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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보면 내 글이란 없다

모든 텍스트는 다 빌린 텍스트다.

by 박근필 작가



그런데 이 이야기를 내 명예를 위해서, 이익을 위해서 한다면 재미가 없었을 거야. 좋아서 재미있어서 했어. 모든 일이 그래. 재밌어서 하면 저절로 이익도 된다네.

interest라는 영어 단어는 관심, 재미라는 뜻도 있지만 이익, 이자라는 뜻도 있어. 우리가 이익을, 이자를 내려면 애초에 관심 있는 것, 흥미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interest가 출발이지. 그게 모든 일의 순서고 이치라네.”

“선생님의 평생의 interest는 글쓰기, 스토리텔링이었고요.”

“그렇지. 글을 쓸 때 나는 관심, 관찰, 관계…… 평생 이 세 가지 순서를 반복하며 스토리를 만들어왔다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나와의 관계가 생겨.”

그러니 이야기를 낳는 지금 우리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하냐고 선생은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는 항상 대화 속에서 만들어지나요?”

“『플라톤의 대화편』을 보게. 위대한 철학이 왜 대화에서 나왔겠나. 대화는 변증법으로 함께 생각을 낳는 거야. 부부가 함께 어린아이를 낳듯이. 혼자서는 못 낳아. 지식을 함께 낳는 것, 그게 대화라네. 내가 혼자 써도 그 과정은 모두 대화야. 내 안에 주체와 객체를 만들어서 끝없이 묻고 대답하는 거지. 자문자답이야. 그래서 모든 생각의 과정은 다이얼로그일세.

과거엔 나 혼자서 생각하고, 나 혼자서 다 만들어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이제 ‘이 글은 내 거야!’ 단언하지 않아. 따져보면 내 글이란 없는 걸세.
모든 텍스트는 다 빌린 텍스트야.
기존의 텍스트에 반대하거나 동조해서 덧붙여진 것이거든. 텍스트는 상호성 안에서만 존재해.”

“‘inter’의 산물이군요.”

“그렇지. 내 이야기 또한 자네의 말과 어우러져 의미가 분명해지고, 새롭게 해석될 거라고 믿네. 요즘 들어 더욱 대화의 위대함을 느껴.”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이어령.






문득 위 내용이 생각이 났다.

1.
재밌어서 하는 일은 덜 힘들고 저절로 이익도 된다.
일론 머스크가 떠오른다.
이익을 내려면 관심 있는 것에서 시작하자.
Interest. 관심 재미이면서 이익 이자라는 뜻을 지니는 게 의미심장하다.

2.
지난번 말한 글을 쓸 때 염두에 둘 것.
관심, 관찰, 관계 그리고 관점.

3.
창의가 무에서 유가 아니라 유에서 또 다른 유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우리가 쓰는 모든 텍스트, 글은 100% 온전히 내 글이라 말하기 어렵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타자의 생각과 언어가 그대로 또는 변주되어 사용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말과 글을 빌려 사용하는 셈이다.
다만 타자의 것을 있는 그대로 차용한다면 그건 창작 창의라 할 수 없고 내 것이라 할 수 없다.
적어도 동조하거나 반대하는 상호 작용이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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