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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Oct 22. 2021

누리호 발사는 성공일까 실패일까

비행시험에는 성패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 커버사진은 누리호와 무관하다


2021년 10월 21일, 누리호 발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뒤늦게 목표 궤도에 무사히 안착했을까 궁금해서 검색을 하다가 <누리호 발사는 비행시험일 뿐…“성공·실패 규정짓기 어려워”>라는 기사를 만났다. 이번 발사가 첫 번째 비행시험이며, 개발 과정 중 하나이므로 성공이냐 실패냐를 따질 시점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발사가 있을 때마다 성패 여부에만 관심을 갖는다. 중간 과정의 향상이나 성장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100점(목표 궤도에 안착)이 아니면 99점도 0점과 같은 실패로 간주된다. 혹은 공부의 성과를 측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체크하려 보는 모의고사 점수가 실력 그 자체인 것처럼 평가한다.


비단 누리호에만 적용되는 인식이 아니다. 한국 사회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이런 성공 지상주의가 깔려 있다.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한 시도는 너무나도 성급하게 '실패'로 규정지어진다. 예를 들어 공무원 시험에 몇 차례 떨어졌다고 실패한 인생인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게 정말 실패인가? 만약 더 시도해서 합격을 한다면 떨어졌던 경험은 성공의 과정이 된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접고 다른 진로를 찾아서 만족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시간이 허송세월인 실패의 시간인가? 진로 탐색의 과정으로 볼 수는 없을까.


설령 진짜 실패를 했다고 하자. 아니, 살면서 실패 좀 하면 어떤가. 물론 실패에는 금전적이든 비금전적이든 비용이 따른다. 이 비용이 크고 치명적인 사회일수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방어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 중요한 점은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탓하기보다 실패해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가령 이토록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사회, 진로 탐색의 시간을 갖는 데에 관대한 사회 말이다.


여전히 나는 과정에 서 있다. 비행시험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크고작은 목표들을 성취했다고 해서 나의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목표 궤도에 도달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무한한 '다음 퀘스트'의 연속이다. 무한한 퀘스트 속에서 과연 어떤 목표를 이루고 성취해야 성공한 인생일까. 애초에 성공한 인생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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