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의 위대한 수호자, 각질을 위한 변호
아무 약속도, 계획도 없는 한가한 주말이었다. 세수를 하고 대충 수건으로 물기만 닦고 거실로 나갔다. 난방을 틀지 않은 11월 초의 거실은 제법 쌀쌀했다. 체온을 나눌 요량으로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던 남편에게 다가갔다. 꼭 붙어 앉아서 팔짱을 끼고 올려다보는데 날 보던 남편이 빵 터졌다. 얼굴이 그게 뭐냐, 밀가루라도 먹었냐면서 웃음을 멈추지를 못한다. 무슨 말인가 해서 거울을 보고 식겁했다. 입가를 따라 하얀 각질이 수염처럼 동그랗게 올라와 있었다. 아오 쪽팔려. 후다닥 욕실로 뛰어 들어가서 토너로 닦고 보습 크림을 발랐다.
이런 일도 종종 있다. 기모 청바지를 입고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바지를 벗는데 뭐가 날렸다. 정강이 쪽에서 각질이 일어난 것이다. 바지에도 허옇게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스타킹이라도 신는 날에는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끈적이는 게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바디로션을 발라줘야 한다. 나가기 전에 샤워도 잘했는데, 이 놈의 각질은 때처럼 허옇게 여기저기 날려서 날 지저분한 사람으로 만든다. 너무 억울하다. 이 지긋지긋한 각질, 도대체 왜 자꾸 생겨나서 날 괴롭히는 걸까.
세상에 이유 없는 존재는 없다는데, 각질도 그렇지 않을까. 내 심장이 끊임없이 피를 뿜어내는 것처럼, 내 몸이 끊임없이 각질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참고 삼아 논문을 몇 편 찾아봤다.
각질은 우리 피부 표면에서 끊임없이 생겨나고 떨어진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하루 평균 1g 이상의 각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각질은 각질형성세포로부터 만들어진다. 피부 표피층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각질형성세포는 분화되면서 점차 표면으로 올라온다. 표피층은 크게 깊은 곳에서부터 위쪽으로 기저층, 과립층, 각질층이라고 분류한다. 이중 가장 바깥, 가장 위쪽, 각질층에 우리 눈에 보이는, 없애고 싶은 각질이 위치한다. 표피를 구성하는 각질형성세포들이 점차 분화해서 자라 올라오다가 늙어 죽은 시체가 각질이다. 죽은 세포라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 얇은 비늘 같은 이 죽은 세포 조각들이 촘촘히, 그리고 단단히 엮여서 우리 피부의 가장 유연하고 견고한 보호막을 만들어 낸다.
각질들은 서로 단단히 붙어 있어야 한다. 당연하다. 쉽게 떨어져 버린다면 어떻게 보호막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겠나. 각질 조각들이 단단히 붙어있는 까닭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이 있었다. 한때는 brick-mortar 모델이 유명했다. 세포 밖의 지질들이 피부 장벽 사이사이를 메꿔 보호막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각질과 세포들을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1991년 Chapman이라는 과학자가 ‘Lipids, proteins and corneocyte adhesion’이라는 논문을 통해서 각질을 붙잡아 두는 것이 지질이 아니라 코니오데스모좀 corneodesmosome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단백질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 논문에서 Chapman은 도대체 각질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후보는 세 가지, 세포 바깥의 지질, 코니오데스모좀, 그리고 세포 지질막이었다. 먼저 세포 밖의 지질을 제거했다. Brick-mortar 모델이 맞다면 각질들은 떨어져 나가야 한다. 그러나 각질들은 더 많이 달라붙었다. 실험 결과 각질들이 서로 잘 고정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특별한 단백질인 코니오데스모좀이었다. 이 단백질은 세포 안팎으로 앵커처럼 연결되어 있으면서 과립층의 각질세포와 각질들을 연결한다. 따라서, 이 단백질이 없어지거나 끊어지면 각질들이 떨어져 나간다.
코니오데스모좀, 이름이 어려우니 각질 단백질이라고 하자. 물론 정확한 명칭은 아니지만, 우리가 시험 치자고 이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저 겨울만 되면 날 괴롭히는 각질의 정체를 좀 더 알고 싶을 따름이다. 각질 단백질의 분해는 각질의 분리와 직결된다. 우리 몸에는 단백질을 분해해주는 효소들이 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소화 효소들 중 위장에서 고기를 소화시키는 데에 필요한 펩신이 단백질 분해효소의 일종이다. 이외에도 단백질 분해 효소는 무지하게 많다. 우리 피부 표피의 각질형성세포에서도 각질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만들어진다. Serine protease라고 부르는 효소들이다. 각질형성세포에서 만들어진 효소가 과립층에 다다르면 각질 단백질을 자르고, 각질은 떨어져 나가게 된다. 이것은 우리 몸에서 각질의 생성과 제거 조절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방법이다. 역시나 우리가 원치 않게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황색 포도상구균에 감염되었을 때다. 이 세균은 V8이라는 단백질 분해 효소를 분비하는데 이것이 각질 단백질을 잘라버린다. 각질층은 와해되고 피부는 보호막을 잃고 외부 균의 침입에 속수무책이 된다. 실제로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의 경우 피부가 이 균에 감염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대로 각질의 탈락을 억제하는 기작은 없을까. 있다. 우리 몸은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고 중도를 가고자 한다. 이걸 과학에서는 항상성 homeostasis라고 한다. 각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방법은 각질 단백질 분해 효소의 작용을 방해하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Serine protease 분해 효소의 억제자가 등장한다. LEKTI (lympho-epithelial Kazaltype-related inhibitor)라는 다소 복잡한 이름의 단백질이 분해 효소에 들러붙어서 제 구실을 못하게 막는다. 단백질 분해 효소와 LEKTI 간의 결합에 대해서 피부의 산성도와 관련된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표피 깊숙한 곳의 기저층에서는 피부가 중성의 산성도를 띄어서 LEKTI가 분해 효소와 잘 결합해서 활성을 억제하고 있다가, 각질이 떨어져 나가야 하는 과립층 위에서는 피부가 약산성을 띄며 LEKTI가 분해효소에서 분리가 되고 자유로워진 분해 효소는 각질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각질형성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해서 위로 올라오고, 죽어서 각질이 되어 쌓인다. 우리 피부의 든든한 보호막을 만들기 위해 각질 단백질들이 이 죽은 세포 조각들을 서로 이어 붙여서 각질층을 만든다. 계속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각질은 먼저 있던 가장 바깥의 각질들을 밀어낸다. 단백질 분해 효소가 각질 단백질을 잘라내서 각질들이 떨어져 나가게 한다. 각질은 바깥쪽에서부터 떨어져 나가야 한다. 피부는 깊이에 따라 다른 산성도를 가짐으로써 각질의 탈락을 조절한다. 매일, 지금 이 순간에도, 각질을 만들고, 쌓고, 떼어내고, 방해하는 이 복잡한 일들이 우리 피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여전히 궁금하다. 각질이 정말 그렇게까지 중요할까. 과도하게 각질을 제거하고 나면 피부가 따갑고 예민해지긴 한다. 그러나 며칠쯤 지나면 회복하지 않던가. 각질이 아예 생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또는 각질이 생기는데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각질 조절에 문제가 생긴 유전병이 있다. ‘할리퀸 어린선’이라는 이름의 유전병이다.
어린선의 어린은 물고기의 비늘이라는 뜻이다. 심하고 덜한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비교적 경증의 환자의 경우 피부가 물고기 비늘 또는 뱀 비늘처럼 갈라져 있다. 소보로빵의 크랙처럼 보이기도 한다. 병의 정도가 심한 경우, 마치 피부 전체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고 부풀어 보인다. 표피의 각질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단히 슬픈 이야기지만 이 병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는 많은 경우 오래 생존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체온 조절이 되지 않으며 세균 감염에 취약하고 엄청난 수분 손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요즘 즐겨 보고 있는 드라마 ‘산후조리원’ 이전에 ‘산부인과’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나는 어린선을 이 드라마에서 처음 접했다.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둘 중 한 명이 어린선이었다. 극 중에서 이 아기도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때는 피부에 관심 없던 2년 차 대학원생이어서 크게 흥미를 갖진 않았지만 처음 접했던 병의 증상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여태껏 잊지 못하고 있다.
할리퀸 어린선은 ABCA12라는 유전자에 문제가 생겨서 일어난다. ABCA12는 ABC 수송체라는 단백질의 일종이다. ‘수송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우리 세포의 택배 기사 역할한다. 세포막에서 이런저런 물질들을 안팎으로 배송한다. ABCA12가 나르는 물질은 피부 보호막의 필수 지질 성분인 세라마이드다. 정확히는 epidermoside라고 하는 당이 붙은 일종의 세라마이드다. ABCA12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택배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게 되고 결국 피부에 세라마이드가 공급되지 않는다. 그 결과 어린선의 다양한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어릴 적 나는 만화를 보고 따라 하기 좋아하는 엉뚱하고 호기심은 많지만 상식은 좀 부족한 아이였다. 한 번은 만화를 보고 따라 한답시고 거친 사포로 오른쪽 볼을 마구 비빈 적이 있다. 세상에 얼마나 아프던지. 엉망이 된 얼굴로 한동안 다녔는데 어른들이 이유를 듣고 상당히 황당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단 며칠간 겪었던 그 화끈하고 얼얼한 감각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어린선을 가지고 태어나서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없을까. 그들은 어떻게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우리와 같은 일상을 이어가는 그들의 위대한 이야기에 대해서 좀 찾아봤다.
칼리 핀들레이는 호주의 작가다. 1981년에 태어난 그녀는 역시 어린선을 갖고 태어났지만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녀 역시 어린선 환자의 전형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부푼 얼굴을 하고 있다. 그녀는 작가라는 직업 외에 appearance activist 로도 활동 중이다. 장애로 인한 외모에 대한 차별에 맞서는 것이다.
우리의 생존을 결정하고 사회적인 인상을 결정한다. 눈에 보이면 떼어내고 벗겨내고 싶은 이 각질은 사실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우리가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끔 도와주던 내 몸의 방패이고 나의 수호자였다. 겨울이라 늘어난 각질이 성가시고 수고롭다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한때 내 몸을 지켜주고 나를 보호해주던 보호막이 제 할 일을 다 하고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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