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빌런 고태경》리뷰
GV 빌런 고태경
저자 정대건
출판사 은행나무
출간일 2020-04-20
페이지 264
작가가 되고 싶어서 대학에서도 문예창작학을 전공했다. 여전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마음 한편에 품고 있는 사람으로서 《GV 빌런 고태경》을 손에 잡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인물들이 나온다는 소설의 대강의 소개만으로도 남 이야기 같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직 내 안에서 부드럽게 소화하지 못한 내 인생의 주요 주제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손에 들었고 조금은 웃기도 조금은 울기도 하면서 완독했다.
《GV 빌런 고태경》은 영화 GV에서 분위기를 흐리는 'GV 빌런' 고태경과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조혜나의 이야기다. 영화라는 공통점으로 엮인 그들의 이야기가 나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았다. 같이 글을 쓰던 동기들 중에 소수는 등단을 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몇몇은 글과 연관된 직업을 가졌고 다수는 글쓰기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일을 하면서 산다. 심지어 나는 세 번째 부류에 속한다. 그렇다고 글쓰기를 완전히 단념한 것도 아니어서 이렇게 브런치를 기웃거리며 언젠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 중이다. 마치 소설에서 조혜나가 자신을 '한때 영화인'이라고 칭하자 '아직 영화인'이라고 정정한 고태경처럼.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재력이 있지 않은 이상 결국 돈이 되는 노동을 해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비교적 문이 좁은 예술 계열의 ‘판’에서는 생계의 유지조차 쉽지 않다. 예술 계열은 극소수 발견당한 이들만의 리그다. 다수는 발견당하기 위해서 기약 없이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으며 발견당하기를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다. 그 기약 없는 시간 동안 생계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원했던 판을 떠나 다른 길로 향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장기전도 감수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재능과 운의 영역이니 빠르고 냉정한 판단이 최선일까. 정답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여전히 내 나름의 정답조차 모르겠다.
'이십 년째 데뷔 못하고 중년이 된 감독 지망생'. 소설 속 어떤 장면에서 고태경을 묘사하는 대사다. 현실 속 사람들의 시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고태경의 궤적이 낯설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꿈을 좇으며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이를 단지 저런 문장으로 표현한다는 건 아무래도 억울하다. 《GV 빌런 고태경》은 이 세상 수많은 고태경들, 조혜나들의 삶이 실패담의 한 문장으로 압축되지 않도록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시선이 너무 청승맞지도 오글거리지도 냉소적이지도 않아서 전체적인 균형감이 좋았다.
만약 죽을 때까지 작가가 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 지망생으로 중년을 지나 노년을 살아가는 것을 떠올려 본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서 글을 쓰고 언젠가는 그 글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열망을 가지고 사는 삶, 나쁘지 않지 않나. 물론 평생 '지망생'으로 불리는 것은 서글플 수도 있다. 쓰는 것 자체도 나를 깎는 괴로움을 동반한 작업이라는 걸 안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열패감이나 비참함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나답게 살아가기 때문에 생기는 부산물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중요한 건 내가 죽을 때까지 내가 정의한 정체성을 가지고 열망하는 자세로 살아간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