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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쓰 Eath Aug 30. 2020

쥐를 고문해서 알게된 게 고작 뭐라고?

흰머리가 생기는 과학적인 이유

우리 아빠는 흰머리가 많았다. 

덕분에 용돈벌이가 아주 쏠쏠했다. 내가 더 어리고, 아빠가 더 젊던 시절에는 개당 시세가 100원도 했다. 그러던 것이 점차 개당 50원, 10원으로 단가가 떨어졌지만 아빠의 흰머리는 점점 늘었기에 여전히 벌이가 넉넉했다. 흰머리만 섬세하게 뽑아내기에는 동생이 너무 어렸던 덕분에 아빠의 흰머리 뽑기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눈썹께 길이의 아빠의 머리칼은 적당히 굵고 너무 미끈거리지도 않아서 잡아 뽑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장판 위에 수북하게 쌓이던 하얀 머리카락을 보며 용돈을 받을 생각에 난 늘 신이 났다. 아빤 어땠을까. 귀여운 딸내미가 보여주던 마냥 즐거워하던 웃음이 좋았을까, 세 식구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 머리가 점점 세던 자신이 서글펐을까. 


내 모질은 아빠를 닮았다. 

적당히 굵고 미끈거리지 않는 머리털. 그리고 삼십 대에 들어서자 바로 흰머리들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달포에 한 번씩 염색을 하지 않으면 보기가 흉한 지경이다. 내가 쭈쭈바 사 먹겠다고 아빠 흰머리를 뽑던 그때의 아빠 나이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흰머리를 뽑아줄 자식도 없으니 내 흰머리들은 난대로 그 자리에서 그렇게 자라난다. 정말 보기가 싫다. 단정한 용모에 그토록 신경 쓰던 내 아빠는 아마 당신의 흰머리를 보며 덧없이 늙어가는 자신을 보지 않았을까, 이제사 그리 생각해 본다.


늙어간다는 건 서러운 일이다. 세상에서 소외되어갈 내 차례를 기다리는 것 같다. 나는 사회적 노화보다 몸의 노화가 먼저 왔다. 여즉 사회생활을 하고는 있고, 날 찾아주는 사회적 인맥들이 있지만 몸은 이미 중년이 될 준비를 한다. 귀밑과 관자놀이 즈음에서 하나 둘 나기 시작하던 흰머리는 이제 이마라인을 따라서 또렷하게 존재를 드러낸다. 이리저리 가르마를 바꾸면 가려지긴 하던 것이, 이제는 짤 없다. 몸의 노화를 알리는 건 누가 뭐래도 흰머리와 얼굴의 주름이 아닐까 싶다. 이놈의 흰머리는 왜 생기는 걸까. 처음에 까닭이 있어서 까맣게 자라는 털이 아니었겠나. 그런데 왜 하얗게 세어가는 걸까. 흰머리가 싫은 건 나만이 아니고, 다들 왜 털이 희어지는지 궁금했나 보다. 


털이 희어지는 이유에 대한 논문이 2020년 1월, 무려 네이처지에 발표됐다. 그렇다. 흰머리가 생기는 건 그만치 중요한 일이다. 저자들이 대부분 중국인이라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논문은 다 읽어봤다. 이 하버드 연구진들은 노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머리가 세어가는 것이 아닌,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흰머리에 대해서 조사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감옥에 갇혀 단두대로 끌려가기 전날, 공포와 충격으로 머리가 하루 만에 새하얗게 다 세어버렸다는 일화에서 나온 얘기다. 구글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을 검색하면 비슷한 사례에 대한 유명인의 일화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필경 스트레스가 머리가 세는 것과 관련이 있으리라 사람들은 오랜 시간 그리 믿어왔다. 


논문의 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가장 처음 검증한 것은 ‘진짜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가 세나’였다. 어김없이 가여운 설치류들이 희생되었다. 쥐들은 각각 다른 스트레스를 받았다. 현재까지 알려진바, 세상에서 가장 매운 물질은 ‘레시니페라톡신’이다. 백각기린이라고 하는 선인장에서 추출한 물질인데, 스코빌지수가 160억으로 캡사이신의 1000배 매운 물질이다. 나는 한때 이 물질로 화장품 원료를 개발해달라는 작자를 만난 적이 있다. 발상의 독특함만은 치하하지만, ‘톡신’이라고 이름 붙은 물질은 애초에 화장품 원료로 사용될 수 없음을 간과한 아주 초보적인 발상이었다. 레시니페라톡신 얘기를 왜 하냐면, 이 지독 하디 지독한 물질을 쥐에게 주사했다. 스트레스를 주기 위해. 논문을 읽는데 소름이 끼쳤다. 요리를 한다고 청양고추를 좀 많이 만졌다가 손이 매워서 꽤나 고생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레시니페라톡신을 주사했다니. 끔찍한 고통에 까맣던 쥐는 정말로 등의 털이 하얗게 새어버렸다. 쥐들이 그야말로 끔찍한 고통에 ‘하얗게’ 질려버린 뒤에 저자들은 ‘스트레스는 정말로 털을 하얗게 만든다’고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논문도 하나의 스토리를 가진다. 논문이 네이처지 쯤에 발표가 되면 그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아주 완벽해진다. 실상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오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최종적으로 논문으로 쓰이는 이야기는 그 발단과 전개, 기승전결이 완벽하다. 이 논문도 그렇게 흘러간다. 저자들은 다음으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조사했고, ‘노르아드레날린’이 그 물질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음은 이 노르아드레날린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알아봤다. 노르아드레날린은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생기는데 하나는 아드레날 글란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감신경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여운 쥐들이 또 희생당했다. 희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쥐들은 얻는 게 전혀 없는데 말이다. 쥐의 배를 따고, 아드레날 글란드를 절제해버렸다. 한술 더 떠서 이 쥐는 스트레스를 받기 위해 레시니페라톡신마저 맞았다. 털이 하얗게 세어버렸고, 사람들은 ‘아, 아드레날 글란드가 아니었구나’ 했을 뿐이다. 교감신경계의 활성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한 쥐는 레시니페라톡신을 맞아도 털이 희어지지 않았으므로, ‘교감신경계를 통한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가 스트레스로 인한 털의 희어짐의 원인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털이 셀 때, 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우리 몸에서 피부와 털을 까맣게 보이게 만드는 것은 멜라닌 색소다. 보통은 자외선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멜라닌 세포라고 부르는 멜라닌 색소를 만드는 특화된 세포에서 만들어진다. 멜라닌 세포도 다른 세포들과 동일하게 멜라닌 줄기세포가 분화해서 만들어진다. 멜라닌 줄기세포는 모근구라고 부르는 모발 뿌리 쪽의 조직에 모여있다. 줄기세포가 모근구에 모였다가 분화하면 모발 뿌리로 내려가서 새로이 자라 나오는 머리에 멜라닌 색소를 줘서 머리를 검게 만드는 것이다.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멜라닌 줄기세포가 사라지고, 멜라닌 세포도 사라지니 머리는 하얗게 센다.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에서 이 멜라닌 색소가 어떻게 되는 걸까. 어김없이 가여운 쥐들이 또 레시니페라톡신을 맞았다. 멜라닌 색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멜라닌 세포도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멜라닌 줄기세포였다. 쥐들이 스트레스를 받자 이 멜라닌 줄기세포들이 순식간에 멜라닌 세포로 분화해버린 것이다. 원래는 줄기세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며 조금씩 분화를 해서 아래로 내려가야 되는데, 스트레스 상황에서 순식간에 몽창 분화를 해버리며 일부는 피부의 진피와 표피층으로 이동해버리고, 일부는 모발 뿌리로 가버리고, 그렇게 닷새 후에 쥐는 흰 털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 몇 가지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서 관찰한 내용이 검증되었다. 전사체 분석을 통해서 세포 주기와 분화에 관련된 인자들이 과발현 되는 것이 확인되었고, 세포 분화를 억제하는 처리를 하자 쥐는 레시니페라톡신을 맞아도 검은 털이 자랐다. 저자들은 교감신경이 흥분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털이 세는 것을, 야생의 위기 상황에서 적의 눈에 덜 띄는 밝은 색 털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을 제시하며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두족류의 피부색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이것 역시 흥미로운 소재라 다음 글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흰머리가 지긋지긋해서, 약간의 아빠와의 추억에 잠겨 찾아본 논문은 의외로 재미있게 잘 쓰여 있었지만, 읽는 내내 쥐들이 생각나서 고통스러웠다. 나는 식물을 전공했기 때문에 실제로 쥐를 만져보거나 접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들어본 적도 없는 쥐의 비명이 상상 속에서 더욱 끔찍하고 날카로웠다. 청양 고추청을 담겠다고 고추 한 봉지를 다 썰었던 날, 화상을 입은 것처럼 왼손 손가락들이 화끈거려서 이틀은 고통스러웠다. 인간이 지적 호기심을 가지는 일이 위대하다 하는데, 그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 이렇게 야만적이고 착취적일 수밖에 없을까. 화장품 단상자의 ‘동물실험하지 않음’이라는 문구가 달리 보인다. 동물 실험이 너무도 당연하던 어떤 시절에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주장했던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위대함이 감사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제는 아무도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데, 자기들은 동물 실험을 하지 않았다며 그걸 내세워 홍보하는 화장품 브랜드들은 여전히 우습지만 말이다. 참고로, 국내 화장품에 대한 동물실험 금지법은 2015년에 통과되었다. 동물 실험을 하지 않았다고 광고하는 화장품들은 전혀 대단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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