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왔다. 이번 주 안으로 과제와 수업 정리만 끝내면 본격적인 방학이 시작된다. 아직 시험이 두 번 남아 있지만, 큰 무리 없이 조용히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다소 희미하지만 확실한 예감이 든다. 조금 버겁고 휘청거리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시기다. 가능한 한 집중해서, 후회 없이 치르고 싶다.
요즘 나는 직장생활과 박사과정을 병행하고 있다. 낮에는 미친듯이 업무를 하고 퇴근 후에는 수업을 듣고, 과제를 마무리하거나 강의록을 정리하는 식이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감정과 집중력의 분배가 더 힘들게 느껴진다. 그래도 그 와중에 버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에게 다행이라 말하고 싶어진다.
오늘은 잠깐 틈이 나서, 30대 초반쯤 썼던 블로그 글 하나를 다시 열어보게 되었다. 시험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 딴짓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눈이 멈췄다. 그 시절의 나는 참 많은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연애 문제, 이직에 대한 불안, 대인관계 속 복잡한 감정들, 늘 반복되던 다이어트 결심과 실패, 그리고 어떻게든 이어가려 했던 영어 공부까지. 지금 보면 사소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땐 그 모든 것이 전부였고,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붙들고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했을까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내가 여전히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감정의 결은 바뀌었고 표현 방식도 성숙해졌지만, 결국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약간은 허탈했고, 조금은 우스웠다. “10년이 지났는데도 뭐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게 없네.” 그렇게 스스로를 자조하며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간 속에서 내가 가장 잘한 선택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단연 박사과정을 시작한 일이라고 답할 것이다. 삶이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 같고, 정체된 기분에 자주 눌리던 시기, 학업은 그런 나를 앞으로 끌어내는 드문 동력이 되어주었다. 배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안의 생이 조금은 살아 있다고 느껴졌고, 더딜지라도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박사과정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내 삶에서 유일하게 명확한 '레버리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무언가를 배우고 있을 때, 특히 학문이라는 구조 안에서 시간을 보낼 때 가장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던 것 같다. 생각이 너무 많을 때는 글로 정리하며 마음을 비웠고, 불안이 올라올 때는 책상 앞에 앉아 논문을 읽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 기억들이 지금 나를 떠받쳐주는 최소한의 근거가 된다.
2025년, 나는 곧 마흔이 된다. 그리고 지금, 문득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게 된다. 내가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깊이 좋아했던 게 도대체 언제였는지를. 아마 20대 초반 이후로, 그렇게까지 마음을 기울였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없었다.
물론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는 지금 이 감정들도 지나가는 에피소드처럼 느껴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은 꽤나 또렷하고 무겁다. 그래서인지 자꾸 그 사람이 떠오른다. 호감이 있다고 에둘러 표현하기보다는, 나는 그에게 분명히 끌리고 있다. 이 감정이 업무와 학업에 치이는 와중에 불쑥불쑥 올라오는 것 자체가 스스로도 우습게 느껴진다. 시험 며칠 앞두고 책상 앞에 앉아야 할 시간에, 결국 블로그 창을 먼저 열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감정이 공부보다 먼저 고개를 들었다.
물론 알고 있다. 그가 나에게 같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처음 만났을 때 어느 정도 마음을 열어주었던 것 같기도 했지만, 정말로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내가 솔로였을 때 그렇게 빠르게 다른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진 않았겠지. 나를 친구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건, 그가 했던 몇몇 말과 행동에서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 “내가 너랑 왜 사귀냐”는 식의 장난 섞인 말들이 그 증거였다. 적어두고 보니, 그는 아주 단단하게 선을 긋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아직도 그에게 마음이 남아 있는 걸까. 차라리 그가 조금만 나쁜 사람이었다면, 마음을 접는 일이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유독 무심하게 대했던 것만이 기억에 남아 있다. 상처라고 부르기엔 너무 사소하고, 일방적인 감정이라 말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마음. 어쨌든 이건 결국 내 감정일 뿐이다. 그저 나는 그에게 끌렸고, 그 감정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내 안에 남아 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지금처럼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시점에, 내 마음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원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전의 나처럼 감정에 밀려 무모하게 고백하거나 들이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감정 표현은 오히려 그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고, 나조차도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평소에 전혀 그런 감정을 보이지 않았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사실은 너에게 마음이 있었어”라고 말한다면, 그건 그의 입장에서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젊고 가벼운 사람이 아니다. 마흔 즈음의 내가 꺼내는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상대가 느낄 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감정을 조용히, 천천히 내려놓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이 감정도 조금은 옅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가 다른 연애를 시작하게 되거나, 다시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한 발 물러설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가끔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마흔의 마음은 어떻게 접는 걸까. 이 나이의 호감, 이 나이의 미련은 왜 이렇게도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남아 있는 걸까. 오늘은 공부를 하려고 앉았다가, 문득 이런 생각들이 줄줄이 떠올랐고, 결국 시험공부는 뒤로 미룬 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언젠가는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웃게 되겠지. “그땐 진짜 바보처럼 진지했었구나” 하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내겐 이 감정들이 꽤나 크고 또렷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조용한 마음 하나를,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 허락된, 가장 솔직하고 현실적인 감정 정리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