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자극하고 안심을 팔아 돈 버는 장사치 전상서
당신이 아무리 피하려 한다고 한들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하루에 계면활성제가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계면활성제가 없는 샴푸와 천연 비누를 쓰고 있으니 계면활성제로부터 자유롭고 안전하다고 믿고 있다면 잘못된 마케팅에 철저히 속은 거다. 내게 있어 계면활성제는 알고 보면 참 진국인데, 헛소문 때문에 따돌림당하고 이용만 당하는 가여운 친구 같은 존재다. 샴푸, 바디워시 등의 세정 제품을 개발하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 바로 계면활성제에 대한 진짜 과학적인 이야기다.
네이버에 계면활성제를 검색해서 글을 읽다 보면 어찌나 사기꾼들이 많은지 뱃속이 뒤집어지는 거 같다. 소중한 내 몸을 위해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염려하는 사람들의 절실한 마음을 불안으로 자극해서 돈을 쓰게 만드는 거짓 광고가 자주 눈에 띈다. 특히나 나를 짜증 나게 하는 건 사랑하는 아기를 위해서는 뭐든 하는 부모의 사랑을 이용하는 인간들이다. 이들은 아무리 해줘도 부족한 것 같고 미안한 부모의 죄책감을 파고든다. 육아를 위해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며 버텨내는 그들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미안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안심을 팔아먹는다.
‘계면활성제가 없는 샴푸’라는 것이 팔린단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해서 전성분표를 봤더니 버젓이 계면활성제가 들어있었다. 이런 물건들은 디테일한 제품 소개를 읽어보면 크게 둘로 나뉜다. 계면활성제가 들어있는데도 없다고 광고하는 제품, 또는 상세페이지에서는 ‘설페이트계 계면활성제 없음’으로 말이 바뀐 제품이다. 애초에 계면활성제 없는 샴푸라는 건 바퀴 없는 자전거 같은 거다.
천연 비누를 쓰므로 계면활성제를 쓰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비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비누화 반응의 산물이 계면활성제다. 물, 기름, 수산화나트륨만 넣었으니 계면활성제가 안 들어갔다고 한다. 기름이 수산화나트륨이랑 만나서 비누화 반응을 통해서 지방산염을 만드는데, 이 지방산염이 계면활성제다. 모든 비누는 계면활성제를 포함하고 있다. 계면활성제 없는 비누는 김치를 넣지 않고 끓인 김치찌개다.
그렇게 계면활성제라면 독극물처럼 대하면서, 계면활성제를 비싼 돈을 주고 사서 먹는 사람들도 있다.
크릴 오일이다. 비커 (과학적으로 보이려면 컵보다 비커가 나은가 보다)에 물과 기름을 붓고 크릴 오일 캡슐을 찢어서 내용물을 넣는다. 그리고 막대로 젓는다. 그러면 물과 기름이 섞인다. 그걸 보여주면서 ‘이게 몸속에서 기름을 이렇게 녹여서 배출해준다’며 몸에 좋다고 판다. 집에 있는 아무 샴푸나 비누로 똑같이 해보시길. 다 된다. 냉장고 속 계란 노른자를 분리해서 해보시라. 더 잘 될 거다. 계란 노른자에 풍부한 레시틴 역시 계면활성제다. 식초에 식용유를 잔뜩 붓고 계란 노른자를 넣으면 물과 기름이 섞여서 마요네즈가 되지 않던가. 계면활성제는 물과 기름을 경계면에서 섞이게 해 준다. 피부의 피지, 두피의 기름때를 씻어내는 세정제의 원리가 바로 그 기름때가 물속에 분산되어서 떨어져 나가게 해주는 계면활성제의 기능에서 기인한다. 내시경을 해봤다면 알겠지만 위장 벽에 기름이 붙어있거나 하진 않는다. 그런데 크릴 오일을 굳이 왜 먹어서 뱃속의 기름때를 벗겨내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물론 각각의 경우에 계면활성제의 역할을 하는 물질들이 동일하지는 않다. 이게 포인트다. 계면활성제는 물질의 표면에서 기포, 소포, 가용화, 유화, 분산, 응집, 세정 등의 다양한 기능을 하는 물질이고 계면활성제로 분류되는 물질은 셀 수 없이 많다. 그걸 죄다 ‘계면활성제’라는 하나의 표현으로 뭉뚱그려 표현하다 보니 수많은 오해가 발생한다. 엄마의 젖, 모유에도 계면활성제는 들어있다. ‘어떠한 계면활성제인가’가 중요한 이유다. 물론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적인 소비자 입장에서 이름이 열 자가 넘는 화학물질을 일일이 외우고 공부하기 쉽지 않다는 건 안다. 그렇지만 최소한 ‘계면활성제’가 하나의 물질, 하나의 기능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모유부터 실제 독극물까지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므로, 파는 사람들이 잘 알고 더 정확히 설명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알았으면 한다.
이번 단락부터는 계면활성제를 샴푸나 바디워시 등 퍼스널케어 제품에 사용되는 계면활성제로 한정한다.
(워낙 종류와 역할이 다양하므로)
일반적인 소비자 입장에서 계면활성제를 고르는 기준은 내가 알기로 단 하나다. 천연인가, 합성인가. 천연이면 안전하고, 합성이면 독극물이다. 과연 그럴까. 나는 수박을 먹으면 목구멍이 가렵고 입술이 붓는다. 누군가는 땅콩을 먹으면 죽는다. 수박과 땅콩은 합성인가. 천연이냐, 합성이냐는 ‘이 물질이 얼마나 안전하냐’를 판가름하는 데에 적절한 기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세정제로 이용되는 계면활성제는 무조건 안전할까. 그것도 아니다. 사용을 피하는 것이 좋은 계면활성제도 있다. 어떤 것들인지 알아보자. 계면활성제가 주로 일으키는 문제점은 피부 자극이다. (두피에서 흡수되어서 5분 안에 자궁으로 이동하고 유방암을 일으킨다느니 자궁암을 일으킨다느니 하는 도시괴담은 아예 무시하자.) 앞서 계면활성제는 지질을 뜯어내어 물에 씻겨나가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피부의 보호막은 지질로 이루어져 있다. 적당히 더러움만 씻어내면 좋은데, 피부 본연의 보호막까지 손상시키는 계면활성제가 있다. 반응성이 아주 좋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로 피부를 문지르고 씻으면 천연의 보호막이 손상되어 피부가 건조해지고 따갑거나 가렵거나, 각질이 일어나고 빨갛게 발진이 일어나기도 한다. 요즘 시장에서 free- 마케팅에 자주 등장하는 소듐라우릴설페이트 SLS,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 SLES 같은 것들이 그런 것이다. 화장품의 피부자극 테스트를 할 때 자주 쓰는 SDS 소듐도데실설페이트는 피부나 점막에서 강한 자극을 일으킨다. 물론 생활용품에 사용되지는 않는다.
처음 시장에 등장한 비누는 피부 자극이 강했다. 이후에 저자극의 보다 안전한 비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들에는 어떤 계면활성제가 쓰였을까?
1879년에 P&G가 처음으로 상업적으로 비누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 판매되던 이 비누는 소의 지방과 코코넛에서 유래한 천연 계면활성제로 만들어졌다. pH 10 이상의 강염기성으로 피부 자극이 강했다. 비누의 피부 자극 문제는 1950년대에 해결되기 시작했다. 유니레버에서 합성 계면활성제를 이용한 비누를 출시했다. 기존 비누에서 사용하던 동식물 유래의 강한 음이온 계면활성제 대신 석유계의 합성 계면활성제를 사용하면서 비누의 pH를 중성으로 잡았다. 이 비누는 피부 자극이 한결 나았다. 1953년에는 존슨앤존슨에서 최초의 아기용 샴푸를 출시한다. 아기의 눈과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도록 합성 비이온 계면활성제를 이용했다.
계면활성제의 자극성은 합성이냐 천연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Polar head라고 부르는, 머리 부분의 성격이 더욱 중요하다. 앞서 계면활성제는 물과 기름을 섞어준다고 했다. 이것은 계면활성제가 둘다와 친하기 때문이다. 계면활성제는 핵인싸다.
계면활성제의 이 친화도는 머리와 꼬리가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데에서 기인한다. 보통은 계면활성제를 츄파춥스처럼 그린다. 둥그런 머리에 기다란 꼬리가 구불구불하게 달려있다. 둥그런 머리는 물과 친한 부분이고 구불구불한 꼬리가 기름과 친한 부분이다. 계면활성제의 피부 자극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은 머리다. 머리 부분의 전기적인 특성이 중요하다. 계면활성제는 양이온, 음이온, 비이온, 양쪽성으로 구분되는데, 이건 머리통이 어떤 전하를 띄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통상 음이온이 가장 반응성이 우수해서 세정력도 강하고 자극도 강하다. 양이온도 비슷하다. 비이온이나 양쪽성 계면활성제는 순하다. 천연에서 유래했어도 강한 음이온을 띄면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고, 합성이어도 비이온성이나 양쪽성이면 저자극으로 비교적 순하다. 세정제 자체의 pH도 중요하다.
왜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을까. 고민해봤는데, 여기까지 마케팅적으로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누가 언제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중 하나가 ‘천연’ 마케팅이다. 천연 = 좋은 거, 합성 = 해로운 거의 공식은 너무도 명료하고 그럴싸해서 소비자들이 받아들이기에 최고였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길고 지루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런 리스크를 지느니 그냥 다 같이 천연 만세를 외치자로 시장의 분위기가 굳혀져 버린 게 아닐까.
계면활성제가 피부에 자극을 일으키는 건 피부 바깥의 표피, 그중에서도 각질층이라고 부르는 가장 바깥의 아주 얇은 층에서다. 각질층은 아주 얇지만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 피부를 지키는 데에 가장 중요한 보호막 역할을 한다. 각질층의 보호막 기능을 위해서 중요한 요소는 두 가지다. 단백질과 지질. 단백질은 각질층의 세포 안팎에서 구조를 유지하고 보습을 하는 등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계면활성제는 이 단백질들을 공격한다. 계면활성제는 각질층을 이루는 각질세포를 과보습 상태가 되게 한다. 물로 씻는 동안에는 일시적으로 세포가 물로 가득 차 있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세안을 마치고 10분 이내에 망가진 보호막을 통해서 순식간에 물기가 마르며 피부는 이전보다 더욱 건조한 상태가 된다. 세안 후에 당김을 느끼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피부가 갈라지기도 하고 각질들이 뭉쳐서 하얗게 보이기도 한다. 또 계면활성제는 각질층에서 세포 사이사이를 채워서 물이 빠져나갈 수 없게 막아주는 지질층을 망가뜨린다. 피부는 내부의 수분을 잃기 쉬운 상태가 되고, 외부로부터의 자극에는 취약한 상태가 된다. 이렇게 되면 피부 자체의 면역 반응도 유도된다. 피부가 빨갛게 발진이 일어나고 붓는 등의 반응이 일어난다. 이게 계면활성제로 인한 피부 자극이다.
연구자들은 계면활성제의 이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극은 낮추는 방법에 대해 많이 연구해 왔다. 강한 음이온 계면활성제를 순한 비이온 계면활성제로 바꾼다던가, 높은 pH를 낮춰서 피부와 비슷한 약산성으로 만든다던가 하는 일들이다. 음이온 계면활성제는 자극을 유발하기 쉽지만 세정력이 우수하다. 과학자들은 이 음이온 계면활성제를 보다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양쪽성 계면활성제와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1990년대의 연구에서 음이온 계면활성제를 사용할 때, 그 양의 30% 정도의 양쪽성 계면활성제를 함께 사용하면 자극이 줄어듦을 확인했다. 계면활성제가 피부에 작용할 때, 단량체 monomer로 존재하는 경우, 위험도가 높다. 음이온 계면활성제와 양쪽성 계면활성제를 섞어주면 이들이 커다랗게 뭉쳐서 피부를 잘 뚫지 못하게 되어 자극이 줄어든다. 요즘 시장에 출시되는 많은 제품들이 이런 까닭으로 음이온 계면활성제와 양쪽성 계면활성제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비누가 처음 상업적으로 판매된 이래로 화학자들은 세정력은 유지하면서 자극이 없고 순한 비누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해왔다. 그렇게 굉장히 다양한 저자극성의 안전한 계면활성제들이 개발되었고, 우리는 다양한 조건을 만족하는 세안제, 샴푸, 바디워시를 골라 쓸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안전하지 않았던 경험들이 있기에 더욱 조심하게 되는 소비자들의 불안을 이해한다. 다만 불안의 실체를 좀 더 정확히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야 딱 필요한 만큼만 걱정할 수 있고, 그 불안을 이용하는 누군가에게 속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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