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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o Feb 26. 2018

모르는 것들

몰라도 괜찮아

1

회사에 들어와서 탁구를 친지도 1년이 넘었다. 탁구 경력 10년을 훌쩍 넘는 분들에게는 귀여운 말일 테지만, 탁구를 칠 때 가끔 공이 느리게 보일 때가 있다. 공이 멈춘 것같기도 한 그 순간에 준비된 내가 있어야 한다.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느린 공도 칠 수가 없었다. 멈춘 것 마냥 느린 공을 보고 채를 휘둘렀지만 맞지 않았다. 공에만 모든 신경을 쏟아서도 안되고 내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까지 그 짧은 순간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는 채 모서리를 맞고 천정으로 튀기 일쑤다. 어쩌면 몇 번은 운이 좋아 맞춘 건지도 모르겠다. 우연이든, 실력이든멋지게 날아가면 그만이다.


사장님은 언제나 “Good ball-!”이라고 외쳐주시니까.


내 인생의 절반은 공을 제대로 쳐다 보지도 못했다. 공이 날아오면 그저 휘두르기에 바빴다.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기분을 정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말할지 제대로 고민하게된지, 겨우 1년 연습만한 것 같다. 열심히 연습해도 인생은 실전이기에, 내 공은 생각처럼 곧게 나아가지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괜찮을 수 있도록 좋은 준비 자세를 취하는 것 정도이다. 그러면 우연이든, 실력이든 때때로 좋은 공을 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때 나에게 “Good ball”을 외쳐줄 사람이있을까?






2

며칠 전 파티를 즐기는 언니, 오빠들과 가로수 길에서 술을 마셨다. 한창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 중이었다. 일명 결혼적령기를 지나고있는 사람들이다. 몇 해 동안 언제나 목표는 결혼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 평생 함께 하고 싶으면 그때 결혼을 생각하는 게 맞는 게 아닌가? 결혼에 초점을 맞추고 사람을 찾는 일이, 순서가 맞지 않는 것 같아 싫었다. 그렇게 순서가 바뀌어 버리면,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결혼에 골인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닌가? 과장해 말하자면 하나의 예로, 인간도 결국 동물이라 종족 번식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의견에 확실한 근거가 되어주는 사례로 생각된다. 종족 번식이 나쁘다는 생각 보다는 그런 본능이 평생 함께할 반려자를 찾는 것에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이 싫다. 종족 번식 외에도 사회의 시선이나 부모님의 압박 등 다를 것이 없다. 로맨스물을 많이 본 순진하고 현실성 없는 스물 여섯의 생각이라 비아냥거린대도어깨를 으쓱- 할 뿐이다. (로맨스 물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 중 한 언니가 물었다.


“너는 언제 결혼 하고 싶은 데?”

“저도 모르죠. 헤헤”


모른다. 나는 정말 모른다. 사실 정해놓고 싶지 않았다. 결혼을 할지 말지도 정해놓고 싶지 않다. 언젠가 결혼을 해야지 하고 정해둔다면, 결혼하지 않는 인생의 시야를 잃어 버릴 것 같았다. 안 쓰는 눈의 시력이 점점 더 나빠지듯이.






3

‘지잉-’

‘지잉-’

‘지이-,지잉-’


핸드폰이 연달아 울린다. 확인 해보니 ‘사랑하는 가족’ 방에서 온 카톡이 90여개. 확인하지 않고 핸드폰 화면을 닫는다. 만난지 며칠 안된 남자친구와 데이트 중이었다. 가끔 대책 없이 솔직한 편인 나는 대뜸 남자친구에게 웃으며말했다.


“가족 방이야. 우리 부모님, 싸우셨나 봐.”


내 나이 스물 여섯. 완전히 독립한지는 9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자취한 시간까지 합치면 5년 이상이다. 그러나 매달 몇 번씩, 정기적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잦은 부모님의 싸움에서는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부모님의 싸움에 대한 자식의 태도라는 전공이 있다면 나는 A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둘이 싸우면 두 딸을 모조리 본인들의 싸움에 들러리로 세우고 어느 쪽도 한발자국의 물러섬 없이 팽팽한 자존심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그 자존심 줄다리기가 어찌나 팽팽한 지 혹여, 언니나 내가 조금이라도 어느 한쪽에 무게를 실어주는 한마디라도 하게 된다면, 다음 전개는 발단에서 전개와 위기 과정을 뛰어넘어 곧바로 클라이막스(절정)로 치닫는다. 중앙을 넘어선 줄을 집어 던지고 몸싸움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번 싸움에 줄을 집어 던지고 엄마가 잡은 카드는 ‘이혼’이었다.


이때, 격한 감정의 태풍 안으로 휩쓸려 섣불리 행동하게 된다면 학점 A를 받을 수 없다. 태풍의 중심에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는 고요한 태풍의 눈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침착하게 생각한다. 나는 엄마, 아빠의 사랑하는 딸. 나는 아빠, 엄마를 사랑하는 딸. 부모님을 향한 내 애정을 최대한 정확하게 반으로나누어 분배할 것이고, 누구의 편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부모님의 싸움에 투자 혹은 소모할 시간은 없고, 그들의 싸움은 말 그대로 ‘그들의 싸움’일 뿐, 나와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이 싸우지 않고 잘 지내길 바란다. 이번에는 이틀에 걸쳐 단단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물론, 출근해서 일도 하고 밥도 먹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었다. 이 모든 게 함께 이루어 져야 감정을 배제한 이성적인 생각정리가 가능하다.


그리고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6분간의 통화를 정리하자면, 엄마는 내일 법원에 이혼서류를 떼오겠다고 아빠에게 엄포를 해둔 상황. 나는 부부상담을 권하는 방향으로 이번 싸움을 풀어갈 생각이다.


“아빠랑 같이 부부상담 좀 받아봐, 외국에서는 그런 거 되게 많이 해. 그리고 도움도 많이 된데.”

“야, 아빠가 그런 거받을 사람이야?”

“그래서 아빠가 받겠다고 하면 엄마는 받을 생각은 있고?”

“…몰라.”

“내가 아빠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게.아빠가 받는 다고 하면 엄마도 같이 받는 거야.”

“…알겠어.”


아빠와의 통화는 37분. 그중 30분은 엄마를 이해할 수 없고 너희들에게도 서운하다는 아빠의 성난 목소리. 나머지 7분은 그 와중에 간간히 껴서 침착하게 또는 그 애비에 그딸 다운 성질머리로 아빠를 설득한다. (간간히 웃음과 농담을 섞으며 감정이 고조되지 않도록 소금을 친다.)


“니 애미가 29년 결혼생활하면서 배운 것도 모은 돈도 없이 나랑 이혼한다고 하면 잘 살 것 같냐? 나야 홀어머니 모시고 일하면서그냥 저냥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니 애미가 걱정인거야. 나없이 살 수 있을지! 근데 이혼한다니까 그래 알아서 해라, 한거지. 지가 하고 싶다는 걸 어떡해?”

“아빠, 부부상담가면 아빠 그렇게 생각하는 거 다 알아. 상담사는 심리학 공부하고 그래서 그런 거 다 알아.”

“아니! 너 이거 엄마한테 말하면 안 된다. 너한테나 이렇게 말하지! 상담 가서도 그런말 절대 안 하지!”

“아니, 아빠. 아빠가 그런 말 안 해도 태도랑 표정이랑 몸짓에서 그게 다 나오는 거야. 아빠가 엄마 무시하고 그런 거 엄마도 다 그렇게 느끼는 거라구. 니가 나 없이 잘 살수 있겠냐 하는 것들이다 전달이 되는 거야.”

“……그거는 그렇겠지..”

“그니까 아빠도 지금 문제가 한 개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 부부상담 가서 둘 다 노력해서 해결해야 하는 거야. 엄마, 아빠는 29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아직도 서로를 너무 몰라서 제 3자가 껴서 도와줘 야해. 그래서 부부상담 받을 거지?”

“그래, 니 엄마한테 아빠는 아주 성실히 부부상담 받겠다고 전해! 아빠도 그런 거 받아서 남은 30년 둘이 같이 잘- 살고 싶다고.”

“알겠어. 그럼 내가 엄마 잘 달래가지고 얘기 해가지고 다시 알려줄게.”

“…고마워, 딸-”


싸움의 종료란 없다. 한반도의 볼품없이 둘로 나뉘어진 남과 북처럼 휴전상태로 전환한 것뿐이다.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 다만 나는 훌륭한 중재자가 되기를 언제나 연습할 뿐이다. 냉정 하려 노력하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부모님이지 않은가. 물보다 진하다는 가족이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부모님께서는 왜 29년이 지나도록 같은 패턴의 싸움을 계속 하시는 걸까. 왜 서로와 스스로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걸까. 왜 더는 성장하지 못하시는 걸까. 정말 모르겠다.







4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눈물도 웃음도 많은 사람이다. 액션 영화를 보다가도 악역의 사연에 눈물 흘리고, 지나가는 똥개의 귀여운 엉덩이에도 웃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사람들은 웃음이 많고 감성이 풍부하다고 칭찬하고, 눈물이 많고 감정적이라고비난한다. 예전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급하게 받아들인 평가가 몇 달 동안 귓구멍에 걸려 소화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소화하기 어려운 말들을 며칠, 몇 달에 걸쳐 겨우겨우 쓸어 내리고 나면 달라진 시야와 태도를 가진 나를 발견했다.


요즘 나는 인생 이제 겨우 막 1년 살았구나 생각한다. 딱 탁구를 친 시간만큼만 괜찮게 살아낸 듯 하다. 나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의 흐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울던 수많은 날들이 있었다. 비판이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아픈 줄만 알았지 제대로 소화시키지도 못하고 배출해버렸다. 그때는 그게 옳다 생각했다. 나는 적절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고민도 했고 답이 나오지 않으니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지금도, 지금의 계산식으로 내가 옳다고 합리화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나에게 속지 않으려 계속해서 의심하고 경계한다.


평생을 ‘나’ 자신으로 살다가 내가 아닌 새로운 ‘나’ 를 발견하고 인정하기 까지는 긴 시간을 들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속에서 올라와 다시 역류하고 뱉어낸 지난 밤들과 비교하면 새롭게 알게 된 ‘나’ 를 맞이하는 데에 있어서 조금은 태연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잘 웃는 사람인지, 잘 우는 사람인지. 다만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바램은 확실하다. 다행이다.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나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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