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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부장 Apr 02. 2020

16. 오슬로에서 해야 할 가장 멋진 일

one-way ticket project #16 오슬로


 이제 막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 야간 버스 안에서 부스스 잠을 깨어 맞이한 오슬로의 첫인상은 쓸쓸함이었다. 직전에 들렀던 헬싱키, 스톡홀름과는 달리 차창밖 회색빛 건물들, 오가는 이 없어 외로워 보이는 거리 그리고 을씨년스러움을 한껏 더해주는 새벽바람은 오슬로와의 첫 만남에 유쾌한 인상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며 둘러본 이 도시는 어쩌면 의외의 예술 도시 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서둘러 둘러본 국립 미술관, 지난 며칠 동안 도시 이곳저곳을 다니다 마주친 크고 작은 조각상들과 그 조각상들의 본류처럼 느껴지는 넓디넓은 비겔란 조각공원, 거기에 지금 향하고 있는 『오페라 하우스』 까지 보고 나면 어쩌면 오슬로는 도처에 예술의 아름다움이 흐르는 곳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오슬로에 오기 전 내 궁금증을 가장 자극했던 곳은 이 도시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였다. 언젠가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본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는 특유의 기하학적이고 미래 세계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나의 뇌리에 콕!! 하고 박혀 있었다. 무엇보다 방송에서 인터뷰했던 한 오슬로 시민의 한마디 때문에 이 곳에 오면 꼭 그 장소에 가보겠노라고 생각했었으니까.


“ 오슬로에서는 이 오페라 하우스에서 해지는 석양을 보는 것이 가장 멋진 일이죠!! ”


 그 멋진 일을 해보기 위해 도착한 오페라 하우스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걸터앉아 일요일 저녁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다. 문제는 석양을 보기 위해 일부러 저녁시간에 맞춰왔음에도 해님은 아직 퇴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거다. 말 그대로 해는 아직 중천에 떠있다. 석양은커녕 너무 눈이 부셔 선글라스를 꺼내야 할 판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 거란 생각에 작은 샌드위치 하나 포장해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 소문으로만 듣던 석양을 바라보며 나만의 작은 피크닉을 즐겼더라도 나쁘진 않았을 텐데. 




 서로 엇갈리는 몇 개의 직선들이 만들어낸 도형으로 이루어진 오페라 하우스 건물은 단순해 보이면서도 신비로워 보이는 아우라를 뽐낸다. 물에 떠있는 빙하 조각을 - 아마도 노르웨이 북쪽 어딘가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를 - 형상화했다는 말도 있지만, 그보다 나에게는 미래도시의 피라미드와 같아 보인다. 계단이 아닌 비스듬한 평면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 보면 분명 나는 지평선을 걷고 있다 생각했지만 어느새 하늘 위에 떠있는 공중정원에 올라온 것 같은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자연스레 밑바닥에서부터 건물의 지붕 위까지 한걸음에 올라갈 수 있는 구조 탓이다. 여행을 다니며 인간이 만든 건축물에 크게 감동을 받는 편은 아니지만, 이 오페라 하우스는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방송에서 스치듯 잠깐 보았던 이곳이 내 머릿속에 그토록 오래 남아있었던 것은 특이한 외관과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그 석양을 즐기는 장소가 오페라 하우스 지붕 위라는 점이었다. 왠지 근엄하게 무게를 잔뜩 잡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고결한 예술의 전당이 시민들을 위해 자신의 머리 위를 휴식처로 내어주었다는 매력. 유명한 건물 위에 전망 좋은 공간 하나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특별할 것은 없지만, 어떠한 경계와 배척도 존재하지 않는 구조적 개방성이 주는 자유로움은 마치 북유럽 나라들에 자연스레 묻어있는 자유와 평등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과연 우리나라였다면 이것이 가능했을까? 우리의 고귀하신 높은 자리 분들께서 예술의 1번지가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인 시민들로 뒤덮이는 광경을 허락했을까?




 한참 동안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도 당최 해가 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석양 하나 보기 위해 이렇게 주린 배까지 움켜쥐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문득 아차 싶은 생각이 하나 떠오른다. 맞다, 그랬다. 지금 여기는 백야 기간이었다. 자정이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 곳에서 나는 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 여기서 석양이 웬 말이던가. 백야를 처음 경험해보는 것도 아니고...

 



 결국 오슬로에서 해야 할 가장 멋진 일은 해보지 못했지만, 쓸쓸함으로 시작되었던 이 도시의  첫인상이 개방과 포용의 도시라는 기억으로 마무리된 것은 참 다행이다. 이제 내일이면 이 곳 오슬로를 떠나 진짜 노르웨이 여행의 시작, 이번 프로젝트에서 만나게 될 첫 버킷리스트를 향해 떠난다. 


그러려면 일단 기차역에 들러 '플롬'행 기차표부터 끊어야겠지.





[D+36]  2018.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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