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존재에 관하여

by 은서


“지금은 강아지를 키울 때가 아니야.”
“너 자신 하나 챙기기도 벅찬데, 어떻게 생명을 책임질 수 있겠어.”

그 시절, 주변에서 조심스레 건네던 충고들은 하나같이 옳았다.


실제로 나는 내 인생의 균형을 간신히 붙잡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고,
겉으로는 나름대로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다녔지만,
실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흔들리고,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숨이 가빠지고, 마음이 무너져내리기를 반복하던 시간이었다.


내 안의 불안과 공허는 말없이 퍼져 있었고,
나는 그걸 모른 척하거나 애써 눌러놓은 채로,
그저 ‘견디는 중’이라는 말로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아이를 품에 안았다.


처음 내 품에 안겼던 그 순간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작고 하얀 몸, 아직 세상의 냄새에 익숙하지 않은 눈동자,
손바닥보다도 작고, 품에 닿는 체온이 어딘가 조심스러웠던 그 생명은
말 한마디 없이도 내 마음 어딘가 깊은 곳을 건드렸고,
나는 이 아이가 내 삶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 아이를 받아들였다.


이름은 ‘가을’이라고 지었다.
사계절 중 가장 잔잔하고, 가장 내 마음과 닮아 있다고 느꼈던 계절.
모든 것이 천천히 식어가지만 여전히 따뜻한 햇살이 남아 있고,
한 해의 끝자락에서 무언가를 정리하며 다음을 준비하게 만드는 시간.


나는 그 계절의 이름을 이 작은 생명에게 건넸고,
그 이름은 하루하루를 함께 살아내는 동안
어느새 나를 부르는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입양을 결정하기까지 나는 망설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철저히 준비하려 했다.


『개는 훌륭하다』라는 프로그램을 백 번이 넘도록 반복해서 정주행했고,
밤마다 강형욱의 영상을 틀어놓고,
노트를 펴서 중요한 포인트를 정리해가며
진심으로 공부하듯 강아지에 대해 배웠다.


어떻게 하면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불안하지 않은 개를 키울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취약함이 이 아이에게 전이되지 않게 하려면
나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그 질문을 매일 가슴에 품은 채
나는 한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가을이는 내게 왔고,
나는 그날부터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방식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지를
날마다 실감하게 되었다.


가을이는 아침이면 내 팔 옆에 몸을 말고 누운 채
내가 눈을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조용한 눈빛으로 “일어났어?” 하고 말을 건넨다.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괜찮아질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안도감이 피어오른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으면,
화장대 옆에 앉아 내가 다시 외출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아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력질주로 달려와
작은 몸으로 기쁨을 가득 표현하며
내가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사람이라는 듯
온 마음으로 나를 맞아준다.


그 아이에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다.


산책을 나가면,
가을이는 가끔 길 한가운데서 멈춰 서서는
어떤 한 장소의 냄새를 아주 오랫동안 반복해서 맡곤 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곁에서 그저 가만히 서 있게 되고,
처음에는 조급했던 그 시간이
어느 순간부터는 내게도 익숙한 일상의 리듬이 되었다.


빨리 걸을 필요도,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도 없는 그 시간 동안
나는 길가의 풀꽃을 보고,
비가 온 뒤 젖은 땅의 냄새를 맡고,
햇살 속에 부유하는 먼지를 바라보며
‘천천히 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가을이를 데리고 걷는 그 길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지금 가장 안정된 리듬을 만들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밤이 되면, 우리는 같은 침대에 눕는다.
가을이는 내 겨드랑이 근처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작고 규칙적인 숨을 쉬며,
그 따뜻한 체온으로 하루의 끝을 함께 마무리한다.


한때는 가위에 눌리며 뒤척이던 깊은 밤들도,
가을이가 곁에 와서 자리를 함께하게 된 이후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사라졌다.


가끔은 생각한다.
어쩌면 이 작은 존재는
주인이 되어야 했던 나를
오히려 키워주고, 지켜주고,
살아가게 만들어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날에도
그 아이는 변함없이 나를 바라보아 주었고,
내가 힘겨워 말을 잃고 있을 때조차
그저 곁에 있어주는 방식으로
내 삶에 무게중심을 잡아주었다.


우울한 어느 날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말없이 울고 있던 나에게
가을이가 조용히 다가와 앞발로 내 무릎을 툭 건드리던 순간을
나는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대신,
바라보는 눈빛으로, 그리고 존재로
‘괜찮아’라고 전해주던 그 위로는
어떤 말보다 더 크게, 더 깊게,
내 안에 울림을 남겼다.


물론 이별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릿하게 젖는다.
언젠가는 이 작은 존재와 작별해야 할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미 닿지도 않은 슬픔이 밀려오곤 하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더더욱
이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아끼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지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 순간,
그 아이의 눈을 바라볼 수 있는 오늘,
그리고 그 작고 힘찬 꼬리가 나를 향해 건강하게 흔들리는
바로 이 시간을 나는 결코 가볍게 지나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해”라는 말을 건넨다.
가을이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표정과 몸짓, 그리고 그 눈빛 하나로
언제나 이렇게 답해준다.


“나도.”

누구도 나를 안아주지 못했던 시절,
이 작은 아이는 조용히 내 마음을 안아주었고,
말로 다 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지금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고,
네가 내 삶에 들어와 줘서 참 다행이라고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게 말을 걸었다.


가을이를 키우며 나는 처음으로
매일 누군가에게 밥을 주고,
매일 산책을 나가고,
매일 “예쁘다”고 말하는 그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내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워갔다.


그 누구도 나를 웃게 하지 못하던 날들 속에서
가을이는 날마다 웃었고,
그 웃음은 어느 순간 나에게로 번졌다.


그게 참,
살게 했고,
살고 싶게 했다.


그녀가 웃으면,
오늘도 나는 괜찮아진다.

작가의 이전글마흔살의, 마음 한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