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제 Dec 06. 2022

하인리히 법칙

안 좋은 몸에는 안 좋은 질병이 깃든다

출처 : https://kangsunseng.tistory.com/316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지금, 내 혈당은 53을 기록하고 있다. 급하게 혈당을 높이는 약을 입에 물리고 있다. 버터링 하나와 자유시간 하나 그리고 청포도 사탕 하나다. 방금 라면을 먹으면서 인슐린을 너무 많이 맞았나보다. 어디부터 써보려고 했더라. 우선 내가 당뇨병이라는 걸 알게 된 첫 날을 서술해보자.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안 좋았다. 정확히 기억에 나진 않지만, 어려서부터 몇차례 쓰러진 적이 있다고 한다. 그것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수차례 병원을 들락나락 거리곤 했단다. 그때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기이니 대략 5살 이전, 2005년 이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치원에 들어가고 학교에 들어선 이후엔 딱히 잔병치레를 하진 않았다. 다만 신장 계통 장기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상했던 증세는 지금 질병을 만들기 전 복선이라고 생각해야 될 것 같다. 학교에서 소변 검사를 할 때면 늘 내 키트는 다른 색깔로 변하곤 했다. 초등학교 때 있었던 요단백은 중학교 때도 계속됐고, 고등학교 때도 항상 보건소 선생님께 불러나가곤 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요단백에 대해 크게 신경쓰진 않았다. 요단백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긴 했지만 심각한 질병도 아니었고, 앓고 있는 사람도 많은 흔하디 흔한 질병이었다. 대학병원에 들락날락하며 소변을 채취하기도 했지만, 크게 신경쓰진 않았다. 


이 시기 나의 행동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따위와 같은 문장들로 정리된다. 그리고 그건 이상한 행동이 아니었다. 걱정이 아예 없던 건 아니지만, 세계 어딜가도 요단백으로 사람이 죽은 사례는 거의 볼 수 없었다. 뉴스 헤드라인 기사 어딜봐도 "요단백으로 10대 청소년 사망..." 이런 헤드라인은 볼 수 없었으니, 내가 가지고 있던 병에 대해 거의 걱정하지 않았다. 신장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걱정월드컵은 무신경, 무상관, 무관심 3무로 승점 3점 조별리그 탈락 그 자체였다. 


나는 극히 마르고 길쭉한 체형의 고등학생이었다. 중학교 때는 별명이 소금쟁이였던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2~3학년 당시 나는 182cm에 65kg 정도를 유지하고 있던 나는 건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서자 음식에 있는 영양성분표를 보기 시작했다. '당류'를 중요시하게 생각했고, 대충 권장섭취량이 100g 정도니 50g 이하로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디 건강정보 프로그램을 본 것도 아닌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야자 시간 직전. 4시간 30분을 버틸 간식을 사기 위해서도 신중을 가했다. 콜라는 제로 콜라로 바꿨고, 상대적으로 당류가 적은 음식을 찾아 사먹었다.  그럭저럭 괜찮게 관리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글을 읽고 있다면, 최소한 당뇨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라면 뭔가 싶어서 뒤로가기를 눌러보고 싶을 거다. 여기서부터 당뇨 이야기로 넘어갈 테니까 일단 봐둬라.


그러던 중 처음으로 혈당을 재보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학 전 병역판정검사를 할 때, 처음으로 내 혈당을 확인했다. 나는 병역판정검사지를 그렇게 자세하게 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기준치에서 벗어난 수치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침을 굶고 간 내 공복혈당은 126이었다. 아주 높다고 할 순 없지만 정상치에서 다소 벗어난 수치였다. 무조건적으로 낙관할 순 없는, 당뇨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당뇨는 아닌 애매하고도 뭐라 말하기 이상한 수치였다. 일단 동네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병원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혈당이 약간 높았다고 말하니 피를 뽑았다. 그때 당시엔 의사의 설명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무슨 수치를 잰다곤 했는데, 그게 뭔지 정확하게 듣진 못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수치는 '당화혈색소'였다. 


내 당화혈색소는 5.5였다. 5.6부터는 당뇨 전단계인데, 아슬아슬하게 정상에 든 셈이었다. 수치가 정상이니 당뇨도 아니고 의사도 괜찮다하니 우선 안심하고 집에 돌아갔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1 : 29 : 300으로 대표되는 이 법칙은 1건의 대형사고가 발생하기전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발생하고, 그 이전 300건의 사소한 위험이 있다는 내용이다. 어떤 거대한 사고가 벌어지기 전까진 그 사고를 알리는 미세한 징후가 발생한다. 그리고 몸은 정직하다. 기특하게도 주인에게 어떤 일이 있다는 걸 꾸준히 알려주곤 한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당뇨는 나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만 19세, 이제 막 술을 구매할 수 있게 됐을 때 생긴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선 이 글을 왜 쓰게 됐냐면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