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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o Jul 08. 2018

좋은 영향을 받을 준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글을 쓰는 일이 언제나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글을 쓸 때에 부담이 없이 자연스럽고 빠르게 문장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즉,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는 생각했다. 그러나 인정하는 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나의 글쓰기가 재능 있는 정도는 아니라고 혹은, 아주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한다. 누군가의 기준에는 아주 부족한 글쓰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나의 믿음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몇 가지 합리적인 근거들로 이루어졌다.


1. 사람마다 가진 재능이 다르다.

나의 모든 재능을 합쳐 100이라는 숫자를 만들게 된다면, 그 재능 100의 수치에서 글쓰기가 이루는 수치가 매우 높다. 지극히 주관적인 통계를 내보자면 가창력이 5, 운동신경이 10, 요리가 15, 디자인이 30, 글쓰기가 40이 될 것이다. 이런 수치로 따지면, 나의 기준에서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가진 능력 중에서는 글쓰기가 꽤나 재능이 있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2. 오랜 시간 고민한 적 없고, 어렵다(재미없다) 느낀 적 없고, 배우거나 공부한 적 없다.

잘 알지 못하는 것은 공부해야 한다. 잘하지 못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진다. 잘 알지 못하고 잘하지 못하는 것을 하게 될 때에는 오랜 고민과 큰 스트레스를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는 공부한 적 없고, 어렵게 느낀 적 없고, 고민하며 스트레스받은 적이 없었다. 설사 그것이 강제적으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과제나 업무적인 부분의 글쓰기여도 그랬다.(글쓰기 과제의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3.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평가가 좋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은 나와 상대방, 서로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보통은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나도 상대방을 좋아하기 어렵다. 그중에는 전 직장의 이사님이 있었다. 누가 먼저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지,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사님과의 관계는 좋지 못했다. 그러나 이사님은 내 글이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이사님은 몇 권의 책을 출판하신 작가이셨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좋지 않은 관계의 상사(어른이고 작가이었지만)가 좋은 평가를 내게 준다면 그것은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올해 글을 써야겠다 다짐하게 된 것은(물론 반드시 언젠가는 반드시 글을 썼겠지만), 전 직장의 이사님 덕이 크다. 감사해야 할 일이다. 퇴사하는 마지막 날에도 글쓰기에 재능이 있으니 꼭 글을 쓰라고 말씀해주셨다. 너무 감사한 말씀이었다.


전공이 정해지고 취업을 하게 되어 일을 시작하게 되면,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게 어릴 적부터 꿈꾸어온 일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다.


나는 디자이너가 되어서 일을 한지 올해로 4년 차, 만으로는 3년이다. 그리고 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좋아한다. 디자인하는 것도 좋아하고, 공부도 즐겁다. 실력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고 욕심도 많다.


그런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시작하게 된 데에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좋은 영향이었다. 물론, 나는 어릴 적부터 꿈꿔온 작가라는 꿈을 버린 적이 없었다. 전 직장에 취업하기 전에도 짧은 글은 메모장이나 일기장에 자주 쓰고 있었다. 글쓰기를 완전히 멈춘 적 없었다는 것은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는 데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본격적인 시작에 총성을 울려 준 것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좋은 영향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가능성과 목표 같은 것을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야 한다. 타인이 우리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목표를 중단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우리는 꿈과 믿음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타인이 우리 인생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스스로에 대한 단단한 신뢰를 쌓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개입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며 동시에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많은 책들, 많은 멘토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모두가 알고 이야기하는 그 중요한 일이 아니고, 타인의 개입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차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고 인정해 주었을 때에 그 의견을 수렴하는 일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의견을 수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좀 더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아마도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사람)이 좋은 평가 혹은 좋은 제안을 했을 때에 그것은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다. 때로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의 평가보다 더 가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사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듣게 되었고,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글을 쓰는 데에 아주 큰 힘이 될 것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을 지키는 일에 아주 예민해져 있을 것이다. 타인의 상처 주는 말과 행동, 무성의하고 이기적인 의견들에 나를 지키기 급급한 사회이다. 계속해서 자존감이나 페미닌 같은 단어들의 사용이 늘어나고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지키느라 타인이 주는 좋은 영향까지도 차단해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은 소통하며 관계를 맺고 그러한 관계들로 스스로의 존재의 의미와 삶의 생기를 얻는 사회적 동물이다. 소통에 있어서 지키고 차단하는 것들에만 예민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받을 준비를 갖추는 일도 중요하다. 상처를 주는 것들에 예민해져서 모든 것들을 상처로 받아들이는 일 없기를. 유연하고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좀 더 천천히 신중하게 생각하여 차단할 것과 수렴할 것을 판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


2년간 다닌 회사를 퇴직하며, 마지막으로 큰 배움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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