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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o Apr 22. 2018

포기하는 삶에 대한 나의 위로

배추 한 포기

나는 영화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때때로 이것도 저것도 뜻대로 되는 일이 없을 때는 슈퍼 히어로 영화를 본다. 그럴 때에는 말도 안 되게 센 세계 최강 슈퍼 히어로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두 다리 쭉 뻗고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외로울 때에는 눈물 펑펑 쏟는, 두 손으로 심장 잡고 보는 로맨스 영화를 본다. 그렇게 영화를 보며 현실에서 모두 표출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주인공과 함께 쏟아낸다. 영화의 장점은 보는 동안은 현실의 나를 잊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과 다 보고 나면 다시 깔끔하게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 2시간의 영화를 보는 데에도 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한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7시. 밥을 먹고 도시락을 싸고 청소하고 씻고 다음날 출근할 준비를 한다. 시계를 보면 9시. 절망적이다. 앞으로 3시간 남았다. 하루 24시간 중에 온전히 내가 가질 수 있는 자유는 단 3시간뿐이다.


영화는 2시간. 영화를 보고 나면 하루는 끝이 난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영화를 매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1.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 물론, 정적이고 가끔 지루하고 머리 아프고 읽다 졸아서 책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 읽으려고 사둔(읽지 않은) 책이 5권이 넘었다.

2. 나는 영어공부도 하고 싶다. 영어를 능숙하게 해서 팝송을 들을 때나 영화를 볼 때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느끼고 싶다. 그리고 일적으로도 영어를 잘 하게 되면 구글에서 더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다.

3. 나는 운동도 좋아한다. 운동을 시작한 지는 2년이 되어가는 데 점점 몸의 변화가 느껴져 재미를 붙이고 있다. 또 운동할 때에는 잡다한 생각이 나지 않아서 마음이 편해진다.

4. 나는 매니큐어도 바르고 싶다. 손톱에 무언가를 칠해놓으면 글쎄, 그냥 좋다. 그냥 나는 매니큐어가 바르고 싶다.

5. 나는 그림도 그리고 싶다. 직업은 디자이너이지만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 언제나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크다. 그림을 잘 그리게 되면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질 것 같다.

6.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내 꿈은 작가다. 나는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성장을 더 단단하게 하고 싶다. 나는 꿈을 이루고 싶다.


그 밖에 하고 싶은 일들에는 피부관리, 머리 염색, 쇼핑몰 구경하기, 춤추기, 노래하기, 라디오 듣기, 명상하기, 친구 만나기, 남자 친구 만나기, 저녁 조깅하기, 산책하기 등등이 있다.

나는 이렇게나 하고 싶은 일이 너무너무 많다.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왜 우리는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당신도 마음만 있다면 다 할 수 있는 데 내 열정이 부족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나를 비난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렇게 하시길. 나는 모두의 이해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7시에 일어나 8시에 출발해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9시간을 일을 해야 한다. 때로는 저녁 11시까지 하루 14시간을 일하기도 한다. 그렇다. 나는 '해야 할 일'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며 사는 보통사람이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먹고 입는 것을 줄이며 몰두하는 열정적인 예술가는 아니다. 그렇다 하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삶이 당연한 것일까? 내가 포기하며 사는 삶은 당연한 것일까? 그렇다고 나의 자유를 깎아 받는 그 돈은 적어도 먹고 싶은 것과 입고 싶은 것을 충족시켜 줄 만큼의 급여인가? 그게 아니면 사회에서 말하는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 지금의 직업인가?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는 가?


아니다, 모두 아니다.

나는 지금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으려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시급이 적다 비판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내 월급이 적다 한탄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저 제목처럼 내가 포기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해서 청소를 하고 씻고 영화 한 편을 막 끝마쳤다. 저녁 10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늦은 시간이고 자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글도 쓰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고 책도 읽고 싶었다. 그런데 1시간 정도에 글을 마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자 여기까지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이렇게 포기하는 삶에 익숙해진다면, 나는 매일 고작 영화 한 편 때리고 곯아떨어지는 삶을 살게 될까. 매일매일 포기하는 삶. 그때 내 머리를 친 것이다. 나는 왜 매일매일 무엇인가를 잃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까? 나는 매일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못하고 잠을 자야만 했다. 그런데 그게 왜 나에게 상실로 인한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사실은 매일매일 잠에 들기가 아까웠다. 그 말을 했던 어느 날, 네가 나에게 말했다.

"잠자기가 아까운 건, 만족스럽지 못한 하루를 보내서 그런 거래."


그래, 본능적으로 나는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아쉽고 슬퍼서 매일매일 편히 잠잘 수 없었나 보다.


그래서?

그래서 라니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이런 시시한 결말이라고 한심하다 한숨을 쉬고 혀끝을 찰 것인가. 그래서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하고 살고 있는 가. 그렇다면 당신은 좀 더 꿈꾸는 게 어떨까?


이 글을 무겁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나의 하루를 사랑한다. 내가 포기하는 많은 것들은 완전한 포기가 아님에 나는 마음을 위로한다.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무언가를 포기하며 살고 있지만 마음에 품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죽을 때까지 마음에만 품다 죽게 되더라도 괜찮다. 그 일은 거기까지가 나의 최선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많은 것들 중에 두 가지를 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썼다. 나는 조금씩 꿈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시간도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나는 아직 어리고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다. 나는 그저 매일 조금씩 하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가 다음 날, 또 그다음 날에 조금씩 이뤄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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