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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부장 Jun 03. 2019

9. 여행이니까 만날 수 있는 재미

one-way ticket project #09 헬싱키


여행에는 분명 의도치 않은 불운도 있고,
예상치 못한 행운도 있게 마련이다.
혹자들은 이것이 
여행이 주는 재미라고 한다.


어제 잠들기 전 분명 다짐했었다. 내일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서둘러 알찬 하루를 보내겠다고. 여기저기 신나게 구경도 다니고, 호젓한 헬싱키의 공원에 앉아 오가는 사람도 구경하고, 블로그에 나오는 맛집들도 찾아가겠다고. 하지만 게으른 인성이 어디 가나... 결국 꾸무적거리다 1시가 가까워서야 나서보지만 날씨조차 도와주지 않는다.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던 어제의 날씨 그대로다. 스스로 만들어버린 어긋난 일정에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침울한 날씨까지 더해져 결국 전날의 들뜸과는 다른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오늘의 여행을 시작한다. 


정거장을 지나치는 실수까지 범하고, 비바람이 부는 거지 같은 날씨를 뚫고 찾아간 <시벨리우스 공원>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북유럽다운 따스한 여유와 행복으로 가득한 한낮의 공원을 상상했지만, 궂은 날씨 탓인지 오가는 사람은 없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헬싱키 관광의 주요 스팟 중 하나인 시벨리우스 기념비는 내가 이 날씨에 겨우 이걸 보겠다고 여기까지 온 건가 싶을 정도로 대가(大家)를 기리는 조형물이라 하기엔 허점이 많고 너무 보잘것없어 보인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날씨 탓에 그래 보였을 수도 있고...).


그래도 애써 찾아온 건데 사진이나 몇 장 찍고 가자 마음먹어보지만 그것조차 만만치가 않다. 이 날씨에 대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단체 관광객을 태운 버스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공원에 쏟아낸다. 그렇게 쏟아져 나온 관광객들은 일제히 조형물 앞으로 몰려가 돌아가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당연히 나를 위한 잠깐의 틈 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비를 맞으며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려 보지만, 한참을 번잡스럽던 관광객들이 떠날 즈음이면 새로운 버스가 새로운 관광객을 또 쏟아내는 무한 반복에 빠져버렸다. 


사람도 빗방울도 잦아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 우연히 옆을 보니 웬 아저씨가 나와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 쪽을 응시하고 있다. 분명 나처럼 온전한 조형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 아저씨... 로드 바이크를 타고 왔다!! 누가 봐도 자전거로 여행 중인 스포츠맨스러운 그의 복장... 이렇게 비가 흩뿌리는 날 말이다. 눈이 마주쳐 버린 우리 둘은 서로 같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너도 기다리는 중?"

"응... 나도 기다리는 중 ㅋㅋ"

"단체 관광객들이란... 쩝..."

"후우... 그러게..."


그렇게 같은 곳을 응시하며 사람들이 빠지기를 기다리던 우리는 곧 배틀 모드로 돌입했다. 과연 누가 빗속의 기다림을 버티지 못하고 먼저 자리를 떠날 것인가. 과연 누가 먼저 포기하게 될 것이며, 누가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앵글에 시벨리우스 기념비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담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그 대결의 패자는 내가 되었다. 점점 강해지는 바람과 굵어지는 빗줄기를 버티지 못하고 대강 사진을 찍은 나는 다시 무언의 표정으로 아저씨에게 나의 패배를 인정하며 먼저 자리를 뜬다.






하지만 자리를 떠난 이후에도 왜인지 분이 풀리지 않은 나는 그칠 줄 모르는 비바람에 더욱 오기가 생겨 공원 옆 바닷가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비바람과의 한판 싸움을 시작한다. 


'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

' 나 오늘은 정말 마음에 드는 하루를 보내려고 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


미친놈처럼 하늘을 째려보고 투덜거리며 바닷가 산책로를 걸어보지만 역시 자연 앞의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분명 초여름임에도 한기까지 느껴지는 날씨 탓에 따뜻한 이불속이 절로 생각난다. 하지만 그때 우연치않게 저 멀리 한줄기 빛처럼 나를 반기는 'Cafe'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우중충한 날씨임에도 까페는 주변 풍경마저 사랑스럽게 보이게 하는 아담함을 뽐내고 있다. 그래... 저기라도 들어가서 몸도 좀 녹이고 커피도 한 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데...


어라!!!! 어디서 많이 본모습이다.

앗!! 혹시 저기가 그 유명하다는 시나몬롤 집!!??

설마!! ㅋㅋㅋ 그럴 리가!! 이런 행운이... ㅋㅋㅋ 



기회가 되면 한 번 가봐야지 했었지만 아무래도 못 들러보고 떠나겠구나 생각했었는데... 한줄기 서광처럼 내 눈에 띈 곳이 바로 그 시나몬롤 집이다. 냉큼 달려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 어느 외딴 시골 마을에 있는, 동화 속에서나 볼법한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까페에 와있는 느낌이다. 조금 전까지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불행하게만 느껴지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한 입 가득 입안으로 들어온 시나몬 번은 캬아!! 역시 이 맛이구나!!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싶은 생각을 혀끝에서부터 절로 느껴지게 만든다. 달콤 쌉싸름하면서도 지나침이 전혀 없는 소박한 맛은 세상을 다 얻은 듯 내 마음을 풍족히 채워준다. 결국 나는 오늘 아침의 바람대로 긴 여행 이후에도 남을 인상 깊은 하루를 선물 받은 것이다


의도한 대로,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여행의 한 장면이라면, 이런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이런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행복을 만나게 되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장면이 아닌가 싶다. 물론 한껏 즐거운 장면 말이다.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시간들 속 여러 우연들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좋은 우연도 나쁜 우연도 기꺼이 품어 안으며 여행의 순간순간을 만끽해야지. 






[D+29] 20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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