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초록 Aug 13. 2022

돈으로 사게끔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리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저자 마이클 샌델

역자 안기순

감수 김선욱

출판사 와이즈베리

출간일 2012.04.24

페이지 336


10년 전쯤의 일이다. 일본 여행 코스 중 하나로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에 간 적이 있다. 일본의 여름 땡볕 아래 기나긴 대기줄에 힘들게 서 있던 나는 기다리지 않고 입장할 수 있는 '익스프레스 티켓'의 존재를 알고 충격을 받았다. 놀이공원도 엄연히 상업시설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들었다. 돈으로 합법적인 '새치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이 시스템에서 손해를 보는 건 익스프레스 티켓을 살 경제력, 정보력, 총체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인기 있는 놀이공원에서 줄을 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챘을 놀이공원 측의 결론이 대기를 좀 더 편하게 하는 시설을 구축하는 게 아니라 웃돈을 얹은 티켓 상품을 만드는 것이었다니, '이게 맞나?'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이처럼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시장지상주의 시대에 대해 도덕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책이다. 놀이기구 우선 탑승권, 스포츠 경기장의 스카이박스같은 익숙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많은 부분에 공감하면서 읽었다.

시장과 줄서기, 즉 가격을 지불하는 행위와 기다리는 행위는 재화를 분배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며, 각 방식에 적합한 활동은 다르다. 줄서기 도덕은 '선착순' 원칙으로 평등주의적 매력을 지닌다. (후략)

결국 지금 우리 사회는 '각 방식에 적합한 활동'에 대한 견해차가 핵심이다.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하는 시장지상주의를 어떤 활동에 수용하고, 어떤 활동에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는가. 매우 복잡한 가치가 얽혀 있는 문제이지만 사회 구성원이 함께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벌금과 요금'의 차이를 다루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벌금과 요금의 차이는 무엇일까? 벌금은 도덕적으로 승인 받지 못하는 행동에 대한 비용인 데 비해, 요금은 도덕적 판단이 배제된 단순한 가격일 뿐이다.

스터디에서 지각하는 멤버가 많아서 벌금제를 도입했더니 오히려 지각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목격한다. 지각비를 '요금'으로 여기게 되어 오히려 죄책감 없이 지각을 하게 된 것이다. 책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소개한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이 많아져 해결책으로 벌금제를 도입했더니 오히려 늦게 데리러 오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대형 조직도 아니니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도덕적 해이함이 쌓여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나는 타인을 기다리게 하는 데에 돈을 지불하면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다.


선물에 대한 경제적 논리를 담은 부분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요즘 기념일이 다가올 때마다 부모님의 선물로 고민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미 웬만한 아이템을 선물했기 때문에 더이상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부모님을 포함한 의견을 들어본 결과 현금이 가장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전형적인 '부모 세대보다 못 사는 최초의 세대'인 내가 드릴 액수에 부모님이 과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 마음에 안 들 가능성이 농후한 선물을 하는 것도 영 마음이 불편해서 기념일이 다가올 때마다 고민에 빠졌다. 나훈아나 임영웅 콘서트 티켓팅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기도 하고, 호캉스 패키지나 안마의자 정보를 알아보기도 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현금을 드리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태버록은 이상적인 선물은 자신이 직접 샀다면 골랐을 물건이라는 공리주의 개념에 모순되는 좋은 예를 제시한다. 누군가에게 100달러를 받아 자동차 타이어를 새로 갈았다고 상상해 보자. 이는 자신의 효용을 최대화한 행위다. 하지만 애인에게 생일선물로 자동차 타이어를 받았다면 뛸 듯이 기쁘지는 않을 것이다. 태버록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평범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직접 사지는 않을 품목을 선물로 받고 싶어한다. 적어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게는 "열정적인 자아, 열광하는 자아, 낭만적인 자아"를 자극하는 선물을 받고 싶어한다.

태버록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누군가에게 주기 위한 선물을 고르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바로 그들의 현실적 자아보다는 낭만적인 자아를 자극하는 선물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베스트는 낭만성과 효용적 만족도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선물이겠지만 그걸 찾는 건 쉽지 않다. 결코 부모님이 직접 구매하지 않을 콘서트 티켓이나 호텔 숙박 등을 고려했던 것도 부모님에게 낭만의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책의 제목이기도 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대체 무엇일까. 돈에 대해 자유로워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사랑, 우정, 자아실현, 행복과 같은 정신적 가치도 이제 돈으로 대부분 해결이 된다는 게 중론이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면 돈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웃픈'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이 말에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사회는 과연 바람직한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는가의 진위 여부를 떠나, 저런 말이 통용되는 세태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일 수는 없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사실은 '돈으로 사게끔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지상주의가 공동선, 공존과 같은 도덕적 가치를 야금야금 밀어내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우리는 어느샌가 무감각해졌다.


마이클 샌델은 현 자본주의 사회와 도덕의 충돌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쪽으로 정말이지 천재적이다. 저자의 다른 책 《정의란 무엇인가》와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으면서도 느꼈다. 사회의 상황과 가치관은 변한다. 와중에 불변하는 가치도 있다. 변해서는 안 되는 가치와 급속도로 변하는 사회에 대해 끈질기고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마이클 샌델의 문제의식 자체가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픔의 파편 주워 모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