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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Oct 02. 2022

건강 수명 이후의 삶도 내 삶이니까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리뷰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저자 우에노 지즈코

역자 이주희

출판사 동양북스

출간일 2022.06.28

페이지 216


내 인생에 결혼이 필수적이지 않다고 여기면서부터 더욱 두렵게 다가온 단어가 있다. 치매와 고독사다. 특히 치매는 '나 다운 나'로 사는 삶을 포기해야 하는 지점처럼 느껴졌다. 뇌질환성 치매를 가진 가족을 간병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생애 주기를 고려한 경제적 기반을 다지기 위한 준비는 할 수 있지만 치매에 대해서는 막막했다.  결혼을 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가족은 형제가 될 텐데 형제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게 형제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나 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존엄성이 훼손되는 기분이 들었다. 고독사도 막연히 두려웠다. 혼자 죽는 것 자체는 괜찮은데 시체가 늦게 발견될 경우가 영 탐탁지 않았다.


노년의 삶과 죽음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무교지만) 교회에서 운영하는 죽음예비학교를 다니며 죽음을 준비하는 법에 대해서 배우기도 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작성해 두었고 가족에게도 설명해 두었다. 다양한 취미를 즐기려고 시도하고 배우는 삶을 지속해야겠다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건강 수명을 늘리려고 소소한 체력 단련도 시작했다. 내가 노년층이 되었을 쯤에는 안락사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최대한 오래 건강하게, 존엄하게 존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는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한 내 가치관을 완전히 깨부순 책이다. 백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건강 수명이라는 개념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건강 수명 이후의 삶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여기는 풍조가 자리 잡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없게 되거나 내 발로 이동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오면 그 이후는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보내게 될 테니, 그 전까지 최대한 즐겁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극단적으로는 그때쯤에는 안락사 방법이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할 정도였다. 삶의 계획에 건강 수명 이후의 삶은 없었다. 저자는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은 살면 안 되나요?'라는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얼마나 '돌봄이 필요한 삶'을 혐오하고 배제해 왔는지를 깨달았다. 더 충격이었던 것은 존엄한 삶과 약자의 인권에 대해 꽤 관심이 많은 편인 나조차도 그 혐오와 배제를 몰랐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는 늙고 병든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섭리다. 생애의 어떤 부분을 떼어서 무의미하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우리는 백세 언저리까지 살 가능성이 더 크고, 꽤 긴 시간을 돌봄을 필요로 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인정할 때가 되었다. 건강 수명 이후의 생도 내 삶이고 다른 이에게 의존해야 하는 내 삶도 존엄하다. 스스로 걷지 못한다면 보조 기구를 이용할 수도 있다. 간병인이 배변이나 배뇨를 도와줘야 할 수도 있다. 치매에 걸린다고 해서 즐겁게 살지 못한다는 건 착각이다. 치매에 걸리면 여러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어려움을 최대한 지원하는 방식을 다 같이 고민하는 편이 치매 공포증에 떠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책에서는 방문 간병인이 있다면 치매 환자가 혼자 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치매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는 나도 동의한다. 늙고 병든 나의 삶도 내 인생의 일부이며 그 자체로 존엄하다.


고독사의 정의도 달라져야 한다. 고독사도 어디까지나 '정상 가족'이 일반적이던 때에나 통용되던 개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집에서 혼자 죽는 게 왜 안 좋은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염려되는 게 있다면 시체 발견이 빨리 되지 않는 경우 정도다. 진짜 중요한 건 살아 있을 때 고립되지 않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100% 동의한다. 죽는 순간에 사람이 있고 없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살아 있을 때 주변 사람들과 웃고 즐겁게 지내고, 몸이 안 좋다면 미리 인사해 두는 게 훨씬 유의미하지 않을까.


가끔 'nn살 정도까지만 살고 죽었으면 좋겠다' 같은 말을 듣는다. 경제적인 노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건강이 하락세를 타기만 할 지점이 되면 살아갈 동력과 의미가 없다는 논리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이나 노인 자살률을 떠올리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말은 아니지만, 만약 nn세 이상의 사람이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다. 현재의 노년기 배제 분위기를 만든 건 열악한 사회안전망과 인간을 '쓸모'로 판단하는 비인간적 풍조다. 이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할 여력조차 없는 지금 우리들에게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늙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사망률은 100%이다. 5명 중 1명이 치매에 걸린다고 한다. 간병 없이 살겠다며 열심히 운동하고, 치매를 예방한다고 두뇌 체조에 매달리기보다는 간병이 필요해져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 안심하고 치매에 걸릴 수 있는 사회, 장애가 있어도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아직 너무나 많다.
당신도 함께 싸워준다면 기쁘겠다.

nn살이 넘으면 죽을 생각이나 스위스의 안락사를 기웃거리기보다 인생의 모든 과정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싸워준다면 기쁘겠다는 저자의 맺음말은 어찌나 따뜻한지. 이 따뜻한 인류애를 널리 나누고 퍼뜨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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