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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Sep 03.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사람들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리뷰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저자 임솔아, 김멜라, 김병운, 김지연, 김혜진, 서수진, 서이제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22.04.08

페이지 360


먼저, 이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느꼈던 심정을 밝히면서 시작하고 싶다. 김지연의 <공원에서>를 읽고는 불안감에 악몽을 꿀 것 같았고, 서이제의 <두개골의 안과 밖>을 읽으면서는 그저 울고 싶었다. 소위 말하는 '과몰입'의 경험 면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삶의 모습을 함부로 범주화하기를 부정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진 한 권이었다. 나와 주파수가 맞는 몇몇 수록작은 일상 생활 속 멘탈에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초파리 돌보기>의 원영은 쉬지 않고 일해왔지만 '오십대 무경력 주부'로 취급되는, 텔레마케팅 일을 하기 전까지는 자기 책상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대학의 실험동에서 초파리를 돌보는 일을 했던 때를 꿈이 이루어진 시기로 추억하는 원영과는 달리, 딸 지유는 산업재해를 의심한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한 어긋남이 이 소설의 주요 메시지 중 하나다. 산업 재해의 여지가 있었는지를 자세히 듣기 위해서 소설을 핑계 삼아 실험동에서 있었던 일을 묻는 지유, 그런 지유의 생각이 탐탁지 않은 원영. 모녀의 어긋남은 다소 비극적이고, 또한 일반적이다.

원영의 건강이 안 좋아지게 된 의학적 원인이 실험동의 환경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원영에게 있어서 실험동은 꿈이 이루어진 공간, 애착의 공간이다. 원영이 생각하는 아픔의 원인은 지유의 생각과 다르다. 원영이 생각하는 아픔의 원인은, 원영이 지유에게 소설 소재로 던진 몇몇 일화―남편과 싸운 택배 기사의 협박을 듣는 여자, 종일 욕설을 듣는 텔레마케터, 평생 일했지만 자기 책상을 가져보지 못한 여자, 밀가루가 체질에 맞지 않지만 가족이 좋아해서 삼십 년 동안 국수를 먹은 여자의 이야기―에 가깝다. 원영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지유는 결국 원영의 바람대로 소설을 해피엔드로 마무리한다. 마치 어릴 적에나 읽을 법한 동화의 결말처럼. "이원영은 다 나았고, 오래오래 행복하다."라고. 소망, 이해, 일종의 죄책감, 연민이 뒤섞인 이 결말은 사실 원영이 낫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모호함을 남긴다. 씁쓸하면서도 보편적인 우리 삶의 슬픔을.


레즈비언 커플의 딜도 '모모'의 시점으로 쓰인 <저녁놀>은 유쾌하고 재기 발랄했다. 이런 풍자성 소설에서 물건을 화자로 써 내려가는 것은 자칫 뻔한 인상을 줄 수도 있을 텐데, <저녁놀>은 특유의 유머로 이를 돌파했다. 남자가 필요 없는 여자들을 적대시하는 남성을 레즈비언 커플의 딜도로 환유한 것은 아주 노골적이다. 이 노골성을 숨기지 않는 것 또한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다. 요즘 자신의 무쓸모에 대한 열등감을 애꿎은 여자들을 혐오하면서 푸는 남자들이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데, 그들이 꼭 이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


예전에 플레이하던 어떤 게임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자신은 크로스드레서일 뿐 게이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크로스드레서와 퀴어를 뭉뚱그려서 생각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크로스드레서는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과 반대의 옷을 입는 사람을 뜻한다.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과 무관하다.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을 읽고 그 캐릭터가 떠올랐다. 우리는 소수거나 약자의 사람들을 너무나도 쉽게 타자화하고 뭉뚱그린다. 사실 각각 엄청나게 다른데, 그 차이를 알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테라스, 베란다, 발코니가 다 다른데 사람들은 자꾸 퉁쳐서 말한다는 인주의 말처럼. 심지어 그 안에 있는 사람조차도. 이 소설의 화자이자 게이인 윤범이 양성애자이자 에이섹슈얼인 주호를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했듯이.

우리는 흔히 자신의 소설이 '퀴어와 비퀴어를 가르는 리트머스 같다'라고 생각했던 윤범처럼 이분법적으로 세상과 사람을 구분하곤 한다. 하지만 성 소수자라고 해도 그 안에 무수한 유형이 있으며, 그들 사이에서도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성적 취향에 대한 이해도는 천차만별이다. 보통 소수일수록, 목소리를 내기 힘든 약자일수록 이해받지 못할 확률이 높다. 나름 비슷한 유형의 소수자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몰이해는 그들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모른다. 자신의 무지를 인지하고 인정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말할 것도 없는 상대방 과실 100%의 사건이었는데, 상대방이 보험 처리를 거부해서 법적으로 처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대방 차주에게 위협 전화가 걸려왔다. 가해 측 차주는 남자였고, 피해 차량에 있던 건 나와 언니였다. 경찰이나 보험회사에서 혹시 우리집 주소를 알려줬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으로 꽤 오랜 기간 귀갓길이 무서웠다.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의 잘못도 아니었고, 정당한 보상을 적법한 절차를 통해 진행했는데 왜 불안에 떨어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안전하지 못하다는 불안은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공원에서>를 읽고 그때의 일화와 더불어 지금까지 적립해온 경험들이 엄습해 오는 것 같았다. 지나가다가 이유도 없이 이상한 이들과 마주쳤다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신변의 위협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손이 떨렸고, 마음이 계속 불안했다. 그 정도로 <공원에서>는 남 얘기 같지 않은,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소설이다. 밤에도 혼자 돌아다닐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라며 치안의 우수성을 자화자찬하지만, 과연 그건 여성에게도 적용되는가? 대다수 한국 여성들의 대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인구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여성'만'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회라니,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공원에서>는 그 이상함을 깨달은 자의 비명이다. <공원에서>의 주인공 수진은 공공의 장소라는 의미를 가진 '공원'에서 폭력을 당한다. "그러니까 그리로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피해자를 탓하는 듯한 기영의 반응 또한 매우 익숙한 2차 폭력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폭력의 모습을 낱낱이 짚어내고 있어서 생생했고, 진저리가 났고, 트라우마가 몰려왔다.


귀농한 아버지가 예전에 닭을 키운 적이 있다. 대규모가 아니었고 반려동물 감각으로 마당에 공간을 만들어서 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류독감이 유행했다. 가금류를 살처분해야 했다. 나는 그 일을 말로만 전해 들었지만 아버지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막막했다. 마음이 아팠다. 살처분 당해야 하는 닭들도, 살처분을 해야 했던 아버지도. 그 이후 아버지는 다시는 닭을 키우지 않았다.

<두개골의 안과 밖>을 읽고 내내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가 키우던 닭들이 생각났고, 아버지가 생각났고, 내가 생각났다. 안락사를 할 시간조차 없어서 생매장되는 닭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인간 아닌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처분'하는 비인간성, 그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인간적으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든지 인간 아닌 존재처럼 '처분'당할 수 있는 인간들도 떠올랐다. 인간인 나도 언제 새가 되어 살처분 당할지 모르는 사회라는 예감이 아니, 사실이 뼈아팠다.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비극보다는 내 비극만 눈에 보이는 나 자신에게 또 실망한다. <두개골의 안과 밖>은 닭들의, 죽어가는 이들의 비명을 기록한다.

내가 겪지 못한 고통에 대해서는 쓸 수 없음. 차마 묘사할 수 없음. 함부로 재현할 수 없음. 아니, 재현될 수 없음.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음. 그렇기 때문에 쓰면 안 된다는 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 한다는 생각이 교차한다.


글로 재현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써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작가의 숙명을 생각한다. 절망적이고 모순적이기 짝이 없다. 올해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곳곳에 산재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도, 글로 재현하기도 어렵다는 자기 인식에서부터 출발하는 소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절망까지도 소설로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나는 이 절망적인 시도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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