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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Nov 12. 2022

원룸에서 달까지

《달까지 가자》 리뷰


달까지 가자

저자 장류진

출판사 창비

출간일 2021.04.15

페이지 364


주변 직장인들에게 선물했을 때 실패율이 아주 낮은 책이 있는데 바로 장류진 소설가의 전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이다. 마치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로 느껴졌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지 장류진의 소설에 '하이퍼리얼리즘'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관심작가의 장편소설인데도 지금에서야 읽게 된 이유는 소재가 가상화폐였기 때문이다. 도박과 다름없는 한탕주의 세태를 상징하는 인상이 컸고 관심을 가지면 안 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에 선뜻 손을 대지 못했던 것 같다. 마치 《달까지 가자》의 등장인물인 지송이처럼.


《달까지 가자》는 소위 말하는 '코인 열차'에 탑승하는 흙수저 여성들의 이야기다. 인지도가 있는 기업에 들어갔지만 10평 미만 원룸을 벗어날 수 없는 다해, 은상, 지송 세 인물의 이야기가 결코 낯설지 않았다. 나 또한 지송이의 비유처럼 마치 게임에서 디버프가 걸려서 아무리 열심히 나아가려 해도 속도가 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소시민이기에. 한강뷰 호화 주거 공간을 꿈꾸는 게 아니라 음식 냄새가 옷에 밸 수밖에 없는 일체형 원룸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인데 그마저도 막막한 그들의 이야기에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나 같아서 가여웠고 슬펐고 보듬어 주고 싶어졌다.


몇 년 전 가상화폐 열풍을 단지 일확천금을 노리는 집단적 한탕주의 발현으로만 보기 전에, 근원적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상 '개천의 용'이 나오기 힘든 세습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개천에서 태어난 이들은 절망을 학습하며 자란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없어졌음을 이미 깨달아버린 이들에게는 다소 위험해 보이지만 유일한 기회처럼 보이는 밧줄이 가상화폐나 주식 아니었을까. "난 이게 우리 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해."라던 은상의 말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건 그래서다.


예리한 현실 관찰력과 정도를 지키는 자조적 유머 코드가 이 소설의 매력이다. 더불어 타인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 시선이 담겨 있어서 더 좋았다. 힘겹고 버거운 '디버프' 인생이어도 비관만 있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행복하다는 것을 지나치지 않은 점도 인상적이다. 모여서 야근을 하다가 몰래 술을 사 와서 마시다가 들킬 뻔한 위기를 넘기고 나서 웃음이 터지던 장면이 특히 그랬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더는  회사에 다니지 않는 때가 온다면, 그리고 이곳을 그리워할  있게 된다면, 다른  아니라 정확히 바로 지금  장면을 그리워하게  것이라는 예감. 나는 지금 이순간의 한복판에 서서  순간을 추억하고 있었다.


애써서 모은 전 재산과 빚까지 내서 가상화폐에 투자한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부디 그들의 결말이 '손절'이 아니기를 빌었다. '우리 같은 애들' 중 하나인 나에게는 그들의 좌절이 곧 나의 좌절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돈을 좋아하고 돈에 밝은 은상이나 현실감 부족한 소비나 미래 계획이 없어 보이는 지송같은 인물 유형을 가까이 두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마음이 쓰이고 모두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느낌이어서 보니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었을 때도 이런 마음이었던 기억이 있다. 조금씩 마음에 안 드는 구석도 있지만 결국에는 보듬어 주고 싶어지는 이들과 헤어지기가 아쉬울 정도였다. 소설은 결말이 났지만 어딘가 그 후를 살아가고 있을 '우리 같은 애들'이 모두 잘 살아가기를, 한 걸음 더 자신다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삶에 가까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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