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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Oct 31. 2022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어

《단단한 영어공부》 리뷰


단단한 영어공부

저자 김성우

출판사 유유

출간일 2019.03.04

페이지 262


미드를 보다가 어떤 대사에 울컥한 적이 있다. 결혼이민자로 미국에 정착한 인물이 그의 발음을 놀리는 가족들에게 "모국어로 말하면 내가 얼마나 똑똑한 줄 알아?(Do you even know how smart I am in Spanish?)"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딱 영어와 맞닥뜨릴 때의 내 심정이었다. 여기서 '똑똑하다'는 말은 내 의사를 상대방에게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해외 체류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데도 저 대사에 엄청 공감했다. 생각해 보면 영어에 대한 내 심정은 '울분'에 가까웠다. 누적된 울분의 감정은 영어를 슬픔으로 여기게끔 만들었다. 오죽했으면 영어 스터디 이름을 '젊은 베르테르의 영어'로 지었을 정도였다.


몇 년 전, 데이터 분야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하고 개발 언어 공부를 하다가 다시금 영어와 맞닥뜨렸다. 최신 기술이나 툴의 공식 문서는 영문으로 되어 있다. 애초에 프로그래밍 언어들이 대부분 영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이미 정보와 지식 접근성의 격차가 생긴다. 그때 비로소 지금껏 영어에 대해 가졌던 울분의 정체를 깨달았다. 글로벌한 환경에서 영어는 거대 권력 그 자체이며 나의 울분은 권력에 속하기 어려운 약자로서의 울분이었다는 것을.


《단단한 영어공부》는 우리가 영어 공부에 대해 가졌던 일그러진 고정관념을 지적한다. 그중에서도 원어민 중심주의에 관한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만났던 숱한 사람들이 원어민의 표현, 원어민스러운 발음을 학습의 기준으로 삼았다. 전화 영어 업체의 동남아권 튜터와 북미권 튜터 과정의 수강료 차이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원어민 중심주의에 젖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상 영어가 국제어의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네이티브의 영어만이 절대기준인 것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이 책은 말한다. 전 세계에서 영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보다 제2언어나 외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더 많은데, 네이티브와 가까운 영어를 해야만 진정으로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풍조는 이상하다. 언어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가 소통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굳이 네이티브 영어만을 고집할 이유가 전혀 없다.

결국 말을 배우는 것은 깊은 소통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함입니다. 원어민처럼 말하느냐 아니냐를 따지기 이전에 커뮤니케이터로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지 돌아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몇 년 전 강남 영어 회화 학원 국내 어학 연수 과정을 다닌 적이 있다. 아무래도 회화 학원이다 보니 같은 반 학생들끼리 일상적인 대화를 할 일도 많았다. 영포자였던 나는 극초반엔 밥 먹으러 가자는 간단한 말조차도 꺼내지 못했다. 낯을 가려서가 아니라 원내에서 영어만 사용해야 하는 룰이었기 때문이다. 영어로 간단한 단어조차 금방금방 떠오르지 않았기에 상대방의 아주 살짝 내비친 답답해 하는 표정에도 바로 주눅이 들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낭패의 경험이 영어 학습의 동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안그래도 없는 자신감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 책에서는 학습자가 자신감을 가지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책의 중반 이후부터는 어떻게 나만의 방법으로 영어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실질적으로 영어 학습을 할 때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이중 끌리는 방법을 골라서 실행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더이상 청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지만 영어는 여전히 언젠가 정복(?)해야 할 과제였다. 영어로 말을 하면 나도 모르게 섞여나오는 한국식 억양이 부끄러웠고 문법이 맞는지를 검열하느라 한 마디도 내뱉기 힘들었다. 영어를 학습한다기보다 영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자고 생각을 전환한 이후부터는 영어 공포증이 많이 나아졌다. 이 타이밍에 《단단한 영어공부》를 만난 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자본과 권력을 불균등하게 분배하는 영어의 힘에 저항하고 싶습니다. 특권 부여와 구별 짓기의 도구가 아닌, 삶을 풍성케 하는 가능성의 언어로서 영어를 키워가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으로서의 영어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기만 할 뿐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인 권력으로 작용하는 영어를 소통의 영역으로 바꾸는 데에는 구성원의 각성이 필요하다. 무심코 비원어민의 영어 억양을 낮잡거나 원어민을 선망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영어에 작용하는 부정적인 권력을 공고하게 만든다. 특히 한국 사회에 만연한 영어 울렁증이나 영포자는 개인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영어라는 사회경제적 권력에 조종당하는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각성이 선행되었으면 한다. 저자의 말처럼 영어를 '성찰과 소통, 연대를 위한 우리 삶의 언어'로 함께 바꾸어 나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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