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좋은 이름》 리뷰
잊기 좋은 이름
저자 김애란
출판사 열림원
출간일 2019-07-05
페이지 304
소설가 김애란은 나에게 추억이 깃든 이름이다. 요즘으로 치면 '90년생이 온다' 같은 느낌으로, 80년대생 작가의 서막을 여는 듯한 상징성이 김애란에겐 있었다. 대학교 재학 중에 등단한 데다가 그 세대를 대변하는 감수성이 그가 쓴 소설의 특징이기도 했다. 좋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믿고 읽는 작가'가 되었고, 주목받는 작가이기도 했다. 독자로서는 좋아하는 소설가이자 작가지망생으로서는 부러움과 동경이 섞인 존재이기도 했다. 고시원이나 좁디좁은 원룸에서 살아가는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현실적이면서도 애틋하게 그려내는 김애란의 소설이 참 좋았다. 《잊기 좋은 이름》은 김애란의 첫 산문집이다. 잘 알려진 작가인 데다가 데뷔한지도 20년에 가까워서 첫 산문집이라는 게 오히려 의아했다.
책은 '나를 부른 이름', '너와 부른 이름', '우릴 부른 이름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나를 부른 이름'에는 주로 작가 본인과 가족에 대해, 2부에는 동료 작가에 대해, 3부에는 사회에 대해 다룬 글을 모은 듯한 구성이다. 그의 소설이 그렇듯 산문 역시 애틋하고 정다운 느낌이 지배적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 흐르듯 술술 읽히는 문장이나, 잔잔하게 깔려 있는 유머 감각은 산문에서도 여전했다. 자신, 주변 사람들, 사회의 이야기를 이토록 단정하고도 술술 읽히게 풀어내기는 쉽지 않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축은 내용과 문장이라고 생각하는데, 김애란은 이 두 축의 밸런스가 매우 좋고 탄탄한 작가라는 걸 재확인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윤성희 소설가와의 에피소드다. 김애란 소설가가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면식이 없던 윤성희 소설가에게 '너도 이제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라는 메일을 받고 어안이 벙벙했는데, 알고 보니 '너도'가 아니라 '저도'의 오타였다고 한다. 너무나도 흔하게 있을 법하지만 크리티컬한 오타를 발견하고 당황해서 정정 메일을 썼을 윤성희 소설가의 모습이 상상되는 듯했다. 이 에피소드 하나로 윤성희의 캐릭터가 머리에 확 들어오는 걸 보면 역시 소설가가 쓴 산문이구나 싶었다.
산문을 쓸 때 나는 마치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는 듯한 막막한 기분이 든다. 지식 전달 목적의 글이 아닌 이상 나와 내 주변 이야기가 주요 글감일텐데, 일기나 TMI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 답은 모르겠다. 다만 《잊기 좋은 이름》이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예시라는 건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