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리뷰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저자 조지 레이코프
역자 유나영
출판사 와이즈베리
출간일 2015.04.01
페이지 318
의문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사측’이 될 가능성이 낮은 소시민 중 주 69시간으로의 역행을 찬성하는 부류가 있다는 것이. 비슷한 맥락으로 부자 감세 같은 소수의 고소득층을 제외한 사람들에 불리한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인을 뽑는 저소득층 시민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언젠가 기업을 경영하는 ‘사측’이 되거나 감세 혜택을 받을 정도의 부자가 될 거라 생각하는 걸까?’라면서 답답해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읽고 사람들이 꼭 자신의 이익에 따른 정치적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충격이었다. 이 책이 한국에 나온 지가 10년 가까이 됐는데 이제야 읽게 된 게 아까울 정도였다.
책에서는 프레임의 개념을 먼저 소개한다. 책의 제목처럼 누군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우리는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 즉 어떤 프레임을 부정할 때에도 그 프레임이 활성화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반박하고자 하는 프레임의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나의 신념을 말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언어가 아닌 나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이건 단순한 단어 찾기나 슬로건 만들기가 아니다. 흔히 말하는 보수주의자(보수-진보 용어 정의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일단 한국에서 보수-진보라고 부르는 의미로서의 용어로 사용하겠다)들은 프레임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고 프레임 구성 요령을 터득했다. 현재 한국의 주요 언론사가 정치적으로 어느 쪽에 서 있는지를 떠올려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그들은 신문뿐 아니라 방송사도 가지고 있다. 미디어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진보 세력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저자가 10년 전에 쓴 내용인데 한국의 현재 정치 상황과도 들어맞아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정치적 논쟁은 곧 프레임 싸움이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현재 한국 정치 논쟁에서 프레임에 대한 이해는 주로 프레이밍 단어를 지적하는 정도에 그친다. 저자는 보수와 진보가 각각 ‘엄격한 아버지의 가정’과 ‘자상한 부모의 가정’ 모형을 따른다고 말한다. 이 모형을 근간으로 프레임을 구성한다. 물론 미국의 정치 환경은 한국과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책에서 설명하는 두 모형의 특징과 작용 원리는 충분히 납득이 갔다. 보수 세력들이 최저 임금 인상, 여성의 임신중단권,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근간에 ‘엄격한 아버지의 가정’ 모형이 작용한다. 보수 세력들이 작은 정부를 지지하며 자신들의 자유를 뺏는다는 주장을 하는데 기업에 의한 지배가 훨씬 더 많이 자유를 뺏고 있다는 구절에서 신랄한 통찰이 돋보였다.
사회 복지, 세금, 노동자, 기업, 결혼, 성, 이민 등 오늘날 국가와 사람에 관한 화두에 대해 정치적인 관점으로 분석하고 있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력이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후반부에 나오는 진보주의자로서의 행동 가이드도 인상적이었다. 답이 없어 보이는 현재 한국 정치 상황에 자포자기하기보다는 나의 신념을 말해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프레임 재구성에 대한 지적이고 논리적이고 윤리적이고 전략적인 지침서라고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