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사람
백수로 구직 중인 요즘, 프리랜서로 급하게 요청이 들어온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았다. 평일 오전 10시쯤 천천히 일어나 준비를 하고, 쨍쨍한 낮에는 종일 시원한 카페에서 작업을 했다. 오후 9시 55분 카페가 문을 닫기 5분 전에 자리를 정리하고 맥도널드에 가서 버거보다 좋아하는 치즈스틱 4조각, 상하이 치킨 스낵랩, 콘 파이를 사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 편의점에서 캔맥주 500ml를 샀다. 늦은 밤, 맥주 500ml의 자유를 마시며 글을 쓰는 나는 '혼자 사는 사람'이다.
혼자 사는 것은 크게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유와 외로움. 외로움과 자유.
혼자 살 계획이 있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문제들보다 먼저, 지독하게 외로운 밤을 온전히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할 것이다.
혼자 살게 되면 살면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일어나는 일들 중에 대부분을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까맣고(때로는 붉거나 초록) 다리가 4개 이상인, 나는 절대로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가끔 내 침실에 침입해도 도움을 청할 누군가는 없다. 소리를 질러도 와주거나 심지어 그 소리를 들어줄 사람도 없으니까. 경찰을 불러야 할 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고 온몸의 신경은 외치고 있지만, 이 구역에 미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그 손님은 스스로 처리해야 할 것이다.
새벽 두 시 달빛도 들지 않는 방 안에서 악몽을 꾸다 식은땀에 젖어 눈을 떴을 때, 누구도 부를 수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미치도록 무섭고 외로운 일이다. 차라리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싶을 정도로 눈을 감기가 두렵다. 다음날이 월요일이란 사실도 절망적이지만, 다시 잠에 들어야 그 무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주 5일 내내 야근에 시달리고 겨우 주말을 맞이 하였으나, 밀린 설거지와 빨래를 처리하지 않는 다면 다음 주에는 냄새나는 집에서 옷을 입을 때마다 코를 킁킁대며 입을 만 한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일주일이면 털갈이 시즌인가 싶을 정도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것이다.
35도를 넘는 한여름에 냉장고나 에어컨이 고장 나기도 한다. 음식도, 내 몸도 상해 가는 것을 가만히 누워 기다리는 일밖에는 할 수 없다. 한 겨울에는 수도나 보일러가 얼 수도 있다. 기사 불러서 수리하면 되잖아?라고 가볍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리를 완료 하기까지 거치는 몇 번의 과정들은 무시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출근은 해야 하고 수리 기사님도 불러야 하니 집에 물건이고 뭐고 신경 쓸 수 없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 드리고 수리를 맡겨야 할지도 모른다.
전등은 수시로 나가고, 하수구는 매일매일 머리카락이 쌓인다. 배가 고파 냉장고를 열어도 물과 김치뿐이다. 아껴둔 즉석식품들은 유통기한을 체크한다고 했지만 어느새 2-3개월이 지나있다. 시리얼은 물려서 아무리 달달한 종류도 단맛을 느낄 수가 없다. 배고프고 심심할 때마다 내 스케줄에 맞춰 나와줄 친구도 없다. 감기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친절히 안부를 물어 온다.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기에 회사 프로젝트, 친구의 생일, 애인과의 기념일, 나름대로의 효도, 공과금 납부와 재테크 공부 등, 신경 써야 할 일들은 계속해서 늘어난다.
아니, 정말이지 내 몸 하나 잘 챙기는 것이 왜 이렇게나 힘든 일인지!
이런 모든 어려운 일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외로움은 언제나 찾아온다. 혼자 살아보면 빈자리를 제대로 알 수 있다. 같이 살던 그 집에서 누군가가 소리 없이, 내색 없이 청소하고 있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심적으로도 크게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벌레를 잡아주거나 함께 소리를 질러주고, 누군가는 라면을 끓이면 한 젓가락을 양보해 주는 그런 삶이 마냥 지겹고 귀찮고 답답하다면 혼자 살아보자. 이제껏 얼마큼 받으며 살아왔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푸념하고자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닌데, 실은 생각보다 탈이 많은 이 삶의 방식을 솔직하게 풀어보고자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 내려가 본다. 물론, 현재 나는 혼자 산지 8년 차로 청소, 요리, 집수리와 관리 등 다방면에 잡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가까운 지인들과 스스로가 평가하기로도 나는 정말 혼자 잘 살고 있다.
그러나 청소와 벌레, 음식 등의 문제를 떠나 내가 오랫동안 가장 어려워했던 문제는 '외로움'이었다.
사실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을 때에 더 자주 등장한다. 그렇기에 혼자 살면 더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가족 혹은 친구나 동거인 등 같이 살게 되면, 외로움을 덮는 다른 감정들이 더 강하게 보이는 것 같다. 오해나 의심으로 싸우기도 하고 고마움, 미안함으로 행복과 사랑을 느낀다. 그런 감정들이 있을 때에는 외로움을 느끼기 어렵다.
애인을 만들고, 지인들과 약속을 잡고 술을 마시고, 쉴 틈 없이 바쁘게 일정을 짠다. 혼자 극장이나 전시회를 가서 영화나 작품에 몰입하여 외로움을 해소하려 한다. 그러나 외로움은 잠시 가려질 뿐이다. 나는 외로움이 식욕이나 성욕처럼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은 내 눈과 코, 입처럼 떼어 낼 수 없는 것이다. 인지하지 못할 뿐 내 안에 있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것이 사람인데, 더군다나 혼자 살게 되면, 외로움은 더욱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처음에는 언제나의 방식대로 외로움을 해소하려 하지만 역시나 잠시 가려질 뿐이다. 이제 나는 외로움을 더 가까이 그저 옆에 앉혀두고 어깨를 토닥인다. 그리고 말한다. ‘그래, 짜식아. 너만 외로운 거 아니야.’ 외로움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에 나는 그보다 큰 자유를 만날 수 있었다.
애인, 친구, 가족. 모두 나처럼 하루를 버텨내느라 어렵고 벅찬 그저 한 사람일 뿐이다. 나보다 더 나를 아끼는 존재라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을 왜 해소해 주지 못하냐고 따질 상대는 애인, 친구, 가족이 아닌 본인 스스로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도 나만큼 외롭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어찌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내가 있어도 외롭다니, 아니 나부터가 그들의 존재 상관없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니까. 나도 외롭고 그들도 외로운데, 나는 그들의 외로움도 나의 외로움도 제대로 해결할 수가 없다. 빈 속으로는 누구도 채워줄 수 없다.
외로움을 옆에 앉히면,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외로움을 가리기 위한 집착에서 벗어나, 나의 자유를 느낄 수가 있다.
뭔가 출출할 때 그냥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내가 먹을 만큼 사면된다. 밤에 잠이 안 오고 옆으로 누워 밤새 핸드폰 게임이나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옷을 고르다 입고 벗어놓은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도 그냥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외출하면 된다. 다녀와서 치우는 것도 내가 하면 되니까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삼시세끼 귀찮으면 쫄쫄 굶으면 되고, 라면으로 하루를 채우고 싶다면 아침에는 짜파게티, 점심에는 신라면, 저녁에는 불닭볶음면을 먹으면 된다. 그러다 갑자기 너무 답답하고 우울하면 대충 입고 학교 운동장 한 바퀴를 뛴다.
아무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롭다는 것이다. 아무도 없으니까 내 맘대로 살 수 있다. 모든 게 내 맘대로이다. 방귀를 뀌고 코를 파도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자유.(ㅋㅋㅋ)
무슨 짓을 하든 온전히 나의 감정만 느끼며 내가 뭘 원하는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무엇을 하든 누구도 개입되지 않는 자유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다못해 우리는 별로 안 친한 직장동료에게도 점심메뉴를 선택할 자유를 침해받는다. 그러나 혼자 사는 나는 집에 오면 모든 것이 다 나의 자유이다. 타인의 자유가 나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도 없고 내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일도 없다.
외로움에 사무쳐 눈물이 나면 소리 내서 울고 베개를 적셔도 괜찮다. 다음날, 내가 외로워 울 때 넌 대체 뭐했어? 하며 원망할 존재조차 없다. 아니면 밤에 왜 울었니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얼굴에 외로워서, 그냥 혹은 몰라하면서 둘러대지 않아도 된다. 그저 눈물 자국 남은 베갯잇을 벗겨 세탁기 속으로 던져 넣으면, 어젯밤 내 외로움의 흔적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것이다.
맥주를 마시며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쓴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혼자, 완전한 자유. 모든 시선에서 벗어나 깨알 벗은 상태의 자유. 열매를 먹기 전, 아담과 이브의 자유가 이런 것이 었을까.
내 모든 하루가 나의 것이란 사실이, 그렇게 당연한 사실이 이렇게나 자유롭다니.
혼자 사는 나는, 내가 알리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나의 하루를 알 수 없다. 내가 밥을 먹든, 빵을 먹든, 혹은 하루 종일 쫄쫄 굶든, 아니면 이 밤에 혼자 맥주를 사다 마시며 자유를 온몸으로 만끽하든, 누구도 알 길이 없다.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뭘 가졌는지 잘 모른다.
이 말은 내가 종종 생각하는 것인데, 내가 손꼽는 나의 인생 명언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잘 기억하며 살고 싶은 마음에서 자주 떠올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께 있을 때는 답답해하고, 혼자 있을 때는 외로워한다. 나도 자취 초보일 때는 내가 자유를 가졌는지 잘 몰랐다. 마냥 가족들의 빈자리만을 바라보며 외로워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함께 있을 때는 함께 있어 좋고, 혼자 있을 때는 자유로와 좋은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내게 없는 것의 빈자리를 바라볼 시간에 내 곁에 있는 것들을 닳을 때까지 바라볼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중 하나도 외로움=자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서 외로움을 떼어 놓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7년간의 혼자 사는 삶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리석은 나란 사람은 행복할 때보다는 외롭고 슬프고 괴롭고 후회스러울 때에야 깨닫고 성장하는 그런 사람이라, 혼자 사는 이 삶의 형태는 나를 아주 많이 성장시킨다. 나는 나의 모든 감정과 생각을 온몸으로 느끼고 조금씩 성장하며 살고 있다. 외로움은 나름의 장점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미치도록 외로움에 사무치는 밤과 미친 듯이 만개한 자유가 춤을 추는 밤이 오고 간다.
그래서 나는 자주 외롭고, 종종 자유로운 혼자 사는 사람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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