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의 2900원짜리 마스크
아빠와 단둘이 나의 작은 원룸에서 치킨을 시켜 새벽 4시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잠을 자고 일어나 밥을 먹었다. 토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입안에 염증이 두세 개, 목은 부어서 침을 삼키면 아팠고 그 날 저녁 생리가 터졌으니, 몸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아빠에게는 아무것도 내색할 수 없었지만, 조금 더 늦잠을 자고 싶었다.
그래도 오후 1시에는 씻고 집을 나섰다. 아빠 손을 잡고. 의사는 염색을 해도 된다고 말해서 서울 회기역 근처에 이발소에 데려다주었다. 미용실은 비싸고 면도를 안 해주니 이발소가 더 좋다고 하였다. 이발소에 아빠를 데려다주고 나는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 가서 일을 했다. 홈페이지 리뉴얼 작업을 개인적으로 받아 주말마다 진행하고 있었다. 아빠의 병을 알고부터는 2주간 아무런 메일도 연락도 하지 않고 내 멋대로 작업을 중단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폐암 4기, 간으로 전이되어 수술은 어려운 상태이다. 확진을 받고 그다음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빠를 기다리며 일을 정리했다. 배가 고파 커피와 함께 빵을 먹었다. 아빠가 돌아와서 아빠도 커피와 빵을 사주었다. 시골에서 올라오시는 엄마를 청량리역 근처에서 기다리는 동안, 아빠를 좋아하시는 사우나에 데려다 드렸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일을 했다.
얼마나 큰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다 때려치우고 침대에 웅크려 눈물이 나면 울고 안 나면 자고 배가 고프면 일어나 라면이나 먹고 졸리면 다시 자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동물처럼 본능대로 지내고 싶다. 단 며칠만이라도.
아빠와의 하루는 완벽했다. 아빠는 이발소도 사우나도 맘에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날 밤, 나의 작은 원룸에서 나는 엄마와 아빠와 셋이 잤다. 아주 안전한 밤이었다.
어릴 적, 안방에서 부모님이 자고 나와 언니는 작은 방에서 따로 잤던 시절. 웬일인지 특별한 밤이었다. 작은 방에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잤다. 언니와 나와 엄마, 아빠가 작은 침대를 두고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잤다. 집을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1, 2학년 즈음일 텐데, 얼마나 좋았는지 그 좋은 감정이 그대로 기억난다. 그날 밤 꿈은 기괴했지만, 그 기괴한 꿈마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기괴한 꿈이었지만 나쁜 감정이 없다.
그날 밤처럼 아주 안전한 밤이었다.
다음날, 언니와 형부와 조카를 만나러 잠실 롯데월드타워로 가는 길이었다. 기침이 잦아지는 아빠는 서울의 공기가 기분이 나쁜 듯했다. 아빠는 마스크를 써야겠다고 했고 나는 편의점에서 2900 원하는 마스크를 사서 아빠에게 주었다. 아빠는 마스크를 끼고 한결 안심이 되는 듯했다. 얼마나 걸러주는지 영 미심쩍은 나지만, 아빠의 얼굴을 보고 마스크를 대량 구매해서 집으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 가족과 밥을 먹고 타워 전망대도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카페에 앉았다.
아빠의 병을 알고부터 남자 친구와 결혼 이야기를 했다. 아주 처음은 내가 이야기했지만, 그 후로는 남자 친구가 먼저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우리 집안을 배려해주시는지 남자 친구 집에서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신다. 나는 그게 참 다행이란 생각에 들리는 소식마다 족족 아빠에게 전했다. 예전부터 아빠는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셨기 때문에 좋아하실 거란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별 말이 없었다.
내년 몇월즘에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도 별 말이 없었다.
"왜 별 말이 없어? 결혼을 한다고 하는데.."
"아빠는 듣기가 아주 싫어. 곧 죽을 것처럼 급하게 결혼을 한다고 계속 이야기하는 게 듣기가 싫어. 아빠는 10년도 20년도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왜 당장 내년에 결혼을 한다고. 몇 번을 같은 얘기를 계속하는 거야. 할 말도 없고 그냥 알아서 해."
형부는 옆에서 "그러실 수 있죠. 그럴 수 있죠." 하고 추임새를 넣었지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당황했고 주절주절 그냥 어차피 할 걸 조금 당겨한다는 거야-라며 주절주절. 그런 말에도 아빠는 계속 듣기 싫다고 말했다. 어쨌든 자기가 병에 걸려서 한다고 하는 거 아니냐면서. 나는 아빠가 내가 결혼을 빨리하면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복잡한 생각들로 정신이 없다가, 내일은 언니와 병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아빠는 언니네 집으로 갔다. 나는 혼자 집으로 오는 길에 아무 생각을 안 하는 듯했지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정리된듯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이기적이었는지도 몰라. 아빠는 지금 몸안의 암과 아빠가 돌보고 있는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남은 여생들, 직장.. 그 어느 것 하나 고민이 아닌 것이 없을 텐데. 나보다 더 혼란스럽고 나보다 더 정리되지 않을 텐데. 나는 내 후회만 생각하며, 아빠 가시고 후회하지 않게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었는지도 몰라. 남자 친구나 남자 친구네 집에서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면서도 나는 아빠가 좋아할 것이라 마냥 내 관점이었지. 아빠가 어떨지 알지 못했지. 그냥 좋아하실 거라 생각했지. 사실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는지 몰라.
내가 후회가 남을까 그게 너무 두려워, 아빠가 없는 내 인생이 너무 슬프고 불쌍해서.
아빠의 인생은 생각하지 못했다. 평생을 쉼 없이 일했던 우리 아빠의 남은 인생은 너무도 소중하다. 내 결혼식 이야기나 하며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빠는 보이지 않는 나쁜 공기들로부터 불안했다. 마스크를 끼고는 얼마나 보호될지 모르지만 조금이나마 편안해졌다. 아빠를 위해 서울 구경을 한들 그게 아빠를 위한 일일까 생각했다. 아빠는 그저 시골에 내려가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아빠는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아빠를 만나러 가고 아빠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바랄지 모르겠다.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는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두려워진다.
모든 암 환자들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모든 암 환자의 보호자분들의 희망과 용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