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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o Jan 07. 2019

디자이너의 열정, 그리고 찬물

불이 났으니 물을 뿌릴 것이다

오랫동안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주변에도 종종 만날 수 있다.


UI/UX 디자이너 신입으로 입사하여 2년간 일했던 회사에서 만난 디자이너 팀장님은 그 회사가 첫 직장이셨다. 신입으로 들어와 팀장까지 약 10년 정도를 그 회사에서 일하셨다고 했다. 팀장님은 10년 동안 같은 일을 했는 데도 신입으로 입사한 나만큼 열정적이셨다. 디자인팀의 스터디 주제가 정해지면 4명이서 각각 주제를 나누어 스터디하고 발표를 했다. 팀장님이 가장 많은 양의 어려운 주제를 맡아서 정리하셨다. 팀장님의 열정은 누구라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회사에 대한 애정이기도 했다.


현재 회사의 내 앞자리에는 거의 모든 일의 진행을 보고 받고 검토하는 상사 한분이 앉아계신다. 나는 언제나 회사 내에서 가까운 롤모델을 비밀스레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데, 디자이너 상사가 없는 지금 회사에서 나의 롤모델은 앞자리의 상사이다.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해보니 나는 상사들의 다혈질, 감정 기복 등을 아주 많이 보게 되었다. 대부분의 상사들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겉으로 표출한다. 그러한 분노는 존경할 수 없는 상사로 보이도록 한다. 감정이 앞서면 섣부른 판단으로 인해 말실수 등이 이어지는 데 그것이 나에게 상처를 줄 때도 많았다. 그런데 내가 보는 이 분은 감정이 잔잔하여 화가 나도 그 기복의 정도가 크지 않다. 어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아주 침착하고 신속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그 일에 포커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또한 매일매일 검토해야 할 많은 일들이 그 자리의 무게와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열정을 증명한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상사로 남을 것이다.



디자이너에게 열정이란 무엇일까. 열정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감정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열정은 누구라도 볼 수 있다. 디자이너에게 볼 수 있는 열정 몇 가지를 정리해 보겠다.


1. 검색

열정이 없으면 검색을 하지 않는다. 이미 본, 말하자면 ‘흔한’ 디자인을 해나간다. 그렇게도 일을 하고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다. 그러기에 디자인에 필수적이지 않은 과정, 디자인 검색을 하지 않는 것은 열정의 부재이다. 열정이 없으면 게을러지고 안주하게 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려 한다. 결국 새로운 것을 찾아 검색하지 않는 것이다.


2. 퇴근 후 스터디

‘워라밸’에 관한 이야기이다. 퇴근 후 스터디를 이야기하면 어떤 이는 '젊은 꼰대'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강제성 없이 스스로 선택하는 시간, 퇴근 후 시간을 디자인에 활용한다면 그것이 곧 열정이라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는 시도 때도 없이 디자인을 스크랩하는 데 이것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스터디중 하나이다. 물론, 깊이 기억되지 않더라도 한번 본 디자인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디자인보다는 도움이 된다. 또 이것을 잘 분류하여 스크랩해두면 나중에 다시 찾아 참고하기에 더욱 좋다. 디자인 스터디로는 새로운 디자인 툴을 배우거나 디자인 서적을 읽는 것도 좋지만, 혼자만의 작업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스터디라고 생각한다.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디자인 작업은 내가 계속해서 디자인을 좋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3. 의견 묻기

나는 재능 있고 감각 있는 디자이너 그룹에 속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노력파에 가깝다. 그러나 아직은 노력파이지만 곧 머지않아, 재능 있는 그룹에 속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디자인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세 번째는 '의견 묻기'이다. 아무래도 디자이너는 예술가가 아니기에 다수의 눈에 좋아 보이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디자인을 고집하면 팔리지 않는 디자인이 될 것이다. 팔리지 않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디자인을 보여주고 의견을 묻는다. 그것은 전공자에게만 해당하지 않고 오히려 비전공자에게도 물어본다. 물론 모든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전공자의 시선으로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아는 것 만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수렴하지 않는 의견을 보면서 나의 디자인 취향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의견을 묻지 않는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에 확고한 믿음이 있기도 하겠지만, 부정적으로는 어떤 의견도 수렴할 생각 없이 수정하는 수고를 들이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즉 열정을 잃은 게 아닐까. 나는 스스로 노력파 디자이너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진다. 그렇기에 자신 있게 의견을 물어보고 수렴한다.


4. 계속해서 바라보기

자신이 작업한 디자인은 객관성을 가지기 어렵다. 나중에는 어느 것이 더 좋은지 구분하기 어렵다. 같은 글을 계속 읽어도 발견할 수 없었던 오타처럼 한번 눈에 익숙해져 버린 디자인에서는 흠을 찾기가 어렵다. 열정을 가진 디자이너는 이때에도 계속해서 디자인을 바라본다. 하루가 지나 다시 디자인을 확인해본다. 그러면 하루 종일 바라볼 때에도 보이지 않았던 흠이 보이기도 한다. 계속해서 디자인을 바라본다. 만족스러울 때까지 바라보며 고민한다. 열정은 곧 애정이다. 애정을 가진다면 시간은 얼마든지 들일 수 있다. 나는 작업의 퀄리티를 바랄 때 마감에 맞추어 작업을 하지 않는다. 업무 일정을 조정하여 미리 작업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작업을 완성하고 난 다음날 한 번 더 보고 수정해서 마감을 전달한다. 이런 검토의 시간을 어떻게 해서든 지켜낸 다면 그것은 퀄리티를 보장할 수 있고 또 그런 고집이 바로 내 작업에 대한 열정이라 생각한다. (물론, 마감일이 계속해서 재촉당한다면 고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열정이 성공(목표 달성)을 위하여 중요한 요소일지는 몰라도 열정을 가진다고 해서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열정은 동시에 스트레스를 동반하기도 한다. 열정을 쏟는 만큼의 성과를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다 보니 대부분의 것들에서 노력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디자이너의 열정 또한 그렇다. 열정적으로 디자인을 한다고 그만큼의 훌륭한 디자인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생 시절 성공하였다 하는 사람들의 초청 강연을 듣게 되었다. 나는 거기서 빛이 나는 그분 들의 열정을 보았다. 그리고 질문하였다.

"열정은 무엇인가요? 저는 요즘 저의 열정이 예전만 하지 못함을 느끼고 그것이 두렵습니다. 열정이 사라지면 어떡하죠?"

"언제나 뜨거울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쉬어가는 시간도 필요하고 그래야 더 뜨거울 수 있습니다."

열심히 적었지만, 노트를 찾을 수는 없었다. 내 안에 깊이 남은 문장은 이 두 문장뿐이다. 그러나 충분한 답이 되었다. 맞아, 언제나 뜨거운 사람 일수는 없다.


더 뜨거운 열정을 위한 잠시의 쉬어가기는 불안해할 일이 아니다. 열정이 식는 것이 언제나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창 뜨거운 열정이 절절 끓고 있는 데, 찬물을 붓는 일이 있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지 않는다.'

도서 타이탄의 도구들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오디오 클립에서 하는 요조의 세상의 이런 책임에서 이 문장을 들었다. 야근이 지속되며 나의 열정이 다 닳을 때에는 반복해서 들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오로지 나의 탓만이 아니라는 위로.


일이 많으면 우선 빨리 해야 되기 때문에 속도를 내게 된다. 속도를 가지면 깊이 있는 고민을 하기 어렵다. 바로바로 떠오르는 데로 디자인을 해나간다. 계속해서 고민 없는 디자인들의 생산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이 계속되면 내가 작업한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애정을 갖지 못한다. 심지어는 '내가 했다고 말하지 말아 줘'라는 디자인이 완성된다.


디자이너로써 부끄럽고 화가 난다. 이런 상태로는 열정을 지켜내기 어려울 것이다.

업무의 과부하만큼 열정에 찬물을 붓는 것이 또 있을까. 업무의 과부하 - 마감에 쫓기는 작업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 - 피로 누적 - 업무에 대한 애정이 사라짐 - 열정이 사라짐. 이 과정은 아주 많은 디자이너들이 격고 있는 과정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열정적인 디자이너이고 싶다. 아쉽게도 나의 열정에 찬물을 붓는 다양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열정을 위하여 우리 모두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여유가 아닐까. 그러나 설득력 있는 근거를 갖추지 않은 채, 업무를 줄여달라거나 인력을 보충해 달라는 의견이 반영될 리 없다. 전체적인 회사의 분위기를 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나는 우리의 열정이 외부 요인들로 인하여 휘둘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나의 열정에 찬물을 붓는 것들에 대응하는 나의 자세를 몇 가지 정리해본다.


1. 업무 효율성 높이기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툴로 포토샵, 일러스트 등을 사용한다. 그런 프로그램은 맥 ios나 윈도우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설치된다. 보통은 프로그램에만 단축기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운영체제와 웹 브라우저(익스플로러, 크롬, 파이어폭스, 사파리, 오페라 등)에도 존재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본인이 자주 사용하는 기능의 단축키만 잘 활용해도 업무의 효율성을 두배 이상 높일 수 있다. 자주 사용하던 프로그램이라도 번거로움을 겪는 부분이 있다면 검색해서 좀 더 쉽게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또 프로그램이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될 때마다 기능 또한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대한 공부는 업무 효율성에 직결된다고 생각된다.


업무의 우선순위를 잘 정리하는 것은 불필요한 야근을 막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업무를 정리하는 어플로 나는 Notion을 사용하고 있다. 에버노트보다 다양한 기능들이 가능하여 활용하는 재미가 있다. 이렇게 요즘에는 업무를 하는 데에 있어서 속도를 높여주고 더 편리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고 있다.


2. 포기할 수 있는 우선순위 정하기

보통은 중요한 우선순위를 꼽아 우선적으로 하라고 하지만, 나는 버리는 것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 중에 하나가 깨끗한 나의 집이다. 그러나 바쁜 일이 생기면 언제나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하는 것은 깨끗한 집이다. 바닥에 머리카락 줍기와 욕실 정리와 설거지만 포기해도 30분은 더 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잠이다. 나는 잠을 포기하고 오늘도 글을 쓴다. 내일 출근해야 하지만 일만 하다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일도 글쓰기도 포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일이 너무 많아지면 역시 일보다는 글쓰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이렇게 포기해야 할 것을 정해서 어느 정도는 포기를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여유 공간에 업무가 들이닥칠 지라도 완벽할 수 없는 나를 안아 줄 수 있는 것도 나라는 생각에, 나는 이런 방법을 정리해 본다.

스트레스가 폭발하면 답은 퇴사밖에는 없다. 일이 줄거나 연봉이 올라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있다.



사실, 요즘 나의 열정에 찬물을 붓는 것은 업무의 과부하뿐만 아니라, 의미 없는 디자인 작업들이 계속되는 것이다. 디자인에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은 나를 허무에 빠트린다. 지속되는 야근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디자인을 아주 오래 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디자인을 대하는 나의 진심과 열정을 오래 지켜 내고 싶다.

열정을 지키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니, 점점 더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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