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만 예뻐하자나" 이 말이 사랑의 불평등을 알렸다.

[남자라서 괜찮은건가요?] 남아와 여와, 아직도 불평등한 사랑

by 글꾸다

매주 일요일이 되면 어머니와 이모는 할머니 집에 방문을 하신다. 혼자 계시는 할머니가 적적하시지는 않을까, 식사는 잘 챙겨드셨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어머니는 할머니 집에 다녀오시고는 "음식을 사 갔는데 제대로 안 드시더라니까. 걱정이야"하며 속상해하시는 일도 꽤 있었다. 두 분이 할머니를 매주 찾아뵙고 말동무가 되고 여러 가지 챙겨드리는 일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식이라고 해서 이런 일들이 당연히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당장 삼촌들만 봐도 그렇지 못하고 있다.



나는 할머니에게 특별한 애틋함이 있다. 내가 아직 옹알이 정도만 할 수 있을 때 내 옆에는 할머니가 계셨다. 기저귀는 물론 코가 나올 때면 코까지도 빨아 없애주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셨다. 아무리 딸의 자식이라고 해도, 작은 손주라고 해도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아무 조건 없이 그렇게 사랑하셨다.



정작 받는 사람은 잘 모른다고. 나는 할머니의 사랑이 큼을 잘 모르고 있었다. 이를 느끼게 된 것은 조금은 속상한 이유였다. 20대의 친척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자리였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동생에게서 억울한 불평이 튀어나왔다.



사랑은 평등하지 못하게



"할머니는 오빠만 예뻐하잖아. 내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웃어넘기려고 했으나.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애정표현도 잘하지 못하고 전화도 거의 하지 않는 무뚝뚝한 손주였다. 할머니 생각이 나더라도 나중에 전화드려야지 하고 잊어버리곤 했다. 그만큼 다른 일들에 정신이 팔려있었고 할머니가 주시는 사랑에 비해 내가 드리는 사랑은 터무니없이 작았다.



할머니 집에 다녀온 날에는 내 주머니 속에는 꾸깃꾸깃 접힌 만 원짜리 지폐들이 있었다. 나는 매번 한 두 번 거절하다가도 결국 받아오곤 했다. 할머니가 가끔 폐지를 주우러 나가신다는 것도, 용돈을 받으시며 생활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넉넉하지 않았을 테고 부족하셨을 텐데, 할머니는 그것마저 아껴 내 주머니 속에 넣어주셨다.



다른 가족들 몰래 주신다고는 해도 모를 리 없었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박카스를 한 박스 사가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도 열심히 돕는 동생의 눈에 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지폐들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을 것이다. 손주를 생각하며 아끼고 모으신 사랑이었으니까. 서운한 것은 당연했다.



물론, 할머니에게 내가 제일 사랑하는 손주인 것은 아니었다. 나를 아끼시는 할머니의 사랑은 자식들에게 이미 전해지고 있던 것이었다. 매주 할머니를 찾아뵙고 챙기는 딸들보다 멀리 살고 있는 아들들을 더 챙기고 사랑하시는 것처럼. 첫째 아들의 첫째 아들. 공부도 잘하고 착했던 형은 할머니의 애정 노선에 1번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원픽이랄까.



여전히 남아선호



할머니의 사랑에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적어도 가족들 눈에는 줄을 세운 것처럼 명확히 보였다. 그리고 그 순위가 결코 할머니에게 잘하는 순서가 아니라는 것도.



흔히들 말하는 '남아선호 사상'이 아닐까 싶다. 지금이야 전에 비해 자식의 성별을 따지는 일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예전에는 심했다. 집안에 대를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딸만 있는 큰 집에서 작은 집의 첫째 아들을 입양하고 후계자로 키웠다는 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속 이야기였다.(지인의 회사 이야기다.) 그 정도로 우리 사회는 남자를 선호했다.



그러니 할머니가 아들들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 할머니의 사랑의 방식은 잘못된 것 같다고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혜택을 받아온 나로서는. 어머니와 동생의 서운할을 조금이나마 풀어내는 방법은 내가 사랑을 받은 만큼 더 많이 할머니에게 잘하는 일은 아닐까 생각한다. 할머니의 사랑이 누구에게 얼마나 갔다는 사실보다, 따뜻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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