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앤드존슨 석면 탈크 소송 사건
내 동년배들이 아장아장 걷던 그때 그 시절, 사진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아이템들이 몇 가지 있다. 이쁜 내 새끼 궁둥이에 땀띠 날까 우리 엄마가 내 궁둥이에 열심히 발라주던 베이비파우더가 그중 하나다. 뚜껑을 시계 방향으로 살짝 돌리면 여덟 개의 구멍이 열리면서 하얀 가루가 쏟아져 나왔는데, 그 보드라운 감촉과 기분 좋은 향기에 정신 못 차리고 갖고 놀다가 머리부터 온통 덮어쓴 걸 엄마가 찍어 둔 사진이 있다. 베이비파우더를 쓸 나이야 한참 지났지만, 그 파우더리 하면서 기분 좋은 향기에 대한 추억이 여전히 베이비파우더 향이 나는 샴푸, 로션, 향수 따위를 찾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1894년 처음 시장에 선보인 이래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존슨앤드존슨사 (이하 존슨즈)의 베이비파우더는 단순히 특정 브랜드의 베이비 케어 제품을 넘어서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그 특유의 향은 사람들이 ‘아기 냄새를 생각했을 때 바로 떠올리는 그런 향이 되었다. 2020년 5월, 존슨즈는 이 아이코닉한 제품에 대해 미국,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 시장에서의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이 제품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존슨즈의 베이비파우더에 대한 첫 정식 재판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사우스 다코타 주에 사는 한 여성이 해당 제품에 대해서 판매 중단을 요청했다. 그녀는 2006년에 난소암 판정을 받았는데, 존슨즈의 베이비파우더를 40년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판매 중지에 대한 요청은 기각 되었지만, 해당 소송이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격이 되어 미국 전역에서 존슨즈 베이비파우더의 발암성과 관련한 소송이 잇따랐다. 그렇게 만여 건이 넘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존슨즈는 맹렬히 대응했으나 결국 2018년에는 4조 원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받고 만다.
주요 논점은 베이비파우더의 주원료인 탈크 (talc, 식약처 정식 명칭 탤크)에 있다. 원고 측의 주장은 이것이 암을 유발하며, 실제로 이 암을 유발하는 탈크를 수십 년간 생식기에 사용하여 난소암을 얻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 탈크의 발암성에 대한 이슈가 크게 뉴스를 타면서 많은 이들이 탈크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탈크와 그 발암성에 대해 여러 주장들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지금부터는 얘기가 좀 복잡해진다.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은근히 헷갈리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석면이 포함된 탈크만이 문제다, 탈크 그 자체로 발암성이 있다, 탈크에는 원래 석면이 포함되어 있다, 탈크에서 석면만 제대로 제거하면 문제가 없다, 여전히 시중에 유통되는 탈크에는 석면이 있다, 요즘은 규제를 빡세게 해서 더는 탈크에서 석면이 검출되지 않는다’ 등등.
일단, 탈크는 왜 쓸까. 베이비파우더를 쓰는 까닭과 같다. 습기를 제거하고 피부를 뽀송뽀송하고 매끄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열이 많고 피부가 많이 접히는 아기들은 땀띠에 자주 시달린다. 엉덩이나 접힌 피부 부위에 이 베이비파우더를 뿌려서 보송보송하게 해 주면 땀띠를 예방할 수 있어서 그 목적으로 쓴다. 매트한 마무리를 위한 프레스드 파우더나, 피니쉬 파우더에도 많이 사용된다.
석면은 뭘까. 나무 걸상에 앉아서 학교 다니고, 마룻바닥 왁스칠 하고 다녔던, 국민학교 나온 내 동년배라면 누구나 다 알 거다. 과학 시간에 알코올램프에 불 붙여서 이것저것 끓여볼 때 사용했던 석면 쇠그물. 뻣뻣한 천조각처럼 생겼는데, 석면은 불에 타지 않는다. 덕분에 오랜 기간 동안 건축 내장재로, 슬레이트 지붕의 재료로 굉장히 많이 쓰였다. 석면이라는 이름에서 유추가 가능하다. 돌로 만든 면, 돌 섬유 천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어떻게 섬유와 같은 성질을 띌까. 현미경으로 보면 알 수 있다. 가느다란 실 보푸라기가 일듯이, 석면을 구성하는 결정의 입자는 아주 가늘고 뾰족하다. 그렇게 가늘고 뾰족한 결정들이 서로 얽혀서 석면을 만드는 거다. 이걸 들이마시게 되면 그 바늘 결정 하나하나가 폐에 박힌다.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통증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폐에 박혀서 세포를 죽이고,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한번 박힌 석면 바늘은 제거되지 않고 계속해서 지속적인 면역 반응을 일으켜 종국에는 각종 폐질환을 비롯하여 폐암을 유발하는 것이다. 석면의 발암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국제 암 연구기관 (IARC)에서는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1'군'이다. 많은 매체에서 1'급' 발암물질이라고 잘못 표기하는데, Class 1, 1 군이다.)
탈크는 다르다. 탈크를 현미경으로 보면 납작한 판을 켜켜이 쌓은 모양처럼 보인다. 석면처럼 조직을 쿡쿡 찔러서 공격할 마땅한 부분이 관찰되지 않는다. 문제는, 제조 과정에서 석면에 오염된 탈크에서 비롯되었다. 석면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던 시절인 1970년대에는 실제로 석면이 포함된 탈크가 시중에 유통되었다고 한다. 이 탈크는 분명히 암을 유발한다. 그러나 석면이 완전히 제거된 탈크 그 자체로 본다면 이것이 발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확실치 않으며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대체제가 다양한 상황에서 요만큼이라도 위험의 소지가 있다면, 특히나 그것이 내 아기에게 쓰는 제품이라면 선택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소비자의 반응이다. 실제로 존슨즈의 베이비케어 제품 매출은 매년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존슨즈의 이번 판매 중단 결정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주요 원인은 바로 소비자들의 베이비 케어 루틴의 변화다. 베이비파우더의 매출 감소의 원인은 단순히 안전성 이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크림이라고 하면 기름진 엄마 콜드크림뿐이던 예전에야 아기 땀띠에 파우더를 바르고 말려주는 것만이 최선이었겠지만 요즘은 굉장히 다양한 수딩 제품들이 시장에 나와있다. 수딩 밤, 수딩젤, 수딩 로션 등 파우더를 발라서 부위를 보송하게 말려주기보다, 더욱 촉촉하게 유지하면서 발진은 가라앉혀주는 유용한 제품들로 인해 선택의 폭이 보다 넓어진 것이다. 이왕이면 단순히 파우더로 땀을 말리는 게 아니라, 피부 장벽도 지켜주면서 발진을 가라앉혀주는 기능성 제품을 쓰고 싶은 것이 엄마들의 마음일 것이고.
존슨즈는 이번 제품 판매 중단 결정이 안전성 이슈로 인한 것이 아니라, COVID-19으로 인한 시장 변화에 따른 제품군의 정리에 해당 제품이 포함된 것이라고 말한다. 소비자들의 케어 루틴의 변화와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퍼 나르는 반대세력의 공세 때문이지 제품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는 주장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오랜 기간 동안 베이비 케어 시장의 상징이었던 기업이 변화하는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울지, 또다시 왕좌를 탈환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