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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o Jul 14. 2018

결벽증 혹은 취미

부르기 나름

"넌 정말 대단해."

라고 친구들은 말한다. 나를 잘 아는 가까운 지인들이나 남자 친구 등등.


"깨끗하게 하고 사는구나."

오랜만에 막내딸 사는 집에 들른, 칭찬에 인색한 아빠도 말한다.


나에게 자랑거리. 나는 그들의 반응이 기쁘다. 취미를 갖게 되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어 냈을 때 자랑하고 싶어 지는 것과 같다. 내 취미는 청소이다.


내 취미(청소)를 다들 놀라워한다. 사실은 취미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 굉장해한다. 나는 취미를 하고 있는 것인데, 바라보는 이들은 내가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이 끝나고 퇴근을 해서 집에 가서도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시선에 나는 때로 웃음이 나온다.(크크크)


언제부터 청소가 우리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을까. 청소는 귀찮고 피곤하고 힘들고 그냥 싫다, 등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런 이미지를 바탕으로 청소는 다양한 직업까지도 만들어냈다. 첨단 기술들이 발명되면 청소를 위한 도구들에 적용되기도 한다.


청소는 긴 시간을 천천히 그리고 단단히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이렇게 되기까지 가장 큰 이유로는 청소가 '시켜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혹은 성인이 되어 취업을 해도 계속해서 청소를 강요받는다. 그것은 누군가가 시켜서 하게 될 수도 있고, 무언의 강요로 눈치를 보다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청소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를 나도 거르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청소는 귀찮아.'

'피곤한데 청소도 해야 해.'

'회사에서 일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해. 그리고 집에 오면 또 청소를 해야 해.'


정말이지 나도 진심으로 청소가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 있지도 않은 우렁 서방이 와서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매주 청소부를 고용하겠다고 다짐했다. 회사일이 바빠 야근과 주말출근이 잦던 때에 집은 엉망이었다. 그때는 정말 피곤하고 무거운 몸으로 억지로라도 청소를 해야 했다. 청소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청소를 제대로 마주하기 시작한 것은 독립을 하고 나서도 1년 반 정도가 지나서, 주말에 청소를 하고 있던 보통날이었다. 대충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늦은 저녁이었다.


샤워를 하다 화장실 묵은 물때를 지우고 변기를 닦았다. 손에 물이 묻은 김에 설거지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다 보니 가스레인지 기름때와 그 앞에 요리하다 튄 온갖 양념들이 신경 쓰였다. 설거지를 끝내고 남은 거품으로 가스레인지를 분해해서 닦고 벽에 튄 양념들도 수세미로 닦은 다음 행주로 거품을 훔쳐내었다. 설거지로 깨끗해진 손으로 마른빨래를 걷어와 개었다. 빨래를 개다 보니 바닥에 머리카락들이 많이 보였다. 롤 클리너로 머리카락을 붙여 모아 버렸다. 머리카락을 줍다 방의 모서리, 책장 사이에 쌓인 먼지가 눈에 거슬렸다. 물티슈를 뽑아 반으로 접어 보이는 먼지를 닦는다. 책장의 책들이 어지럽다. 공간이 부족해 책 위에 얹은 책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잡다한 메모지, 영수증, 명함, 액세서리 등등... 책을 모두 뽑아 다시 책장 바닥을 닦고 읽은 책 순으로 꼽아 정리한다.


침대에 누우니 시간은 새벽 3시 반 정도. 침대에 누워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여느 때보다 상쾌한 정신을 느꼈다.


끊임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청소를 한다. 머리로 순서를 정하고 어떤 것이 똑똑한 청소인지를 고민한다. 더 깔끔하게 정리하고, 더 깨끗하게 닦는 방법을 검색한다. 알아낸 방법으로 청소를 하는 것이 재밌다. 묵은 때가 지워지는 것을 보며 완벽하지 않은 내 인생의 어떤 부분은 깨끗하게 정리되는 듯하다. 정리된 책장을 보며 쾌감을 느낀다. 누군가는 웃을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일종의 성취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내가 왜 이제 것 청소를 싫어했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대중적인 생각이 었지 나의 생각이 아니었다. 나는 청소를 좋아하고 있었다.


혹시, 다른 것은 없을까?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막연히 싫은 일이라 분류해놓은 일들이 있을까? 일이 아니면, 사람 중에는 없을까? 누군가가 싫다고 해서 나도 싫어한 적은 없을까? 사람이 아니면 생각 중에는 없을까? 누군가의 생각을 이유 없이 그냥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없을까? 대중적으로, 보편적으로, 지금 이 시대에 평범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생각들. 어떤 기준에서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누가 처음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이유가 무엇 인지도 모르는 채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나는 청소를 좋아한다. 머리 속 고민들, 잡념들은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다. 깨끗하게 정리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청소는 더럽고 어지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닦아 깨끗하게 된 모습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가 있다.


내 생각을 설득하고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청소를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까 이해를 돕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인생에서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일이나 공부가 뜻대로 되던가, 약속시간에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는 것도 예상외의 상황이 벌어지면 늦어버리는 것이다. 내 마음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쉬울까?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 뜻대로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가능하다. 또 그렇게 노력해서 그(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내 뜻만으로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그(그녀)의 마음이 나를 향해 주어야 우리는 사랑을 이룬다. 그래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적 혹은 운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청소는 내 인생에서 내 뜻대로 되는 것 중에 하나이다. 시간만 투자하면 나는 깨끗한 책장과 싱크대를 비롯해 깨끗한 집을 가질 수 있다. 청소를 하지 못하면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나는 청소가 너무 좋은 것이다.


결벽증이라고 오해할까 덧붙이자면, 나는 아주아주 더러운 방에 누워서도 잘 자고, 땅에 떨어진 빵을 몇 번 후후 불어 먹기도 하고, 며칠씩 머리를 감지 않고 어두운 방에서 미드 시리즈를 몽땅 끝내버리기도 하는 사람이다. (쑥스)


혹시 싫어하지 않는 일을 싫어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 번뿐인 나의 소중한 인생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스스로의 기준으로 나만의 이유를 갖추어 찾기를 바란다. 그것이 취미이든 생각이든, 사람이던지 말이다.


이것은 나의 취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가 뭐라 하던 스스로의 인생을 찾아가는 나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ps. 청소가 취미라고 해서 우리 집이 언제나 깨끗하고 반짝반짝 할거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됩니다. 청소는 아무리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고, 여기 청소하면 저기, 여하튼 청소할 곳은 언제나 있으니까요. 누군가와 함께 사는 분들 중, 나는 청소를 별로 하지 않는데 자신의 집이 나름 깨끗한 편이다 생각하신다면, 그 나름의 깨끗한 편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계속해서 청소하고 있다는 것을 고마워해 주세요. (웃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아요는 글쓴이가 춤을 추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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