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간과 뼈 등 몸 곳곳에 전이된 4기
세상에 완벽한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겠지만, 어제부터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완벽한 아버지가 되었다.
어제.. 2019년 7월 5일 금요일, 오후 5시 20분. 아버지의 폐암 4기 확진으로부터.
아빠에 대한 글을 써본 적이 있다. 미움과 원망이 가득한 애증의 글이었다. 무엇이든 과거는 이제 과거일 뿐이다.
의사는 긍정적으로 치료 방향만을 이야기했다. 안 좋은 이야기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했기 때문이다. 수술이 불가능한 폐암, 그리고 간 전이.
폐암은 3기, 간으로 전이된 것이 4~5개 정도 보여 4기 확진. 다행히 5% 정도만 가지는 유전자로 인하여 표적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사실은 다행인 것도 없었다. 어쨌든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암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다. 나는 처음으로 이렇게나 가까이 암을 접하게 되었을 뿐이다.
폐암 4기를 듣고부터 진료 내내, 뒤에 앉아 숨죽이고 눈물을 닦아낼 수 밖에는 없었다. 조금의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아주 작은 훌쩍임도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눈물은 막을 수 없었다. 그냥 어디가 구멍 난 것처럼 뚝뚝 떨어졌다. 계속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 가슴이 미어지고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이런 슬픔을 말하면 세상 효녀 나신 것 같지만, 나는 효녀가 아니다.
아빠에게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불효녀라 말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효녀 소리를 듣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내심 불효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부터는 최대한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아르바이트는 스무 가지 이상 해보았고, 학점도 나쁘지 않았으며 과대표니 대의원이니를 해가며 학비에 보템이 되기도 했다. 2학년 때부터는 그마저도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지금은 스스로 다 갚았다. 스물네 살 졸업하자마자 취업했고 그때부터는 도움받은 일이 없다. 딱 한번, 전세자금 대출을 해서 방을 구할 때에 부족한 자금을 빌렸다. 다 갚지 못해서 나머지 몇백 정도는 결혼 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을 테니 그렇게 알아라 하고 남은 빚은 없애주셨다. 이런 돈 계산을 하고 있는 것도 그다지 불효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구는 아직도 용돈을 받는 다더라 하는 얘기를 몇 번 듣고는 '나는 훌륭하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든 생각이, 모든 일들이 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다. 어리석은 인간은 꼭 잃어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했던가. 이제와 내가 정신 차렸다고 해도 그것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별별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이 모두 아무 생각도 아니었지만, 나열하자면.
지금은 건강해 보이시는 데 그러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어찌 되었든 나는 내 인생 계획을 따라야지.
서른 넘어 내 결혼식에 아버지가 안 계시다면..
다음 주 월요일에 마감인 일이 많은 데 일단 일은 해야지.
오늘 만난 의사는 돈을 참 많이 벌겠구나.
그러면 그 의사 아버지는 암에 안 걸리겠지. 걸려도 초기에 발견해서 금방 나을 거야.
결혼식을 앞당겨야겠다 난 아빠가 있어야 해.
아빠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을까.
나는 출근 못해. 회사를 그만둬야 해. 안 그래도 멘탈도 약한 데 일도 너무나 많다.
아빠 때문에 아침에 잠도 잘 못 자네.
나도 암보험을 들어야 하는 데, 이미 암이면 어쩌지.
암보험을 어떻게 알아보지 보험은 너무 어려워, 이것 저것 다 따져도 손해 볼 것 같고.
아빠가 자꾸 덥다고 해서 에어컨을 계속 틀어야 하네. 전기세는 어쩌지.
이제까지 모은 돈을 모두 아빠에게 써야지. 여행도 가고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쓸 거야.
내가 아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내 자식이 아빠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아빠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 자식은 할아버지가..
애를 낳을지 말지도 결정한 적 없는 데 이런 생각은 대체 왜 하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런 때에 이런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이지 나는 이따위 생각 정도밖에는 못하는 걸까 머리를 쥐 뜯고 싶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서 바닥에 앉아 펑펑 울었다. 나에게 아빠가 없으면 내 인생의 이 뿌리 깊고 단단한 나무가 없다면.. 펑펑 울다 잘 닦고 나와 또다시 많은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괜찮아 이미 혼자서도 잘 살고 있었잖아.
하루하루 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아빠가 아파도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이별을 해도 출근을 해야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일주일 정도 지난 후면 다시 아무 일 없는 듯 출근을 해서 일을 해야 한다. 그 사실이 비극이라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울더라도 곧 다시 일어나 일을 하고 밥을 먹는다. 심지어는 밥을 먹다 웃기도 한다.
하루는, ‘별일 아니야. 부모님은 자식보다 먼저 죽는 것이 순리잖아. 아빠도 나이가 드셨으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병이 온 것일 뿐이지.’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누가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면 그때부터는 세상 모든 벽과 천정이 쏟아져 내린다. 세상 이렇게 힘들고 슬픈 일이 나에게 벌어지다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처럼 엉망진창으로 울어버린다. 요즘 나는 이런 상태이다.
아빠는 그런 나를 달래주었다. 그러면서도 아빠도 나만큼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는 듯하다.
아빠는 10년이고 20년이고 살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곧 몇십 분이 지나지 않아, 그냥 술이고 담배고 실컷 즐기다 죽는 데로 죽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나에게 형제들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한다. 할머니에게는 병을 숨긴다. 엄마가 걱정이라고 얘기를 하면서도 알아서 잘 살겠지-한다. 아직은 아프지 않은 데 그래서 괜찮을 것 같다고 하다가도 몸이 여기도 이상하고 저기도 이상하고 다 이상하다. 너는 너의 계획대로 살아라, 일찍 결혼할 필요도 없다. 다 괜찮다. 너무 힘들다. 스트레스다. 그러나 아빠는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우울하게 앉아 있으니 내 눈치를 보는 아빠. 이 와중에도 남의 표정을 살피는 아빠를 보니, 내가 참 아빠를 많이 닮았다. 내가 많이 닮은 아빠,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오늘 하루 종일 아빠와 대화하고 아빠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반바지가 필요하다는 얘기에 바로 사서 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모든 것을 아빠에게 맞추려 노력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이런 것 밖에는 없다.
주변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위로의 말을 한다.
‘너는 너의 인생을 살아야지,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야지. 나중에 아빠 때문에 이랬녜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아무쪼록 아빠를 잘 챙겨주고, 네가 고생이 많구나.
힘내. 힘내. 힘내.’
‘너라도 정신을 잘 차려야지. 힘내.’
‘어떡하니... 힘들겠다.. 괜찮아? 힘내.’
‘치킨 같은 건 먹지 말아. 안 좋은 건 다 가리고 건강한 걸로 잘 챙겨 드려라.’
‘누구는 폐암이 걸려도 몇십 년을 살았다더라.’
‘치료가 많이 힘들 거라더라 잘해드려라.’
‘의사 말도 너무 믿지 말아라. 자연치유가 좋다더라.’
.......
모르겠다. 궁금하지도 않고 별로 듣고 싶은 말도 없다. 하고 싶은 말도 없고. 다만, 내가 좀 제정신이 아니더라도 이해하라는 의미로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곧 응원의 메시지, 위로의 말, 날 위하는 말이라는 것은 알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듣고 흘린다. 그냥 말말말...
쉽지가 않다. 내가 지금부터 뭘 한들, 아빠가 사라지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뭘 하면 땅을 치고 울지 않을 수 있을까. 그냥 나는 땅을 치며 후회하고 구멍 난 하늘처럼 엉엉 울고 있겠지. 내가 무얼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그냥 나는 아빠 손을 꼭 잡고 이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조용히 길을 걸어본다. 더 이상 이렇게 완벽할 수가 없는 나의 소중한 아버지. 완벽한 아버지. 남은 날들을 알게 되니 효녀고 불효녀고 그냥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완벽한 아버지이다. 그냥 완벽한 아버지라고 더도 덜도 아무것도 할 필요 없는 완벽한 아버지를 만났다고.
모든 암 환자들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모든 암 환자의 보호자분들의 희망과 용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