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새로운 걸 발견하며 내 세계를 넓혀가세요





내가 무엇을 경험하느냐는
내가 어디에 주목하려 하느냐에 달렸다.

-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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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 속에서 비범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남달라.
셜록 홈즈의 조수인 왓슨이 홈즈에게 물었지.

"자네의 추리를 듣고 보면 간단해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매번 설명을 듣기까지 모르는 걸까?" 하고 말이야.

여기에서 홈즈가 한 말이 걸작이야.

"자네는 보지만 나는 관찰한다네."

- <10권을 읽고 1000권의 효과를 얻는 책 읽기 기술>,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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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없이 많이 먹어봤지만 단 한 번도 이런 시선으로 꽃게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게 시인의 힘입니다. 똑같은 꽃게를 보고 다른 것을 읽어낼 수 있는 힘, 그 힘은 안도현 시인의 눈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눈으로 보는 것, '견'이 누구에게는 힘이 되는 거죠."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그 맛을 모른다는 뜻으로 유교 경전 중 <대학>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행동은 시청을 하는 거죠. 간장게장을 먹을 때 그저 흘려 보고 들은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안도현은 간장게장을 견문을 한 거예요. 그 차이입니다. 흘려 보고 듣느냐, 깊이 보고 듣느냐의 차이. 결국 생각해 보니까 지금까지 나의 경쟁력이 되어준 단어는 '見'이었습니다."

"때로는 주변의 모든 것들, 에를 들어 회의실에서 하는 한마디, 친구들과의 대화,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의 말을 시청하지 말고 견문해야 하죠. 이게 뭐가 어려운 일이냐 싶겠지만, 어려워요. 왜냐하면 그 말들이 대단하지 않으니까요. 그냥 일상의 언어들일 뿐이에요. 그런데 이걸 견문해서 그 안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해 내야 해요."

"[...]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보면 모차르트가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아리아'를 작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술과 음악뿐이던 모차르트에게 장모가 소리치며 잔소리를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모차르트는 밤의 여왕 아리아의 모티프를 떠올리죠. 심지어 장모의 잔소리도 모차르트에게 음악적 영감이 된 거예요. 매일 듣는 잔소리, 그 잔소리, 아 또 잔소리하는 순간, 그 각성의 순간이 유레카의 순간이 된 거죠. 사과가 떨어지는 만유인력 발견의 순간이에요. 사과가 처음 떨어졌나요?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처음 했을까요? 하필 그 순간 대오각성을 했느냐? 바로 시(視)에서 견(見)의 경지로 들어선 것이죠. 적용되는 범위를 보면 정말 見은 매우 중요하고, 그래서 또 무서운 단어입니다. <생각의 탄생>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발견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천재들의 공통점이라고 이야기해요. 모두가 보는 것을 보는 것, 시청(視聽).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 견문(見聞)이죠. 같은 뜻이에요."

"見, 이 단어가 저를 먹여 살렸다고 했지만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見을 통해 그전까지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매일 행복한 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안 보이던 게 보여서 나이 드는 것도 정말 좋습니다. 바람도 축복이고, 강물도 기적이에요. [...] 이 기적을 뒤늦게 발견해 아쉽지만 다행스러운 건 조금씩 보는 눈이 커지고 볼 수 있는 게 늘어난다는 겁니다. " 개 꼬리와 토끼주둥이 봐, 이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니"라고 한 고은 시인처럼 경지에 오르기는 쉽지 않겠지만, 개 꼬리, 토끼주둥이, 그 오묘하게 생긴 것들이 있는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게 큰 희열로 느껴질 정도로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텍스트를 중심으로 見을 이야기 한 것이 <책은 도끼다>였다면 이번에는 책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매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기적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예민한 촉수가 있어야 합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을 듣고 울죠. 그 사람이 덤덤한 사람의 삶보다 풍요롭다는 것에 저는 완전한 한 표를 던집니다. 네 명이 술을 마실 때 그냥 마시는 사람과, "창 밖 좀 봐. 가을비가 내린다" 하는 사람의 삶에는 차이가 있어요. 그러니 순간을 온전히 살려면 촉수를 예민하게 만드세요. 그래서 다섯 개의 촉각을 가진 동물이 되는 걸 목표로 삼으세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처럼."

- <여덟 단어>, 박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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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걸,
단순히 보는 '시청' 말고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여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나만의 렌즈, 나만의 '관점'으로요.

이것이 '관찰'이고 '견'입니다.
그래야 나와의 '관계'가 형성되고
그것이 내 세계의 일부가 됩니다.
그렇게 '발견'하며 내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세요.

오늘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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