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 리뷰
인생의 역사
저자 신형철
출판사 난다
출간일 2022.10.30.
페이지 328
문학 관련 전공자인 나에게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이름은 친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지금까지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언젠가는 읽어봐야지’의 목록 중 하나를 차지하는 저자였다. 얼마 전 모 도서관에서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강연이 있다는 공지를 보고 냅다 신청을 했다. 원래 책을 먼저 보고 관심이 생겨 북토크나 강연을 가는 편인데 가끔은 순서가 달라져도 되겠지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강연을 다녀오고 나서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부러워졌다. 당시 몸 컨디션이 안 좋아서 집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쓴 책을 당장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인 강연이었다. 내용이 공감 가는 것은 물론, 그 내용을 전달함에 있어서 강연자의 인품과 됨됨이가 느껴졌다. 단어 하나하나를 적확하게 사용하면서도 누군가를 상처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전해졌다. (단독 저서 기준) 최근작인 《인생의 역사》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감수성이 느껴졌다.
책 표지를 보면 ‘신형철 시화詩話’라고 명시되어 있다. 사실 작품집(소설집, 시집 등)에 실린 해설이 아닌 이상 여러 작가의 작품에 대해 다루는 형식의 책을 꺼리는 편이다. 보통 그런 책은 다루는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는 수반되어야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 책 또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시를 중심에 둔 글이어서 읽기 전에 다소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정수는 시에 대한 해설이나 감상이 아닌, 시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과 태도다. 아니, 인생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과 태도라고 해도 무방하다.
책을 읽다 보면 글이 마음에 드는 유형과 저자가 마음에 드는 유형이 있는데, 《인생의 역사》는 후자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저자와 감수성, 가치관, 코드가 맞아서 마음에 든다. 재미있는 건 글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코드가 맞다고 판단한다. 또한 코드가 맞기 때문에 글이 마음에 든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불분명한 인과관계라 할 수 있다.
평론가의 글을 읽을 때면 ‘진짜 똑똑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떤 작품을 읽고 느꼈던 모호한 ‘무언가’를 언어로 명확하게 풀어내는 데 천재적이다. 거기에 타자를 바라보는 조심스러움 그리고 생각을 아름답고 순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글재주가 더해졌을 때 아름답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말하고자 하는 바도, 문장도 아름답다. 증거(?)로 아래 문장을 제시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을 때 나 중에 가장 중요한 나도 죽는다. 너의 장례식은 언제나 나의 장례식이다.
독서를 하면서 떠오르는 감상을 그때그때 메모해 두었는데 완독하고 보니 이런 단어들이 중복적으로 등장했다. ‘조심스럽다’ ‘지적이다’ ‘아름답다’. 감상이 이런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흔하지 않다. 프롤로그의 제목 ‘조심,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처럼, 글에서도 손으로 새를 쥐는 것 같은 조심스러움이 전해졌다. 문학 작품과 인생을 연결 짓는 통찰력, 통찰을 글로 옮길 수 있는 문장력은 지적이기 그지없다. 이 모든 어우러짐이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이런 글쓰기를 하고 싶어졌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