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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o Jul 29. 2018

놓거나 놓친 수많은 1초들

아쉬워 하다 또 놓칠라

인생은 끝이 없는 선택의 순간이다. 순간순간들이 모여 인생을 이룬다. 운이 좋으면 두 가지 보기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면 50%의 확률로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운이 나쁘면 셀 수 없이 많은 보기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 경우, 어떤 것을 선택해도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그 선택에 대한 결과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강요로 인한 선택이었어도 말이다.


후회하는 것이 두렵다고 그 자리에서 영영 멈추어 있을 수는 없다. 어떤 선택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겠다는 보기를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는 일은 계속해서 어떤 방향이든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그래도 쉬운 편에 속했다. 대부분의 선택들이 어른들의 말을 들을지, 말지 정도였기 때문이다. 또 내 인생에 대한 고민과 책임을 그들도 함께 해주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내 인생이 망하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면, 내가 후회하고 반성하고 힘들어해야 한다. 그 정도로 정리가 된다면 아주아주 다행인 일일 것이다. 인생에는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선택들도 있다. 그 선택 하나로 내 남아있는 모든 하루하루들이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강하기 때문에 죽지는 않을 것이다. 자살하지 않는 다면 말이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 그런 후회스러운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내 인생에는 여러 가지 아주 중요한 사건들이 있다.


20.

대학에서 어떤 것을 전공할지 선택할 수 있었다. 나에게 대학은 중요하지 않았고, 그곳에서 무엇을 배울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내내 아주 괴롭게 고민하였다. 11개의 학교를 수시로 지원하였다. 10개는 국어국문과, 문예창작과 등이었으나, 나머지 한 개의 학교에는 글쓰기 관련 학과가 없어서 재밌어 보이는 디자인과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나는 다수의 국어국문학과가 붙었으나, 디자인과를 선택하게 된다. 6년 내내 밤잠 설치며 고민한 것 답지 않게 아주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후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때로는 즉흥적,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결정이 자신의 마음 깊숙이의 진실을 알려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너무너무 신중하다 결국은 제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고 온갖 정보들에 둘러싸여 선택을 하는 게, 물론-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정확한 통계와 전문가 의견 등을 바탕으로 도출되는 객관적인 정보들은 아주아주 중요하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잘못되고 틀린 정보들에도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 정보들보다 나의 내면의 욕구가 더 중요시되어야 한다. 그 선택이 잘못되어도 내 욕구를 무시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면 스스로 그 무게를 감당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 신뢰하는 지인과 신뢰하는 정보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한 선택이 나를 지옥으로 빠뜨렸다고 생각해보자. 그 지옥에서 지인과 글쓴이를 욕하며 나를 가장 신뢰하지 못한 것을 후회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 선택에서 적어도 나보다 덜 고민하고, 나만큼 목숨을 걸지 않았다. 결국은 내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 제삼자, 엑스트라 일뿐이다. 객관적인 정보들까지 무시하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만을 들으라는 극단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스스로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객관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일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나는 작가를 오랫동안 꿈꿔왔다. 그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하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것 같다. 미술을 한 번도 배워보지 않았지만, 내 안에 미술이라는 것이 환상적으로 그려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 디자인과를 선택한 것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방향으로 갔어도 나는 잘했을 거라고. 지금은 믿을 수가 있다. 그러나 스무 살에는 몰랐다. 그래서 더 어렵고 무서웠던 결정이었다.



21.

나는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게 된다. 아주 중요한 선택 중 하나였지만, 별 고민 없이 결정한다. 가야 한다는 강한 울림이 내 안에 있었다. 이렇게 보니 나는 별로 신중하지 않은 충동의 아이콘인가 싶기도 하다.(웃음)



23.

두 번째 사랑을 하게 된다. 나를 바꾸고 내 인생을 바꾸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리고 내 인생에 아주 중요한 이름으로 남는다.


이런 일에 나의 선택이 반영되긴 했을까? 나에게 사랑은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만약 그 타이밍에 그에게 여자 친구가 있었다면, 나는 본능적으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랑도 분명 선택의 여지가 있다. 사랑하게 되었어도 이루어지지 않는 쪽을 선택했을 수도 있으니까.


나에게는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친구들이 몇 있다. 아무나 가볍게 만나는 것은 당연히 안될 일이지만, 때로는 친구들이 사람을 지나치게 재고 평가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완벽한 사람이라 판단이 서게 된다면 친구들은 사랑에 빠지는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보다 먼저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군가에게 완벽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을.(거의)



25.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서 이직한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서 권고사직 처분을 받게 되었다. 나는 다시 인테리어를 할 자신이 없어진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때려치우고 웹디자인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코딩과 웹디자인을 배우는 국가지원 프로그램을 수료하게 된다.


이때, 처음으로 나는 내 재능을 의심하게 되었고 자존감은 지구 핵 근처까지 떨어졌다. 모든 상황이 나를 지옥으로 떨어지게끔 딱딱 맞게 벌어지고, 실제로 나는 지옥에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재능을 장담할 수는 없으나 그보다 중요한 것이 노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사람마다 어울리고 잘 맞는 회사가 있다는 유연한 관점도 갖게 된다. 2년 뒤, 이 일은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에 근거가 되는 사건으로 남는다. 그리고 슬프게도, 사람은 고통 속에 성장한다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었다.



27.

코딩을 배워 신입으로 다시 시작했던 2년간의 아이티 회사를 그만둔다. 현재 이직하는 회사가 정해져 다음 주부터 출근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요즘 나의 이슈는 이직이었다. 백수생활 한 달 동안 제대로 놀지도 못했다. 차라리 이직을 하고 노는 게 더 마음 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인들은 나에게 일복이 터졌다고 말했다. 백수가 되어서도 약속이 없는 날에는 카페에서 포트폴리오를 작업하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재밌다. 비교하자면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 다른 생각이 안 드는 것처럼, 작업을 하는 나는 정말 일만 생각한다.


많은 회사들이 오픈해 둔 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고 연락해왔다. 면접도 여러 군데 보게 되었다. 마음에 쏙 드는 회사도 없고 머리가 아팠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우선적으로 만족되는 회사를 찾아보자고 생각했지만, 나는 내 내면의 소리와 신뢰하는 지인들의 의견과 수많은 정보들... 결국 판단력을 잃어버렸다.(하하하..)


미래? 알 수가 없다.

이직을 하는 데에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복지와 연봉, 면접자, 회사의 인테리어 정도이다. 잡플래닛이라는 서비스를 통해 회사의 평가를 볼 수 있지만, 퇴사자 혹은 현재 그 회사의 소속된 사람들의 평가뿐이다. 그들의 평가는 마냥 신뢰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맘에 들고 좋은 회사였다면 퇴사하지 않았을 것이고, 현재 다니는 직장을 솔직하게 평가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의견들은 나에게 힌트도 주지 못했다.


모든 결과는 선택하고 실행 후에 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은 최선의 조건을 지키는 회사를 다녀보기로 마음먹었다. 거기가 아니면? 다시 이직하면 된다. 나와 맞는 회사를 찾기 위해 몇 달 쓰는 것은 투자 일 뿐이다. 그 몇 달은 내 인생이 망하는 데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다.






이런 굵직한 사건, 사건들이 모여 나를 이루었겠지만, 이런 것들이 아니어도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데에는 아주아주 작은 사건들도 무시할 수 없다. 내가 오늘 5분 일찍 일어났다면 그 5분이 많은 것을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제 받지 못한 전화가 내가 지금 가기로 결정한 회사보다 더 좋은 회사였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다시 전화를 걸지 않기로 선택했다. 혼란을 가중시킬 뿐, 그 회사도 가봐야 알 수 일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놓거나 놓친 수많은 1초들이 모여 나를 이루었다.


내 지인들은 나를 우유부단하다고 말하기도, 신중하다고 말하기도, 귀가 얇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내 인생이 너무 소중하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든지 신중하고 싶다. 사실은, 종종 다 집어치우고 척척박사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놓거나 놓친 수많은 1초들을 아쉬워하며 또다시 소중한 1초를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관점으로는 인생의 절반 이상이 운으로 돌아가는 듯하면서도, 결국 모든 게 신중하게든 충동적으로든 내가 선택한 대로 인생이 펼쳐지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별것 아니다. 선택을 하든, 하지 않든 시간은 흐를 것이다. 그게 인생에서 주어진 것들 중 가장 공평하게 주어진 조건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은 속도로 흐른다.  선택지가 조금씩 때로는 크게 다를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은 나를 지옥으로 빠뜨리고, 어떤 선택은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절대로 미리 알 수는 없다. 힌트? 얻으면 좋겠지만, 그 힌트를 완전히 신뢰할 수도 없을 것이다.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


고민을 가장 많이 한 사람도, 결과가 어떨지 시뮬레이션을 가장 많이 돌려보는 사람도, 가장 많은 목숨을 거는 사람도 나일 것이다. 부모님, 사랑하는 애인, 그 어떤 베스트 베스트 프렌드 보다 내가 가장 신중할 것이다. 내 인생이기에, 나를 믿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내 인생을 지옥으로 빠뜨린 데도 나는 헤엄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너는 강하고 아름답다.




혹시 모를 미래에 지옥에 빠질 나에게 이 글을 남기며. 지옥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는 걸 너는 알고 있잖아. 너는 분명 잘 해낼 거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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