 도무지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이력서에는 적을 수 없는 기간이 되기는 했지만 진로 결정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분야의 찍먹(?) 경험은 견문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된다. 사회인으로서 교양 습득 차원에서도 좋은 것은 물론이고 의외로 업무적으로도 언젠가 쓸모가 있다. '시간 낭비'가 될까봐 걱정할 시간에 일단 해 보고 결정하자. 일단 해 보고,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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