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제 Dec 08. 2022

1형 당뇨가 뭐야? 대단한 질병이지

그러니까 이런 걸 자문자답이라고 하죠

당화혈색소 검사를 진행한 후 2년이 지났다. 2년은 당뇨와 상관없는 시간이었고, 우리 모두 당뇨가 아닌 다른 역병과 싸운 시기였다. 당뇨와 관련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패스한다. 대략 2021년 말, 이상하게도 살이 빠지고 있었다. 62kg을 전후로 움직이던 살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50kg 대라는, 중학교 3학년 이후 접근한 적 없던 마의 영역을 뚫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체조건만 보면 남자 아이돌 멤버 한 명이 탄생한 셈이다. 살이 빠졌지만 기운이 사라졌다거나 얼굴이 수척해지는 등의 변화는 없었다. 그래서 더 의문스러웠다. 평소와 비교했을 때 먹는 양이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원래 살이 잘 안 찌는 스타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살이 잘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을 찌워야겠다고 생각하며 단 음식을 입에 더 대기 시작했다. 원래 제로콜라를 먹었지만 증량을 위해 일반 콜라를 먹기 시작했고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최대한 늘렸다. 질병의 신이 있다면 이 순간을 보며 병신이라고 놀릴 것이다.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몸무게는 56kg까지 떨어졌다. 이제 몸 어딘가 한곳에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확실히 왔다. 그런데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건강검진을 하게 해달라고 말했지만, 그냥 소리소문 없이 묻혔다. 그렇게 강력하게 요청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은 흐르고 흘러 학교는 종강하고 12월 말이 됐다. 나는 다음해 군대에 입대할 예정이었고 이미 공군 면접까지 마친 후였다. 미친듯한 헌혈로 포인트를 꽤 쌓아놓았기 때문에 입대는 기정사실화 됐다. 당장 10월 중순까지 헌혈을 해가며 입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강제로 끌려가는 입장에 이렇게 점수까지 쌓아가며 조금 현타가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는 걸어서 8분 거리, 뛰면 4분에 주파가 가능한 병원촌이 있다. 3층엔 이비인후과가 있고, 2층엔 내과가 있다. 나는 이 병원 3층에 있는 이비인후과에서 12월 31일 백신을 맞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12월 30일 2층에 있는 내과로 가서 당화혈색소 검사를 받았다. 과거 신체검사 당시 당수치가 다소 높았던 전력이 있었기에 당뇨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있었고, 살이 빠지거나 목이 심하게 마르는 등 전조증상도 일치했다. 당시 나는 하마였다. 물을 마실 때마다 정수기에서 최소 2컵씩 챙겨마셨다, 물을 마시고 마셔도 목에서 타는 느낌이 계속됐다. 당화혈색소 검사는 하루면 나오기 때문에, 백신을 맞으면서 아래층에 있는 내과에서 검사지를 받아간다는 계획을 짜고 검사를 받았다. 한번 나갈 때 한번에 모든 걸 해결하려는 I의 특징이 드러나는 선택이었다.


병원에 가기 전날엔 공군 합격 결과가 나왔다. 합격이었다. 항상 계획에 맞춰 살아가는 J형답게 입대라는 계획이 맞게 떨어지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병원에 갔다. 공복혈당 296이 나왔다. 사람은 순간적으로 믿을 수 없는 숫자를 보면 머리가 굳고, 부정하는 감정이 나온다. 독일이 브라질을 7대1로 이긴 날, 아침에 일어난 나는 스코어를 보고 7이라는 숫자가 잘못 표기된 줄 알았다. 혈당수치를 본 나는 당시 관중석에 있던 브라질 관중마냥 당황했다. 별 표정없이 혈당을 재시던 의사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나는 넌지시 당뇨가 맞는지 여쭤봤다. 의사분은 10분 만에 브라질에게 2골을 먹힌 후 옆에 있던 사람에게 "이길 수 있을까요...?"라고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당연히 당뇨다. 아니, 아주 심각한 당뇨다.


의사분은 조심스럽게 여기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대학병원으로 가야한다고 말하셨다. 동시에 1형 당뇨와 2형 당뇨가 있는데 1형 당뇨일 확률이 높아보인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시 나는 1형과 2형 중 어떤 질병이 더 좋지 않은지 알지 못했다. 잠시 뒤 나무위키를 보고 나서야 당뇨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당시 당뇨에 대한 나의 지식은 건강정보채널에 등장하는 패널 1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우겨잡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몸이 건강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으니 최대한 건강해 보이는 음식을 먹으려고 생각했다. 동시에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진정시켜줄 음식을 찾았다. 나는 근처 평소에 자주 먹던 일식집에 방문해 초밥을 먹었다. 미친 짓의 연속이다. 지금 병의 신은 웃고 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이 당시에도 당뇨가 어떤 질병인지 자세히 몰랐다. 단 음식만 먹지 않으면 되는 질병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저녁. 부모님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말했고, 분위기는 심각했다. 저녁으로는 밥과 잡채, 나물 반찬 등을 반찬가게에서 배달로 주문해 먹었다. 부모님은 내가 먹고 싶은 걸로 먹자고 말하셨고 당시 나는 최대한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었기에 반찬가게에서 나물을 비롯한 반찬을 주문해 먹으려고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초밥과 잡채 모두 당뇨인들에겐 해악과도 같은 음식들이었다. 물론 어차피 망가진 몸 상태였으니 더 나빠져봤자긴 했다. 이봉원의 빚이 30억이나 30억 50만원이나 거기서 거기인만큼, 당시 내 몸도 그 두 끼로 망가져봤자 얼마나 망가졌겠나. 기껏해야 당화혈색소가 12.6에서 12.61이 된 정도?

매거진의 이전글 하인리히 법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