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녀는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낼까..?

보고 싶다.

by 박근필 작가

그녀와의 첫 만남은 초등학생 때였다.

우린 동갑이었고 같은 학원, 같은 반이었다.

사는 곳과 학교가 달랐고 성별도 달랐으니 쉽게 친해질 기회는 없었다.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아는 정도로,

기껏해야 바닥에 떨어진 샤프나 지우개를 주워줄래? 정도의 말만 주고받았을 것이다.

같은 학원에서 몇 년간의 인연은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난다.


시간은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다.

어느 날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예쁜 편지지에 여성스럽게 꾹꾹 눌러 적은 시 한 편이 적혀있다.

거의 온 국민이 다 알거라 생각하는 그 시였다.

김춘수의 '꽃'.

내 기억이 맞다면 편지에는 그 시 내용만 적혀 있었다.

난 그녀가 내게 호감을 보였기에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판단했고 답장을 보냈다.

(나중에 세월이 많이 흘러 그때 왜 내게 그 편지를 써서 보냈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은,

친구들끼리 재미식으로 누구한테 편지 보내기 같은 걸 하다가 우연히(?) 내가 생각나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 고 난 기억한다.)


편지만 주고받다 드디어 만남이 이뤄졌다.

나와 내 친한 친구, 그녀와 그녀의 친한 친구 이렇게 네 명이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아직도 그날 그녀의 모습을 기억한다.

평생 잊지 못한다.

어린 초등학생이었던 그녀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소녀가 되어 있었다.

정말 눈이 부셨고 그녀의 주변으론 후광이 비췄다. 정말 그랬다.

마치 천사 같았다. 정말 그랬다.


자연스럽게 우린 사귀게 되었다.

자주 만나진 못해도 편지와 삐삐, 나중엔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좋은 감정을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점점 어두워졌고..

이별을 통보해 왔다.

명확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난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못했다.

하루는 야자를 마치고 그녀의 집 앞에 갔는데 그녀의 어머니와 마주쳤다.

내 딸이 요즘 성적도 떨어지고 이래저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으니 그만 만났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

난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반항을 할 수도, 대꾸를 할 수도.






수능을 치르고 대학 입학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였다.

이메일을 열었는데 글쎄 그녀의 편지가 보였다!

한 번도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 이메일 주소가 그녀의 별명을 포함하고 있어 그녀가 기억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우린 다시 만났고,

2.14일 밸런타인데이에 다시 사귀기 시작했다.


서로 대학의 지역이 달라 자주 보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꽤 자주 만났다.

평일에도 보고 싶으면 기차를 타고 내려가 만나 데이트를 하고,

PC방에서 테트리스나 숨은 그림 찾기, 카트라이더, 크레이지아케이드를 하며 밤새 놀았다.

우린 그 게임들을 전혀 지겨워하지 않았고 아주 원 없이 했다.

그리고 난 새벽 기차를 타고 돌아와 수업을 빠짐없이 들었다.

주말은 당연히 거의 늘 함께였다.

시험기간엔 그녀의 대학 도서관에서 함께 모기향을 피우며 밤새 공부하기도 했다.

찜질방도 자주 가던 데이트 장소다.


군대는 육군보다 외출, 외박이 자주 나오는 공군과 해군 중 고민을 하다가

공군의 복역 기간이 너무 길어 해군을 택했다.

그녀는 곰신이 되어(지금도 쓰는 단어인지는 모르나 당시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자친구를

고무신을 줄인 곰신이라고 불렀다) 2년 2개월을 고무신 거꾸로 신지 않고 날 기다려줬다.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계속 우린 함께였다.

내 직장이 너무 위쪽 지방에 위치해 편도 네다섯 시간 거리였지만 그래도 자주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했다.

전혀 피곤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리 많이 피곤하지 않았다.

젊기도 했고, 사랑의 힘이란 게 다 그렇지 않은가.






꽤 많은 곳을 함께 돌아다녔다.

한 번은 길게 휴가를 빼 서해부터 전라도, 남해까지 투어를 하기도 했는데 정말 좋았다.

첫 해외여행인 일본부터, 방콕, 홍콩, 그리고 약 3주간의 유럽 여행까지..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3국을 여행했는데 날씨가 흐리거나 비 온 날이 없었고

늘 화창했으며 날씨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파리에서 네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와 두세 살 위로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노변 카페에서 어처구니없이 내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한 것이 여행 중 유일한 오점이었지만,

금방 잘 추스르고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세월은 흘러 우린 어느덧 30대가 되었다.

그런데 잠깐,,

지금 어디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다.

그녀의 목소리다?!

그녀가 내게 뭐라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녀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본다.


"여보야~ 밥 먹어~"


그렇다.

그녀는 지금의 내 아내다.

우린 30대도 늘 함께였고, 결혼을 했고, 두 딸을 낳아 예쁜 가정을 꾸렸다.

이제는 내 나이 마흔. 아내도 동갑이니 똑같이 마흔.

우린 살아온 대부분의 세월을 함께했다.

생각하면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다.

너무 시간이 빨리 흐른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아내는 내게 축복과도 같은 사람이고 선물과도 같은 사람이다.

아내가 없었다면 내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나를 있게 해 준, 살아가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다.

그녀가 있었기에 내 인생이 이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앞으로 살아온 만큼의 세월 정도가 우리에게 남아 있을 듯한데,

후회 없이 더 사랑하고 사랑해주고 싶다.

그녀는 내 전부니까.

물론 두 딸들과 함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글이 처음으로 외부에 게재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